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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눈을 심어라 -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
M. 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 반비 / 2022년 12월
평점 :
📚종교와 문학의 맥락에서 말할 때 눈멂은 우리의 눈이 영적, 예술적 초월을 방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탁월한 눈먼 시인 존 밀턴이 <실낙원>에서 탐색한 주제인데, 이 책의 제목도 거기에서 가져왔다.
그럴수록 더욱 너, 하늘의 빛이여.
마음속에 빛나고, 마음의 능력 전부를
비춰라, 거기 눈을 심고, 모든 안개를
거기에서 씻어 걷어내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내가 보고서 말할 수 있게. (p.12~13)
✅️ '눈멂'은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또다른 관점임을 깨달으란 뜻이다.
이 책은 눈멂, 즉 시각장애가 지난 수천년 동안 문학, 과학, 철학, 대중 문화에서 어떻게 그려져왔는지 살펴봄으로써 오만하고 모순투성이인 시각 중심주의를 성찰케 한다.
다루는 내용이 가볍지는 않지만 초반부터 맹인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 소설이 드문 이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따라 자살하지 않고 그녀의 브로치로 눈을 찔러 스스로 맹인이 된 이유 등 대중이 궁금해 할 만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 의문들을 풀 열쇠는 '눈멂'이 보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진실'을 보게 한다는 데 있다. 무슨 진실?
그리고 시각을 잃은 사람들이 어둠 또는 암흑 속에 있다는 건 보는 사람들의 착각이고, 후천적으로 시각을 얻게 된 사람들은 안 보였을 때보다 더 심하게 장애를 느끼거나 쉽사리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한다. 대체 왜일까? '눈멂'이 무엇을 인식하게 하는 것일까?
이 물음표들은 우리가 '보는 사람'으로서 시각 중심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당신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눈멂'을 인식하고 싶다면 일독해보길.
📚문자적으로 앞을 볼 때 여러분은 영원한 진리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스스로 눈멂은 인간의 시야 너머에 존재하는 그 진실을 보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p.58
📚바울이 썼다고 여겨지는 「고린도전서」에는 인간의 제한된 시력을 묘사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봅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눈멂을 고쳐주는 능력을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시력이 아주 완벽하다고 믿을 때조차도(또는 특히나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시력은 근본적으로 어둡고 불완전하며, 시각은 오만과 자존심, 영원한 독선과 연결된다는 깨달음 말이다. -p.71
📚우리는 맨눈, 즉 인간의 제한된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드러내는 한 점, 말 그대로의 점에서 시작한다. 현미경은 우리에게 보이는 날카로움과 매끄러움이 그것의 참된 속성 또는 최종 실체라는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림으로써, 매끄러운 표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우리의 크기, 거리, 감각의 예리함에 상대적이라고 깎아내린다. 이런 깨달음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일단 고정된 양극성을 영원히 괴롭힐 것이다.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