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가 정확히 인식했듯이, 불로소득자의 불로소득은 생산자들이 스스로 소비하는 물자의 양을 초과해 생산하는 잉여에서 나온다. 불로소득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대로 100만 파운드를 받는다고 하면, 그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재화와 서비스가 존재해야만 가치를 갖는다. 이 재화와 서비스는 다른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생산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이 불로소득을 얻는다면 그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맞서야만 한다. - P86
세계은행WorldBank 수석 경제학자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부자들이 얻는 수익은 상당 부분 지대 추구가 활발해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금융 부문에서 행해진 지대 추구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지대 추구는 소득을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전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부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용도에서 단순히부를 추출하는 용도로 자원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지대 추구에서 생기는 돈은 생산에 재투자되지 않은 채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 P89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자산을 기반으로 한 불로소득이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다. 대출 제공에 약간의 행정 비용이 들 수도 있지만, 금액이 얼마 안 될뿐더러 차입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소득을 얻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잉여를 생산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야 대출자들이 불로소득으로 구입할 물자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자는 생산자들에게 기생충과 같다. 마이클 허드슨의 표현에 따르면, 이자는 경제에 ‘사중적 비용‘ [dead-weight cost: 사회 전체의 후생이 감소해서 생기는 비용]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한 이전transfer, 즉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이다. 다시 말해 이자는 다른 요인들이 일정하다면 경제를 악화시킨다. - P102
복리 이자는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금액이 고정되는 지대와 달리, 또 생산에서 생기는 이윤과도 달리, 대출자에게 계속 증가하는 불로소득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지속 불가능한 일이다. 이자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지 않은 한, 부채는 결국 상환 불가능한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다. 어떤 물건이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마지막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자연을 보면, 어떤 개체는 일정 기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증가세가 둔화하다가 마침내 멈추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암세포의 증식처럼 예외도 있다. - P105
사적인 신용화폐가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채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힘들여 벌어들인 돈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는 데 대한 보상이 바로 이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출자는 검소하고 신중한 반면 차입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이자지불은 대출자의 미덕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따뜻하고 도덕적인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화폐 대출의 행정 비용을 초과하는 이자는 불로소득이다. 게다가 그렇게 ‘훌륭한‘ 기원을 가진 신용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신용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 P120
신용은 유용할뿐더러 효율적인 현대 경제에 정말 필수적인 요소지만, 이자는 불로소득이자 경제에 사중적 비용으로 작용하며 부를 위쪽으로 재분배하고 미래 세대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겨준다. 윤리적 의문이 제기되고 역기능을 일으키는 이자에 대해서는 이자율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신용을 배분하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저축예금을 이용하든 신용화폐를 창조하든 신용의 배분을 통제하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는다. ‘경제의 지휘부‘를 통제하면서 경제발전의 양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은행에 이러한 권한을 허용하는 경우, 권한에 따르는 책임은 예금자(채권자)와 주주에게 돌아간다. 민간은행은 이익이 나고 주식 가치가 계속 상승하는 한 대출이 어디로 가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건 상관하지 않는다. 금융‘투자‘는 실물‘투자‘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오늘날 금융 엘리트들은 개인·기업·정부를 대상으로 이자를 추출하는 것이 부를 창출하는 한 형태라고 여긴다. - P130
지난 30년 사이에 신자유주의가 부상하면서, 젊은이들은 자신을 시장에서 거래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고용주를 설득하기 위해 취업용 이력서를 잘 작성하라는 충고를 받게 되었다. 한편, 교육기관은 학생들이 노동시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었다.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의존성이 문화적으로 강화된 것이다. - P135
순수 자본가, 즉 기업을 소유만 하고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자본가는 부의 창출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피고용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관리자 포함)가 만드는 생산물의 가치와 생산비의 차액을 전유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그것은 임대료와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기여가 아니라 기존 자산에 대한 사적 통제에의존한다. - P135
우리는 왜 소유주, 특히 자신의 주식이 가져다줄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가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피고용인은 아무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이 제도는 합리적 논쟁이 아닌 힘이 승리한 역사적 투쟁의 산물임에도, 우리는 마치 ‘원래 그런 것‘인 양 그것을 당연시한다. 자본가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어서 노동자가 생산하는 생산물과 수입을 소유한다. - P148
주택 소유자들은 자기 집을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투자‘로 간주하도록 권유받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모기지 부채를 ‘투자‘로 여기기까지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자기 힘으로 불로소득자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한 단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고 자동차나 중고 자전거를 살 때는 원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가? 왜 주택은 그렇지 않을까? 혹자는 집값 상승 덕분에 보통의 주택 소유자가 국가의 경제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로 이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가끔은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필요에 기반을 둔 이전지출처럼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이뤄진 잉여의 분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일부 계층이 사유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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