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가장 큰 위협은 세속주의의 부상이나 교회가 텅텅 비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냉담함과 무관심일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필터버블 너머, 자신이 어울리는 사람들 너머, 앞마당의 경치 너머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소위 제자라는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께 헌신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들의 제자도는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그칠 뿐 어떤 희생도 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와서 그분을 따르고, 세상의 싸구려 장신구를 버리고 힘든 일, 터무니없는 일,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하신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분이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 우리가 지상에서 기울이는 노력에 성령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 P167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주장하거나 자신만이 하나님이 승인하신 입장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사람은 누구나 위험한 땅, 어쩌면 살얼음판을 밟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오만함에 조롱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자신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면서 자신을 반대하는 도전자나비판자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만함 그 자체이다. 정치에서 하나님이 자기편이시기를 열망할 수는 있지만, 확실히 그렇다고 주장하거나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뽐내어서는 안 된다. - P169

결국 정부는 법을 만들고, 법은 정책을 기반으로 하며, 정책은 가치를 기반으로 하고, 가치는 무엇보다 종교에 의해 형성된다. 그렇다면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투표하고,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공직에 출마하고, 정부에서 봉사할수 있는 한, 종교는 항상 정치의 장에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 P173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성경에 투사하는 잘못된 이분법, 이질적인 범주, 무리한 전제들을 인식해야 한다. 복음을 세상적인 사회 개선 프로젝트로 축소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복음은 아름답게 장식된 천국을 갈망하며 도피하려는 영혼을 위한 드라마도 아니다. 복음이 권력, 정치, 경제, 불의와 무관하다고 영적 도피의 길을 가는 것은, 선지자들의 증언, 예수의 가르침, 사도들의 증거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 P181

복음의 정치적 함의를 건전하게 추구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단순히 그들의 금고에 종교적 자본을 쌓아두기 위해 우리의 신앙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신앙을 이용하는 것은 특정 지도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지지가 거래적 교환, 즉 기독교가 문화적 패권을 유지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 P185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국가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고, 정부 지도자들에게 정치적 환심을 사려는 모습과 예수의 이름으로 정치적 골칫거리가 되는 상태의 양축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정부는 공공의 정의와 안전과 복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조직이지만, 불의한 법에 불복종하고 불의한 정부에 저항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결론내렸다. 불복종과 저항은 가급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는 폭압적인 정부에 맞서 정당한 전쟁으로 나아갈수 있는 문이 살짝 열려 있다. - P219

나치즘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의회의 교착 상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고, 경제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열강이 독일에 부과한 엄청난 배상금과 굴욕적인 조건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치즘은 난데없이 나타난 이질적인 정치 이념이 아니었다. 나치즘이 성공했던 것은 사람들이 믿었거나 믿고 싶어 했던 것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나치즘은 다윈주의 과학을 우생학 같은 유사 과학과 결합하고, 루터교의 일부 측면과 니체 철학의 여러 요소, 바그너의 음악, 북유럽 신화, 반유대주의 음모론, 수비학(學), 이상화된 남성성, 민족주의, 군국주의, 반공주의에다 고대 유물의 마력에 대한 믿음까지 아우르는 대단히 절충적인 세계관이었다. 누구나 그 중 무언가에는 매력을 느낄 만했다! 나치즘은 과학적이고 영적이고 진보적이고 효과적이며, 세계에 필요한 신유형의 문명으로 보였다. 게다가 하나의 철학으로서 내적으로 철저한 일관성을 갖추고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자명해 보였기에 유럽 전역에서 지지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 P221

그러므로 우리는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려 들거나, 권위주의 정권에 협력하거나, 기독교를 재해석하여 권위주의 교리에 맞추려 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몇몇 악명 높은 사례가있다. 첫째, 독일의 성서학자 발터 그룬트만(Walter Grundmann)은 열성나치 당원이었고, ‘게르만 기독교인‘(Deutsche Christen)의 주요 멤버였다. 그는 갈릴리인 예수와 유대 민족(Jesus der Galiläer und das Judentum)』이라는 책에서 예수가 갈릴리 출신이고, 갈릴리는 ‘이방인의 갈릴리‘로 알려진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라 반유대적 아리아인인데,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복음서를 위조하고 그의 이방인 신분을 은폐했다고 결론내린다. ……. 둘째, 중국 신학자 C. S. 송은 마오주석의 문화대혁명이 성령의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송은 서구식민주의와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에 비판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시아 문화를 통해, 심지어 공산주의를 통해 내재적으로 일하셔서 아시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신다고 상정했다. - P227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이 국가로부터 특권을 부여받고, 기독교가 진정한 신앙 감정의 일부가 아니라 애국심의 외형적 표현이 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 P230

신학자 곽푸이란은 홍콩의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 신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스러운 징후들이 있었다.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입법 기관을 무시하고, 법원을 충성파들로 채우고, 반대자와 선거 절차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자유언론을 공격하고, 폭력을 묵인하거나 조장하고, 정치적 경쟁자들을 향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했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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