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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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 한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 말걸.’

영화는 해방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우리나라를 너무 화려하게 묘사했다. 왜 일까 했는데, 에 묘사되는 옛 미국이 너무 발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에 전기포트가 등장한다. 현대 작품에서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물건이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굉장히 피폐했다. 이  소설은 서술 트릭을 사용한다. 그러나 나온지 워낙 오래 되었기 때문에 너무 정직하다. 초반부만 읽어도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서술 트릭보다 그린리프가 유죄를 선고 받는 과정이 더 흥미롭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와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공방을 재밌다. 물론, 책이 처음 나온 시기에는 서술 트릭 자체도 신선했겠지만. 영화는 그  법정극의 맛을 못 살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너무 비극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애매한 로맨스를 넣고 멋진 남자 만들기에 신파를 넣어서… 차라리 원작처럼 둘의 관계가 확고한 게 더 낫지 않나? 물론 고수는 멋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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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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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이 작품은 삶의 부조리 보다 언어의 부조리에 집중한다. 말이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보여준다. 바비 와트슨과 바비와 바비. 메리와 메리의 메리. 말장난처럼 보이는 대사로 작가가 말이 얼마나 완전하지 않은 지 말한다. 말을 다루는 작가인데 말이다. 사람은 대화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대화는 부서지고 단절되며 무시된다. 언어가 얼마나 허무하고 가치가 없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이런 완전하지 못한 수단으로 소통하는 인간도 부조리하다. 작품은 ‘영국적인 삶’의 모습을 강조한다. 신사적이고 올바를 것만 같은 그 삶은 거짓되고 허무하다.


수업


 이 작가분, 수미쌍관을 많이 좋아하신다. 공부깨나 하신 분이다. 그런데 이런 분이 이렇게 말을 부정하는 작품을 쓰다니! 이렇게 언어학이 위험합니다. 여러분. 자칫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작가가 이 작품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뭘 까? 지식인의 타락이나 위선? 그 정도에 멈춘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부러 언어학 수업을 하다가 살인까지 이어지는 구성을 선택했으니. 언어가 얼마나 위험한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읽노라니 “머리가... 아파요...”


의자


 대상이 없는 대화는 갈 곳이 없다. 귀부인, 의사가 아닌 사진사, 대령님, 수많은 군중과 황제. 아무것도 없다. 기다리는 변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극 중에서 노인과 노파는 죽음을 맞는다. 또 삶이 얼마나 완전하지 못한지도 보여준다. 죽음은 세상에 태어나 깨닫는 가장 큰 부조리다. 언젠가, 당신은, 이유도, 시기도, 모르지만, 확실하게, 죽는다. 피할 수 없다. 살라고 보내 놓고 반드시 죽으란다. 얼마나 억울한가? 삶도 죽음도 내가 선택하지 못했으니. 노인과 노파가 죽음을 맡기 전에 변사가 왔다. 고도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는 말을 하지 못한다. 변사인데 말을 하지 못하다니 오지 않는 고도 보다 못핟. 작가는 또 한 번 관객을 조롱한다. “봐라. 언어가 얼마나 완전하지 못한지.” 그러나 그는 불완전한 말로 극을 보고 있지않는 나에게 수많은 감정을 만들어 낸다. 단지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의자를 나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읽으며 엄청나게 긴장한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고 변사의 마지막 말에 절망한다. 모순 되게 언어의 부조리를 말하는 그의 작품에서 위대한 언어를 발견한다.

 

 언어도 부조리하고 삶도 부조리하다.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그러나 때로 삶을 인정하고, 때로 삶에 순응한다. 그러다 보면 그 부조리마저 경이로울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처럼. 그런 작은 순간이 세상을 긍정하는 이유다. 이제 덜 억울하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다. 나는 언어로 완전히 소통할 수 있을까? 작품 속의 인물처럼 아무것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말이라도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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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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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희곡을 읽었다. 처음에 이 작품을 읽으며 ‘(사이)’와 ‘고고’가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다. 희곡이니까, 지문으로 ‘(사이)’처럼 간격을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고고’는 이름이었다. 나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몇 편 본 게 다다. 그래서인지 부조리극은 참말 어렵다. 인물의 맥락 없는 대화를 더듬어 가면서 정리해 본다. 블라디미르는 계속 묻는다. 에스트라공은 싫다는데. 에스트라공은 말한다. 두 인물의 대화를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묘하게 웃기기까지 하다. 블라디미르는 대답하지 않는데. 방향 없는 대화, 통하지 않는 말, 무의미한 행동, 반복되는 하루, 끝이 없는 기다림. 작가는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걸까?


 나는 어떤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까? 사는 건 뭘 까? 포조의 마지막 외침을 빌어 작가의 생각을 조금 들여다본다. 그는 태어나고 살고 죽고, 던져졌고 선택하지 못했고 되는대로 살았다. 기다리는 내일은 오지 않고 침묵으로 가득 찬 텅 빈 삶. 고도는 무엇일까? 희망? 자유? 무엇인지 몰라도 어제도 오늘도 오지 않지만 믿고 기다려야 한다. 내일은 올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게 삶이니까.


 극에 마지막에 가면 배우와 관객의 구분도, 무대와 삶의 구분도 없어진다. 삶이 연극과 이어지고 연극이 삶과 이어진다. 부조리한 연극처럼 삶도 부조리하다. 그리고 극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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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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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이리도 완전하지 않을까>


 인간은 왜 서로의 감정을 완전히 나누지 못할까? 언어나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은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만약 내가 세상의 모든 이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1분도 되지 않아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신이 아니니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고통을 다르게 나누는 것 같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오늘도 뉴스에는 수많은 죽음이 나온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의 죽음이다. 아니, 그러나 ‘나’에게는 서로 다른 죽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내가 느낀 슬픔과 ‘당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끼는 고통은 다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 ‘나’ 모두를 동등하게 대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감이란 게 뭔 가요>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이 무엇일까? 공감이란 무엇일까? 오스카는 독특한 아이다. 내가 저 나이에 저 정도로 기발한 생각을 했던가 싶다. 그런 독특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아이. 그런 아이를 끝까지 이해하고 지켜보는 어머니, 할머니. 이런 것이 공감 아닐까? 나는 타인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다. 함께 하면 반이 된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애초에 내가 느끼는 고통은 그 사람이 내게 준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낸 것일 뿐.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내가 그 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내 왼손과 오른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만큼. 그 만큼의 사람만이라도. 오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더 이해하고 공감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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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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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이리도 완전하지 않을까>


 인간은 왜 서로의 감정을 완전히 나누지 못할까? 언어나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은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만약 내가 세상의 모든 이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1분도 되지 않아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신이 아니니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고통을 다르게 나누는 것 같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의 무게는 모두 다르다>


 오늘도 뉴스에는 수많은 죽음이 나온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의 죽음이다. 아니, 그러나 ‘나’에게는 서로 다른 죽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내가 느낀 슬픔과 ‘당신’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끼는 고통은 다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 ‘나’ 모두를 동등하게 대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군은 모병제를 선택한 나라다. 모병제 국가에서는 병사의 목숨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군대에 지원하지 않을 테니까. 따라서 미군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적을 효과적으로 살해하는 방법을 찾는다. 사람을 죽이는데 효율? 기가 막히지 않는가? CNN 기자가 미군의 저격수에게 사람을 쏘면 무엇을 느끼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는 대답했다. “반동이요”. 전장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별 일이 아니다.


 종군 기자들은 이런 전쟁을 고발했다. 사진은 진실을 기억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은 보도 사진이다. 사건을 하나의 이미지에 담아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각인한다. 후에 올 인류에게 “다시는 이렇게 멍청한 짓은 하지말라”고 당부를 남긴다.


 사진은 진실만을 말할까? 회화는 작가의 의도를 담는다. 이에 비해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것 같다. 그러나 사진 작가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프레임에 세상을 담는다. 이미 현실은 편집되었다. 미국에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다루는 기념관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선별된 것만 기억한다. 사람들은 사진을 맹신한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지 않은 사건은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국가는 때로 사진을 이용해서 정의를 연출하고 선전한다. 전쟁이라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든다. 정치적 의도로 걸러진 현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포장된 것이 제국주의였다. 유럽의 열강은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약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를 만들었다. 작가는 미국에는 적대적이고 유럽에는 온건한 것 같다. 그러나 나치만이 유럽의 그림자가 아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는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착취했다. 정도가 다를 뿐. 그 때는 제국주의는 선이었다. 힘은 정의였다. 아직도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아직도 식민지였던 나라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나라가 많다. 우리 옆 나라도 그렇고.

 

 미국과 친구들은 정의를 표방한다. 남의 집안 싸움에 잘도 껴든다. 때로는 집안 싸움을 만들기도 한다. 정당한 싸움인지 모르겠다. 옆집의 부부싸움이 가정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가서 말리고 신고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가서 폭력의 주체를 때리는 것은 또 잘못 아니겠는가? 제일 고통받는 것은 죄 없는 자식들 아닐까? 누군가에게 위대한 성전에 죄 없는 시민들만 죽어간다.


<그래서 공감이란 게 뭔 가요>


 우리가 고통을 담은 사진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충격과 공포를 소비하는 것일까?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깨닫고 경계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관음주의적 도착일까? 나는 무사하다며 안도하려고? 나는 행복하구나 위로 받기 위해서? 아니면 고통에 공감? 우리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께서 강제 징용을 당하셨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고백하자면 나는 당시의 당신의 심정을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 때는 어렸다는 핑계를 대본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는 ‘전쟁은 잘못이라 말할 수는 있다’. 이제는 타인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것이 진짜 공감일까? 그저 학습한 감정의 흉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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