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implezi > 순환의 고리속에서 사는 운명이여!

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미켈란쏘 프라도의 <섬>을 보다보면,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뒤로 한 채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는 하나의 긴 사랑의 고리안에 존재하지는 않은가하는 까뮈의 말이 생각난다.

어쩌면 자신의 뒤로 움츠려 멀어져가는 과거의 기억과 자신의 현재로 조금씩 펼쳐지며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현재의 삶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있어 사랑은 하나의 고통스런 물음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섬>에서 라울과 안나는 각자의 사랑의 기억에 매여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이 아니다. 섬에서 기억은 현재를 경험하고 미래를 밝혀주는 믿음직한 안내자가 아니다. 오히려 안나처럼 자신의 라울과 이름이 같은 한 남자를 멀리서 지켜보다 떠나보내는 수동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들은 자신의 기억에만 매달려 상대방을 훔쳐보다 결국 서로 마주보는 그들만의 사랑을 완성할 기회를 놓친다. 뒤늦게 사랑을 확신한 라울이 섬으로 돌아와 방파제 벽에 약속의 메세지를 적어놓지만 그것은 독백에 그치고 만다.

서로를 그리움의 시선으로 뒤쫓는 수레바퀴를 닮은 <섬>은 사랑을 그리움과 욕망, 고독의 폐허위에서 망각되어지도록 내버려둔다. 등대가 죽은 <섬>은 사랑의 격정에 포효하는 바다로부터 방랑하는 배들을 인도하지 못한 체 먼 바다로 다시 배를 내보낸다. 그 배들 중에 라울과 안나의 배도 자신의 우유부단한 사랑의 기억을 더듬듯이 그리움에 지쳐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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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늘지기 > 적어도 오늘은 이 <섬>에서 탈출해야 겠다

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섬...하면 몇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장 그리니에의 <섬>과 정현종의 시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리고 한 여인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바다 위에 섬을 보면 모두 드문드문 외로운 모습이죠...하지만...섬은 바다 밑에서 거대한 대륙을 형성하고 있다는 군요...-

선배언니가 권해준 이 만화책은 내가 본 만화책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A4 크기의 판형과 총 천연색의 그림, 그리고 빳빳한 코팅지가 인상적이었지만 1만5천원의 돈을 주고 아깝지 않다고 느낄만큼 그리 맘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옮긴이 이재형은 이 만화가가 그린 <섬>에게 "가르시아 마르게즈나 비오이, 보르헤스 등 일군의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간다"고 말하고 "이 작품에서 엇갈리는 시선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복합적인 의미를 띤 문장들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는 현실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린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에게 <섬>은 마르께서의 그것처럼 강렬하거나 장대하거나 혹은 뒤통수를 치는 만큼 치밀하지 못했고, 보르헤스의 그것처럼 잠깐 숨을 멈추고 깊이 되짚어 보게 만들만큼 파격적이거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섬>에서는 일관되게 내 가슴에 박히는 한줄기의 생각거리는 없었다.단지 군데 군데 어떤 장면들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을 따름이다.

실재했는지, 꿈인지 알 수 없게 끝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기다리는 것,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리고 그 모자가 고립된 것, 그리고 역시 참을 수 없거나 너무 잘 견뎌내는 것... 그런 것들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고, 등대에 낙서가 이루어 내는 한줄기의 단상이 그러했다.

또 앞으로 얼마간 내 머릿속에 남을 한 장면.. 남자주인공 라울이 아나에게 접근하여 '무용(無用)한 한 밤의 등대여!'라고 읊자 아나는 -사또 브리앙을 읽고 있나요?-라고 묻고, 라울은 -아니요, 안토니오 타부치가 인용한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나는 -원전도 모르는 채 인용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 경박하다는 증거예요-라고 덧붙인다. 음...원전을 모르고 인용한 것을 인용한 적이 적잖이 있었던 나로서는 뜨끔한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는데... 앞으로 두고 두고 머리에 남을 것 같다.

나는 '섬'이란 단에에서 자주 고립감, 고독... 뭐 이런 단어들을 연상하는데 그런 내 연상을 만들어주거나 아주 잘 표현한 시인이 바로 앞서 예를 든 '정현종'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하던 단 두 문장의 절창...

내게 고독은 늘 벗어나고 싶은, 높고 어두운 굴뚝이다. 숨막히고, 미치게하고 병들게 하는 것. 그래 어떤 면에서 나는 내 고독을 스스로 파낸 혐의가 짙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나와 사고가 다른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표피만 가장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나 혼자 다시 병 속에 갇히는 꼴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즐긴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건 참으로 메조키스트적인 면이 있거나 가벼운 취향의 소유자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느끼고 하다가도 돌아서서 씁쓸해지는 그런 소통의 부조화가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기 만의 방속에 들어가 앉아 고립된다. 그런 고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견디거나 무뎌지는 것으로 극복한다. 참아내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오뚝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미겔란쏘 프라도가 <섬>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종일 소통의 쉽지않음과 시선의 어긋남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고립감, 고독 같은 걸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은 이 <섬>에서 탈출해야 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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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소리 > the Da Vinci Code
The Da vinci Code (Mass Market Paperback, Original Edition)
댄 브라운 지음 / Bantam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대충 사람들의 견해는 반으로 나뉘는 것 같다. 기독교인이 절대 읽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과, 기독교인일수록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음... 솔직히 말해, 전자는 우리 큰니의 견해이고, 후자는 우리 짠니의 견해이다. 뿌하핫.
다 읽고난 내 느낌은, 후자다. 왜 사람들이 로마카톨릭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가득찬 이 책에 그리도 열광하는 지, 그저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Fiction 의 매력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기독교 권위에 대한 도전에 열광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카톨릭교도가 아닌 개신교도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큰 테두리 안에서 믿음의 표출방식이 다를 뿐... 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로마 카톨릭에 그렇게 적대적일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조차 로마 카톨릭은 왠지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우면서도 폐쇄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의 반증이 되지는 않을런지? 그리고 더 나아가 개신교까지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보수성이라던가 묻지마 신앙생활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괴리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종교적 진위 여부에 대한 논증을 떠나서 하나의 '소설'로만 본다면, 정말 잘 쓰여진 소설이다. 일단 작가의 고고학적, 미학적, 종교학적, 언어학적 등등... 아주 해박한 지식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고, 긴박하게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이야기꾼의 재능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전반부(한글번역본 1권)가 훨씬 재밌다고 말하지만, 나는 후반부도 그못지 않게 흥미 진진했다. 아무래도, 얽혀져 있던 실타래를 풀려다 보면 설명이 길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긴박함은 덜하기 마련이니까.

다빈치코드를 깨기 위해서는 단 하나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성서 이외의 문서들이 정말 존재하는 지 아닌 지에 대해서만 명쾌하게 풀리면 된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풀릴 수 없다. 왜냐하면, Dan Brown은 그게 있지만 비밀스럽게 배척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카톨릭에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없다고 주장하는 쪽이 숨기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면, 카톨릭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닌 지를 밝혀야 하는데, 그게 어마어마한 음모와 배후에 의해 방어되고 있다고 얘기해버리면 더이상의 밝혀낼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위증 여부를 논하는 거라면 거짓말 탐지기라도 동원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분포하는 많은 신도들과 카톨릭의 오랜 역사, 그리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학자들을 생각해본다면, 세상에 비밀이 그렇게까지 지켜지는 게 과연 가능이나 할까? 로마 카톨릭이 예전처럼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라면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루브르 지하 피라미드를 깨버리는 일이긴 하지만... 글쎄... ^^
(참고로... 내가 가본 루브르의 여러 곳과 파리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너무나도 재밌고 즐겁게 읽었다... Dan Brown에게 감사한다)

난 몇몇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렇게 많은 논쟁을 이끌어낼 정도의 '소설'을 써낸 작가의 상상력과 글쏨씨에 그저 감탄할 뿐... 더이상의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결론내리고 싶다.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재미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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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중퇴전문 > 닮았지만 부족하다
The Da vinci Code (Mass Market Paperback, Original Edition)
댄 브라운 지음 / Bantam / 200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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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몇몇 소설들을 연상케 한다지만, 깊이나 넓이에서 모두 모자란 감이 크다. (기독교까지 포함된) 종교와 여성성이란 주제부터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으며, 미국-백인-개신교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군의 독자들에겐 그런 사실의 언급 자체가 흥미로울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이에겐 '별거 아닌거 가지고 소설 내내 호들갑이군'  이라는 인상을 남길 뿐이다. 멀쩡한 오푸스 데이를 졸지에 비밀지하조직으로 만들고, 흔히 접할 수 있는 외경이나 비사의 일부를 기계적으로 인용한 수준을 결코 넘어서지 못 하는 이 책은 지식폭이나 통찰의 면 모두에서 에코에 비견이 안 될 뿐더러, 비사와 비교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면에서도 함량 미달이다. 영화 속 해리슨 포드처럼 행동하는 캐릭터들의 경박스러움도 소설의 부족함으로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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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andy > 에코가 되고 싶었던 또하나의 크라이튼..
The Da vinci Code (Mass Market Paperback, Original Edition)
댄 브라운 지음 / Bantam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500페이지가 넘는 영문서적을 다 읽어보기는 첨인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지낼 때도 잘 사보지 않던 페이퍼 백을 굳이 한국 서점에서 사게 되었던건 .. 1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페이퍼백이 있는데 굳이 책을 두권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어보자는 작금의 출판 주류에 대해 약간의 반감이 들어서 일겝니다. 암튼.. 다른 분들은 사나흘이면 읽을 수 있다는 이 책을 원서로 사서 봄으로써 무려 그 다섯배의 시간을 들여가며 읽고 나니 감회가 색다릅니다.. (참고로 페이퍼백의 표지는 번역서와 거의 비슷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보다 페이퍼백의 표지 디자인이 더 맘에 듭니다)

많은 리뷰들이 이 작품을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나 '장미의 이름'과 비교하는걸 보았습니다만, 전 오히려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계보에 이 댄 브라운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영화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시각적 글쓰기'의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이죠. 정말 자세하게 상황과 배경과 장소를 설명합니다. 골치아픈 심리묘사나 생각의 흐름을 보여주기 보다는 시나리오 읽는 것 같은 숨가쁜 사건 전개 위주로 글이 씌여 집니다.

두번째로는 .. 듀나라는 필명을 가지고 계신 한 인터넷 글지기 님이 말씀하신대로 크라이튼의 '지식과 스토리의 따로 노는 현상'을 이 책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방대해 보이는 초대 기독교의 미스테리에 얽힌 역사, 단체, 예술 분야의 갖가지 상징, 작품들이 범람하지만 결국 그것들이 스토리에 차용되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는 자크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의 수장이라는 점 하나 뿐입니다. 쥬라기 공원에서 차용되었던 '혼돈 이론'이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 대단한 과학적 지식을 배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 처럼 이 작품에서 나오는 수 많은 역사적, 미학적 배경지식이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고 또다른 잡학 사전식 흥미거리처럼 보이는 것은 별 다섯개짜리 평점을 매기기 전에 결정적으로 손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점인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런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결국 최근 소설계에서 - 특히 미국에서 - 흔히 볼 수 있는 전문지식과 소설의 '크로스오버' 흐름 중 가장 최근의 historical fiction을 다룬 작품 중에서는 꽤 괜찮은 것임에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상당히 대중적인 '다빈치'라는 예술가와 서구 사회에서라면 누구나 알만한 기독교에 얽힌 배경지식을 깔고 현란한 장면 배합과 다 읽고 나면 허탈하기까지 한 약간 허무한 수수께끼로 잘 버무린.. 한여름에 배깔고 해변에서 읽기에는 아주 적당한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서는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작가는 문체에서부터 철저하게 빨리, 쉽게 읽히는 문체를 사용한 듯 합니다. 제가 영문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번역에도 소질이 없지만.. 소위 '분사구문'을 거의 모든 문장에 차용합니다. 복문을 단문으로 만들어주면서 길이를 줄여주는 이 분사구문 덕에 이 소설의 문장들은 그리 어렵게 읽히진 않습니다만..  꽤나 현학적인 어휘를 사용해서 자주 사전의 도움을 받느라 독서의 맥이 끊기곤 했습니다. 역사, 예술계의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는 점도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점의 하나였지만 게다가 웬 프랑스어는 그리 자주 나오는지.. 초반 파리에서의 장면에서는 걸핏하면 나오는 프랑스어 대사 덕에 짜증이 나더군요.

다만 번역서에 각종 애너그램에 원본의 철자가 병기가 안되어있어서 그 맛이 안났다고 항의하는 글을 몇번 봤는데.. 원서로 읽다보니 그 단어의 라틴/그리스어 어원 및  비슷한 문자와의 관련성까지도 작가의 의도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독서에 적잖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One last thing.. 워낙 비주얼이 강조되어있는 소설에다가 몇몇 주요 모티프가 되는 장소 및 작품의 중요도를 생각해보면 소설을 읽으면서 루브르 박물관, Temple church, Westminster 사원, Rosslyn 교회 및 다빈치의 작품들을 보고 싶어집니다.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에서 '다빈치 코드' 섹션을 보니 관련된 미스테리들과 각종 책의 이해를 돕는 사진 갤러리가 있더군요. 마지막 감흥을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방문해보시길..  http://www.danbrown.com/secrets/davinci_code/galle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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