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 이은진 옮김 / 비아토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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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 독일인이 한국 개신교는 개신교가 아니라는 말을 내게 했다. 한국 개신교는 독일 루터교에서 상당히 벗어났음을 강조하는 상당히 오만한 루터교도스러운 말이었지만, 그의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한국의 개신교는 일단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개신교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문화적 토양에서 자란 미국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지만 큰 틀에서 미국 개신교와 유사하고, 성장전략, 교회 내 프로그램, 유행하는 설교 스타일 등이 미국에서 수입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 소위 복음주의 교회가 극우화되어 정치도구화 되는 과정을 르포트타주의 형식으로 구성한 이 책이,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 구성을 기독교에서 주님(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받아들이는 주기도문 혹은 주의 기도의 한 구절인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서 착안하였다. 1부에서는 어떻게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자라고 하는 개신교가 극우화되기 쉬운 토양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개신교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렇게 극우정치와 유착된 교회가 회복 가능한 것인지 살핀다. 다만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책을 구성한 탓에 저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 권력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지니는 모순적인 특징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세속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성한 공간이다. 필멸하는 인간이 신의 도움으로 이 땅에서 신적인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긴장관계를 견디지 못했는지 기꺼이 권력을 차지하려는 길을 택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유럽출신의 백인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지배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이루어진 이상적인 미국을 숭배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기꺼이 권력에 이용당한다. 1950년 파웰이 기꺼이 레이건과 한 몸이 되기로 작정한 이후, 복음주의자들은 극우에 충실히 봉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오바마 당선 이후 위기의식을 느낀 복음주의자들은, 도덕적으로 상당히 결함이 있고, 심지어 ˝한 번도 신에게 용서를 빌어본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트럼프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앨버타가 인터뷰한 내용 중, 미국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면 ‘트럼프 지지, 공화당, 우파, 낙태반대, 동성애혐오‘라고 답할 것이라는 자조섞인 대답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미국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50년 전에는 미국인의 9퍼센트만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보고되었지만, 그 비율은 현재 33퍼센트로 늘어났다. 저자는 극우화된 기독교의 회복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거기에 부정적인 이유는, 남아서 항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떠난다는 현실 때문에 그렇다. 미국 개신교의 다층적인 지적 스펙트럼은 반지성주의적인 경향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신학교에는 성서학을 충실히 다룰 수 있는 학생들이 점점 입학하지 않고 있으며, 목사들의 교양 수준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런 미국의 현실을 먼 산 구경하듯이 하기 힘든 이유는 최근 한국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전광훈 등 극우 목사들이 정치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목사들은 소위 세속적인 일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런데 이는 기독교의 극우화에 큰 억제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치 독일 시대에 교회가 기꺼이 파시즘과 결합하여 온갖 악행을 저지른 데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나온 바르트의 신학과 같은 측면이 아니라, 그저 바깥은 어찌 되든 교회 울타리를 최대한 높이 쌓으면 해결된다는 순진한 태도에서 기인한 반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간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개신교계 사람들은 교단 내에서 영향력이 없는 이들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기꺼이 혐오하는 이들은 대형교회 목사들이고, 교단에서도 영향력이 큰 이들이다. 신학교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검열이 이루어지고,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이 기꺼이 트럼프의 죄를 사해주었던 것처럼, 윤석열의 내란에 기꺼이 세례를 주려고 한다. 교회란 무엇일까. 교회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예수가 그렇게 강조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고민하고, 그에 대한 실천적인 답이 무엇인지 그 어느 때보다 궁리해야 할 때라는 것은, 이 책을 읽는 개신교인들이면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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