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허물없이 지내면서 친밀감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친밀한 관계에서 정서적 · 신체적·성적으로 다칠 위험이 가장 클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 과감히 믿었던 사람에게서 씻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그런 정서적 외상emotional trauma을겪고 나면 우울증에 취약해지기 쉽다. 어른이 되었을 때 정서적 회복력이 떨어져 인간관계를 맺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서적 외상은 자아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침으로써 나중에 자해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P73
세심한 걸까, 아니면 너무 예민한 걸까? 나는 겉으로는 강철처럼 단단한 척했지만 그건 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속은 두부처럼 물렁했다. 상처를 너무 쉽게 받았고, 세상 사람들 특히 가족과 상대하면서 입은 상처가 마음에 흉터로 남았다. 남들의 말이나 행동에 담긴 뜻을 늘 지나치게 고민하는 버릇이 있었다. 힘든 대화를 하고 나면 악의 없는 말에 상처받고 이미 지나간 말을 오랫동안 곱씹곤 했다. 주변 사람들의 기분 변화를 무척 예민하게 알아챘지만, 혼자 생각에 잠겨 내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하느라 정작 남들 눈에는 뻔히 보이는 것들, 이를테면 친구가 안경을 새로 맞췄다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꿨다거나 하는 외모 변화는 못 알아보기도 했다. 남들의 환심을 사려고 기분을 맞춰주려 애쓰면서도, 그 때문에 내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곤 했다. 초조한 마음에 말을 내뱉고는 나중에 후회하고, 또 그 행동을 마음속으로 골똘히 분석하기를 거듭했다. 민감한 성격 특성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기 때문에 ‘매사에 너무 진지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 사람이 심하게 우울해지면 남들에 대한 걱정이 편집증적 사고로 확대될 수 있다. 남들이 자신을 정말로 싫어하고 뒤에서 자신을 실제로 흉본다고 믿기 시작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게 되기 쉽다. - P74
한번은 어느 지인이 나에게 왜 어머니를 자주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엄마와 내가 같이 있으면 서로 힘든 사이라는 걸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어머니는 자녀를 사랑한다‘고들 보통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세상에 넘친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들겨맞고 괴로워하고 상처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간혹 분위기가 좋을 때는 엄마가 나처럼 생기고 나처럼 말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온전한 정신으로는 내가 도저히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끝없는 전투를 치렀다. 서로 상대에게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그 앙갚음으로 서로를 계속 벌주었다.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