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늘지기 > 적어도 오늘은 이 <섬>에서 탈출해야 겠다

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섬...하면 몇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장 그리니에의 <섬>과 정현종의 시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리고 한 여인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바다 위에 섬을 보면 모두 드문드문 외로운 모습이죠...하지만...섬은 바다 밑에서 거대한 대륙을 형성하고 있다는 군요...-

선배언니가 권해준 이 만화책은 내가 본 만화책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A4 크기의 판형과 총 천연색의 그림, 그리고 빳빳한 코팅지가 인상적이었지만 1만5천원의 돈을 주고 아깝지 않다고 느낄만큼 그리 맘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옮긴이 이재형은 이 만화가가 그린 <섬>에게 "가르시아 마르게즈나 비오이, 보르헤스 등 일군의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간다"고 말하고 "이 작품에서 엇갈리는 시선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복합적인 의미를 띤 문장들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는 현실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린다"고 평했다.

하지만 나에게 <섬>은 마르께서의 그것처럼 강렬하거나 장대하거나 혹은 뒤통수를 치는 만큼 치밀하지 못했고, 보르헤스의 그것처럼 잠깐 숨을 멈추고 깊이 되짚어 보게 만들만큼 파격적이거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섬>에서는 일관되게 내 가슴에 박히는 한줄기의 생각거리는 없었다.단지 군데 군데 어떤 장면들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을 따름이다.

실재했는지, 꿈인지 알 수 없게 끝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기다리는 것,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리고 그 모자가 고립된 것, 그리고 역시 참을 수 없거나 너무 잘 견뎌내는 것... 그런 것들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고, 등대에 낙서가 이루어 내는 한줄기의 단상이 그러했다.

또 앞으로 얼마간 내 머릿속에 남을 한 장면.. 남자주인공 라울이 아나에게 접근하여 '무용(無用)한 한 밤의 등대여!'라고 읊자 아나는 -사또 브리앙을 읽고 있나요?-라고 묻고, 라울은 -아니요, 안토니오 타부치가 인용한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나는 -원전도 모르는 채 인용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 경박하다는 증거예요-라고 덧붙인다. 음...원전을 모르고 인용한 것을 인용한 적이 적잖이 있었던 나로서는 뜨끔한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는데... 앞으로 두고 두고 머리에 남을 것 같다.

나는 '섬'이란 단에에서 자주 고립감, 고독... 뭐 이런 단어들을 연상하는데 그런 내 연상을 만들어주거나 아주 잘 표현한 시인이 바로 앞서 예를 든 '정현종'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하던 단 두 문장의 절창...

내게 고독은 늘 벗어나고 싶은, 높고 어두운 굴뚝이다. 숨막히고, 미치게하고 병들게 하는 것. 그래 어떤 면에서 나는 내 고독을 스스로 파낸 혐의가 짙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나와 사고가 다른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표피만 가장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나 혼자 다시 병 속에 갇히는 꼴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즐긴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건 참으로 메조키스트적인 면이 있거나 가벼운 취향의 소유자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느끼고 하다가도 돌아서서 씁쓸해지는 그런 소통의 부조화가 사람들을 고립시킨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기 만의 방속에 들어가 앉아 고립된다. 그런 고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견디거나 무뎌지는 것으로 극복한다. 참아내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오뚝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정확하게 미겔란쏘 프라도가 <섬>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종일 소통의 쉽지않음과 시선의 어긋남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고립감, 고독 같은 걸 생각했다. 적어도 오늘은 이 <섬>에서 탈출해야 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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