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획득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원료·설비·에너지 등을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는 재화와 서비스를 노동자가 생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윤은 제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것과 등가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하는 것을 반영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데 필요한 것을 반영할 뿐이다. - P133
순수 자본가, 즉 기업을 소유만 하고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자본가는 부의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피고용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관리자 포함)가 만드는 생산물의 가치와 생산비의 차액을 전유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그것은 임대료와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기여가 아니라 기존 자산에 대한 사적 통제에의존한다. - P135
신자유주의에서 단기적인 이윤 창출의 압박과 자본의 이동성 증가로 자본가들은 장기적으로 생산 방면에 투자하기보다는 기업을 약탈해 수익을 올리고 다시 새로운 기업으로 옮겨가 같은 짓을 반복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 P138
주식에서 기이한 점은 유한책임이라기보다는 무기한 불로소득을 제공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사실이다. 아래로 떨어질 위험에는 제한이 있지만, 이익을 얻어 위로 올라가는 데는 제한이 없다. - P144
지금 주식 보유는 실물투자와 크게 분리되어 있으며, 주주들이 실물투자에는 기여하지 않은 채 이익을 얻으려고 경쟁하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부재 주식 보유의 정당성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부재 주식 보유는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은 소유주가 헌신적이고 의존적인 피고용인들의 기여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 - P145
많은 사람의 연금이 주식 보유와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창출에 의존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주택 가격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얻었음에 비추어, 피고용인이면서 동시에 영세 불로소득자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불로소득 게임에서 단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대대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지대 추구를 소득원으로 삼으며 부유한 불로소득자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 P145
불로소득자는 불로소득의 궁극적 원천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노동자가 필요하지만, 노동자와 불로소득을 누리지 않는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연금은 민주적으로 합의된 부과 방법에 따라 국가가 더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징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P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