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직접 보기 전에는 이정도로 마음에 들줄 몰랐는데.. 엄마 마음에도 아이 마음에도요. 직접 책을 보고 나니 정말 정말 마음에 드네요. 개구쟁이 포피의 하루를 따라서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오는 포피의 집~ 너무나 멋진 집을 분양 받은 울 아가 아주 입이 귀에 걸렸네요. 먼저 포피의 하루를 재미있게 읽어요. 첫페이지에서 포피와 친구들의 이름을 소개 해줘서 책 보기가 더 수월해요. 포피와 친구들을 꺼내서 조심스럽게 세워둬요. 이거 세우기 못할줄 알았는데 잘 하더라구요. 친구들을 책 속에서 다시 찾아서 봐요~ 같은 그림찾기라서 그런지 더 잘하네요. 이런 책인줄 모르고서 책이 집으로 변하니 그때부터 아주 신나하네요. 책 크기가 상상이 가시지요? 어찌나 큰지 여럿이서 같이 놀이에도 충분할 듯싶어요. 포피의 방과 거실 욕실이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있어서 웬만한 집 못지 않다니까요. 방에서는 이불을 들출수가 있어서 재워주기도 해요. 커텐도 움직이고 낮도 되고 밤도 될수 있어요. 옷장의 옷걸이도 걸어봐요. 주방의 창문에 심어논 꽃은 키가 쑤욱 자라기도 하고 냉장고도 열어지고 세탁기도 돌려요. 씽크대 내무까지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어요.티브이도 화면이 바뀌어요. 목욕도 하고 세수도 하고 쉬도 해요. 수건,휴지도 움직여요. 창문의 블라인드도요. 이거 하나 하나 다 해보더니 이제는 포피 가지고서는 재줘도 주고 밥도 먹이고 세수도 씻겨주고 하네요. 집안의 구석구석을 다 돌면서요~ 포피네 집에서 포피랑 놀려면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데 곧잘해요. 아이들의 소근육 조작력을 길러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차분하게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인형도 쓰러지도 집도 부서질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조심성을 알려주고 자기 물건은 소중하게 다뤄야 함을 알려주네요. 집안의 물건에 대해서 저절로 익히면서 바른 습관을 길러줘요. 특히 화장실을 왜이렇게 좋아하는지 세수도 여러번 해주고 목욕도 씻겨주고 쉬야도 해주구요. 포피네 변기에 앉으려고 까지 하더라구요~ 포피네 집이 너무 마음에 드나봐요. 아이에게 조금은 이르지 않을까-인형을 찢거나 망가트릴까봐 조금 걱정했거든요-싶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차분히 앉아서 잘 가지고 놀더라구요. 다 놀고나면 집 정리는 엄마가 해주시만 포피와 친구들은 스스로 정리하니 정리하는 습관도 길러주어서 더 좋아요. 다 놀고나면 끈으로 묶어두면 한권의 책이 되서 책꽂이에 쑤욱 넣으면 되지요~ 너무나 멋진 집을 갖게 된 우리 아가~집처럼 멋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해주어서 더 마음에 드는 책이에요.
저처럼 아가들을 예뻐하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로도 전 그닥 그렇게 아가들을 예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 책 속의 빨간 암탉은 아기들을 저리도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남의 아가들도 다 봐줄 정도면 정말 아가들을 좋아하나봐요.전 지금 하나 보는 것도 끙끙 대고 힘들어 하는데 말이에요. 그런 빨간 암탉의 마음을 아는지 이름 모를 알을 품게 되는 빨간 암탉~ 암탉은 그 알이 누구든지 간에 사랑하고 돌보아줄 아기를 정말 간절하게 기다리고 사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지요. 그런 암탉에게 주위의 친구들이 묻지요. 그 알이 황새의 알이 아닐까? 흑고니의 알이 아닐까? 갈매기의 알인가? 부엉이의 알이 아닐까? 하구요. 그런 질문을 받은 암탉의 대답은 한결 같아요. 그 알이 누구의 알이건 사랑해 줄거라는 거. 옆에서 그렇게 묻는 이웃들이 바로 우리네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입양을 한다고 하면 옆에서 말이 더 많은 거 처럼 말이에요. 부모는 다 준비가 되어서 그 아이가 어떤 모습이건간데 어떤 상황이건간에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바라보고 참견하는 그런 모습이 오버랩 되네요. 아..이런 빨간 암탉의 마음을 아는지 알에서 나온 작은 아가는 묻지요. 엄마가 되어 줄수 있나요? 나를 사랑해줄 수 있나요? 하구요.아마도 자기를 품어준 빨간 암탉의 엄마가 되고픈 간절한 마음을 알속에서도 다 느꼈던 것이겠지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내 아이를 내 뱃속으로 낳아서 사랑하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길러서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낳은 정, 기른 정~ 뭐 이런 식의 표현들을 많이 하지만. 내가 내 아이를 생각해보면 내가 낳아서 더 사랑한다기 보다 내가 헌신을 다해서 이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젖을 주고 놀아주고 해서 더 사랑하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말이지 아이들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내 아이, 내가 돌보아줄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내 아이도 사랑스럽게 보이지만 다른 아가들 까지도 사랑스럽게 보게 되는 듯해요. 아이를 통해서 세상을 더 넓고 관대하게 보게 되는 듯해서 어린 아가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되요. 아마도 빨간 암탉도 이 새로운 알로 인해 지금보다도 더 깊은 사랑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마 빨간 암탉의 새로운 아가가 병아리가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지요. 희수도 책 내용을 이해하는지 사자 인형을 마치 자기 아기처럼 데리고 와서 같이 봐요. 친절하게 책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꼭 안아주기도 하구요. 이럴때는 희수도 아가가 아니라 의젓해보이네요.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는 어른, 아이가 따로 없음을 희수를 보면서 느껴요. 또 동물에게도 이런 마음이 똑같다는 걸 빨간 암탉을 보면서 다시 느끼네요.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그렇게 만족한다거나 행복하다는 느낌을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사는 듯하다. 마치 작은 곰처럼 말이다. 편히 쉴 집이 있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행복을 스스로 찾아 떠나는 작은곰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작은곰은 행복을 찾아서 여행을 시작하고 시냇물에서 물을 한모금 먹고 노란 들꽃에 앉은 벌을 보면서 나무 위에서 노래하느 새들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미소를 짓고 있는 작은 곰의 모습에 보는 나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를 둥지 안에 넣어주면서 말할수 없이 기분이 좋아진 작은 곰. 이런 기분을 행복하다고 해야하는 건지 아직은 작은 곰은 모르나 보다. 그러나 작은 곰의 표정에는 벌써 행복이 가득 묻어나있다. 객관적으로 보는 나는 작은곰이 행복해 보이는데 왜 작은 곰은 그걸 못 느낄까? 개구리들이 합창에 장단을 맞추며 자신이 잘 하는 걸 찾은 작은곰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그 기쁨에 빠져 들기도 전에 행복을 찾으러 길을 다시 떠난다. 아..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지금 현재가 행복한데도 그걸모르고 행복을 찾으러 나선다니... 마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큰곰을 만나서 지금 까지 만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은 곰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더 행복해 보인다. 아마도 같이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찾았기 때문에 더 그런 듯하다. "행복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어, 살짝 고개를 돌려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말이야" 큰곰의 말처럼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살짝 고개를 돌리는 일을 종종 잊는 듯하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면서 행복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그렇게 전진만 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행복하다고 말해본게 언제인지 생각하게 된다. 또 아이에게 너랑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게 몇 번이나 되는지 말이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정작 너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구나. 너와 무언가를 함께 해서 행복하구나 하는 말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는 듯하다.. 행복이란 객관적인 기준으로 찾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에도 왜 이리 인색한지. 아이들이 보는 책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느낌이 더 든다. 아이들에게는 행복의 의미와 느낌을 제대로 잘 전달해줄 수 있고 어른들에게는 살짝 고개 돌려 행복을 찾아볼 마음이 여유를 주는 작은 곰이다.
요즘 희수는 꼬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사자 인형을 가지고 와서 꼬리를 가르키고 자기 엉덩이 만지면서 자기는 꼬리가 없다는 의사 표현을 하네요. 사람은 꼬리가 없다고 말해도 꼬리가 있는 사자가 부러운가봐요. 그런 차에 꼬리가 있으면 좋겠어! 이책을 파주책잔치 때 만나게 되었어요. 어찌나 눈에 확 들어 오던지요.. 표지의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 희수의 모습 같아서 한참을 웃었어요. 동물들이 꼬리는 참 여러 용도로 쓰이네요. 동물들 마다 자기의 환경에 적합한 용도로 쓰이게 진화해갔나봐요. ~ 꼬리도 괜찮아 ~ 하기 좋을거야 이렇게 반복되는 말이 너무 재미나요. 읽어주면서도 리듬감 있게 읽어주니 동시 같은 느낌도 많이 나네요.더군다나 그 동물의 꼬리를 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더 재미있어요.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람만 꼬리가 없다고 생각 했어요. 아..그런데 사람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동물들이 꼬리가 없는줄 이제야 알았네요. 동물이면 다 꼬리가 있다고 말해준 제가 너무 무지했네요. 더구나 누가 누군지도 잘 몰라서 아빠의 도움을 받아서야 제대로 알려줄수 있었어요. ㅎㅎ 제일 마지막에 쭈그려 앉아서 엉덩이만 보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책 속 주인공을 따라서 희수도 꼬리를 달기로 했어요. 신문지로 꼬리 만들기 전에 먼저 신문지로 마음껏 놀았어요. 이제는 혼자서 신문지 찢기도 잘해요. 신나서 박박 찢고 신문지도 날리고~ 시키지 않아도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다 하네요. 한참 놀후에는 스타킹에 신문지 넣었어요. 비닐봉지에 넣기는 많이 했어도 스타킹에 넣기는 처음이네요. 처음에는 스타킹이 힘이 없으니 잘 못하더니 조금 하니 요령을 터득하고 저 신문지를 다 넣었어요. ㅋㅋ 중간에 옷 갈아 입은건 신문지로 놀다가 쉬를 하는 바람에 그래요.. 만든 꼬리를 테이프로 엉덩이에 딱 달고서는 열심히 열심히 기어봐요. 스타킹의 감촉이 부드러워서그런지 꼬리 만져보고도 좋아하네요. 배에도 감싸보고 다리에도 간질 간질해봐요. 부드러운 스타킹의 감촉과 푹신푹신해서 그런지 여우꼬리 처럼 베고 자도 될거 같아요.ㅎㅎ 책을 보니 꼬리가 없는 동물도 많더라구요. 모처럼 동물원 나들이에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다 확인을 하려고 했는데.. 미어캣, 악어,원숭이,공작.재규어,여우,소-들소로 대신 ㅎㅎ 꼬리 확인하고 용도도 열심히 설명해주었어요. 꼬리가 퇴화된 것들을 살펴보는게 목적이었는데 원숭이 중에서 기번은 꼬리가 없더라구요. 전 원숭이는 다 꼬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사진의 원숭이가 기번이에요. 유인원관은 공사중이라서 볼수가 없어서 너무 아쉽더라구요. 아 그리고 오늘 보면서 꼬리만 열심히 열심히 봤는데 사슴도 꼬리가 정말 짧더라구요.달리다 만 것처럼요. 원숭이는 역시나 꼬리 종류가 다양해서 돼지꼬리 원숭이.사자꼬리 원숭이 이런 식으로 이름 붙인 것들도 있더라구요. 노 모양으로 생긴 비버 꼬리도 확실히 보고 왔어요. 동물원 가면 그냥 무슨 동물 이구나 하고 보기 바뻤는데 이렇게 목적을 정하고서 보니 더 재미있게 구경하게 되네요. 희수도 책을 보고 나서 동물원에 가서 그런지 더 흥미 있게 보더라구요. 다음에는 오늘 못본 고릴라랑 오랑우탄, 그리고 코알라도 꼭 보고 와야겠어요
어릴때 읽었던 기억에 며느리가 소박 맞고 끝인가 가물가물한 결말에 얼른 책을 보게 되었다. 책 표지의 며느리는 걸레질을 하면서도 부엌일을 하면서도 호미질을 하면서도 말을 하면서도 방귀를 뽕뽕~ 며느리의 표정을 봐서는 행복해 보이는 걸 보면 아마도 소박맞고 끝나지는 않나보다. 방귀때문에 소박맞고 친정으로 쫓겨 가야 한다니..어찌보면 너무나 불합리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데..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 며느리에게 있어서는 금기시 되었으니 며느리들에게 금기시 된일이 어찌 생리현상뿐이었으랴~시댁에 관계된 모든 억눌린 감정이 방귀로 표출되서 폭발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책을 보는 또 다른 묘미는 변화하는 며느리의 얼굴색이다. 환한 며느리의 얼굴이 누렇게 되고 다시금 환해지게 된다. 얼굴만 봐도 아이고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옛날의 미인은 저렇게 얼굴도 둥글둥글하고 어깨도 조금 벌어져야 했나보다. 해학적이면서도 전통미와 현대감이 어우러진 그림은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며느리가 시집와서 삼년만에 뀌는 방귀에 온 가족들이 마치 회오리바람속을 날아가듯 물건을 붙잡고 있는 모습은 어찌보면 통쾌하기까지하다. 다양한 방귀소리는 ㅋㅋ 누구나 들어 봄직한 소리이기에 더 웃음이 나오게 된다. 구어체의 ~ 했어.~지 하는 문체는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방귀를 이렇게 뀌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자기가 능력은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아주 유용하게 쓰일수 있고 또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제대로 사용해야함을 보여준다. 배딸때 쓰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