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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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해당 도서 마케팅이 지금껏 보지 못한 형식이라 흥미를 자극했다. 가제본이긴 하지만 표지도 너무 독특했고, 서평단 미션 방식도 책 목적성에 맞춰 콘셉트가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얼마 만에 써보는 OMR, 필적 확인란인지 반갑기도 했고 감회가 새로웠다.

솔직히 수능을 본 게 거의 4년 전이기도 하고, 지원하려는 학과 입시 방식상 수능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서 수능 준비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수능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함께 온 작가님들의 편지에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담긴 방향으로 서평을 부탁한다는 말씀에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봤다.

수능을 거쳐온 이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수능과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잃어버린 본래의 목적을 되살려야 한다는 책의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서평을 작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평가원도 교육부도 외부의 동력이 발생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국민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이 이를 자극하는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걸 확신한다.


본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취지는 사고력을 중심으로 한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가 된 이상 해가 바뀔수록 본래의 취지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수능은 어떨까. 사고력 평가 시험으로서 기능이 완전히 보존된 것도 아니고, 지식 암기형 시험도 아니라고 한다.

책은 '루빅스 큐브' 게임을 빗대어 수능 해킹을 풀이한다. 핵심은 사고력이나 논리력 자체는 암기가 아닐지라도 논리 흐름과 접근법을 외우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수능은 이렇게 퍼즐을 풀 듯 반복되는 공식을 머리에 익혀 그 공식을 모두 마스터한 자만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수능 시험을 치러온 자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수능을 치를 자들, 그들의 학부모들도 모두 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묵인하고 있다.

사교육 업계가 해온 일이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수능 해킹이어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에 평가원의 개입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해킹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개입한 건 아니다. 그저 표현만을 손보는 수준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공무원 조직이므로 지금껏 해왔던 방식을 유지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측 가능한 문항, 정형화된 문항을 안정적으로 파고드니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과목에서 문제풀이 테크닉이 강조된다.

하지만 이는 도리어 학생들의 부담을 늘리고 사교육 유인을 증가시킨다. 여기서 퍼즐 풀이 난이도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이러한 방식을 선호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2014년 이전처럼 원리와 개념 위주로 출제한다는 선택지가 배제된 상황 속에서 결론적으론 사교육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학문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가르치는 사교육에 오로지 의존한다는 말이다.

덧붙여 본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말 그대로 공교육이 문제풀이 테크닉과 찍는 방식을 가르치진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서도 나왔듯,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들도 현재 수능 입시 제도에 위화감을 느낀다.

다만 이러한 제도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는 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학벌 중심 사회가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에만 치중돼 있어 정작 본질적인 알맹이는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능 하나로 수험생들의 12년 학교생활이 그저 허무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한 개인이 발전 가능성을 막아버릴 수도 있는 장애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학교 공부와 수능 공부가 따로 노는 이 상황이 웃을 수 없는 블랙 코미디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수능 입시 제도가 각성하기 위해선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고, 퍼즐식 문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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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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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둘러싼 시공간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나의 취미로 자리 잡은 음악, 영화, 미디어아트가 어떤 과학적 원리로 내게 감각과 전율을 전달하는 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내가 흥미를 두고 있는 부분인 예술가의 창작 의도와 해당 작품에서 내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부분만 집요하게 탐색하고, 해당 예술 장르가 어떤 과학적인 원리로 움직여 내게 이러한 감각을 와닿게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문화와 물리학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나 하는 의문을 가득 품은 채로 책을 펼쳤다.

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프롤로그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대한 과학자, 위대한 예술가들을 작품과 업적을 알고 있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빛나고 있던 소망과 욕망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물리학과 문화가 어우러져 내가 재미있게 보고 누리고 있는 모든 미디어 콘텐츠들이 탄생한다는 사실이 새삼 새로운 발견이 되었다.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창의성이 얼마나 거대한지, 과학적 발견에서 시작한 인간의 창의성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와 여러 학자들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나아가 제목처럼 "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차례에 잘 나열되어 있다.


책 전반부에서는 위대한 문명을 가능케한 과학적 장치에 대해 풀어나가고, 후반부에서는 우리가 흔히들 가질 수 있는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 우리나라 과학 서사가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에 대해 서술한다.

나아가 무한한 우주에서 유한한 인간이 과학과 문화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고리를 만드는지, 인간에게서 나오는 창의성 본질의 가치는 얼마나 거대한지 잘 개괄되어 있다.

때론 과학적 관점으로, 물리적 관점으로, 예술적 관점으로 서술돼 있어 독자로부터 하여금 특정 현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좀 더 넓혀준다.

이러한 힘이 다소 어려운 내용이더라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된다.


책은 '변화'를 거듭해서 강조한다.

무한한 우주와 시공간을 작동하게 만드는 과학을 쉼 없이 탐구하는 인간들은 시대가 언제든 존재한다.

그런데 더욱 위대한 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이다.

이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목이 눈에 밟혔다.

우리가 문명을 누리며 사는 건 모두 인간들의 집요한 연구와 실행, 그리고 낭만적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현실에서도 SF 창작물이나 미래 과학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귀를 닫아버리는 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하는 운전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란 걸 책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자연과 우주의 경계에 서 미래를 개척하는 능동적인 자가 될 것인지,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에게 마냥 수동적으로 이끌려 갈지는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다.


유명한 과학자들과 물리학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의 업적과 여러 분야의 지식이 섞인 정보들이 나열돼 있는 책 속에서 작가가 가장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일 테다.

인간의 상상력과 사고력이 미래를 개척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면 달라질 테다.

당장 우리가 흔히들 쓰고 있는 애플 제품도 모두 인간의 작은 상상력에서 생겨난 거대한 결과물이라는 걸 책에서 흥미롭게 풀어냈으니 말이다.

AI에게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마냥 착각해 좌절하고 있는 자들에게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다시 일어나게 해줄 든든한 가이드가 돼 줄 책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이성과 감각, 과학과 문화, 질서와 무질서 서로 다른 성질의 공간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우리의 시공간을 더더욱 넓은 시야로 바라보며, 새로운 존재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미래의 운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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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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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속에 담긴 세계

한 사람과 가까워질 때면 늘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게 있다. 분위기와 이미지 같은 것들. 어떤 사물이나 동물, 날씨 같은 것들을 빗대며 이런 것들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사람에게 느끼곤 한다.

그러면 왜 이 사람에겐 이런 분위기가 날까, 이 사람을 보면 이것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고 싶어진다.

분명 경험과 감각으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유일무이한 세상일 테니, 나는 감히 침범하고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일 테니.

특정한 분위기가 외면(말투, 표정, 행동)에서 드러날 때 나는 이 사람의 세상을 조금 엿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아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이 사람을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최지은 시인의 에세이를 읽고 앞서 말한 내 생각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첫 번째 과정이라는 것을. 그건 결코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세계를 통해 나의 세계가 더 충만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최지은 시인의 기록은 그녀의 유년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하나의 세상에 대한 묘사다.

그녀의 세상은 분명 수많은 마음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본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정말 시인과 가만히 눈을 맞춘다는 마음으로 고요히, 시인의 충만한 여름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곳엔 다정과 존중, 그리고 애정이 흠뻑 녹아들어 있다.

『우리의 여름에게』에는 그런 장면들이 가득 담겨있다. 책 표지에 펼쳐진 싱그럽고 아늑한 여름의 이미지들이.

장면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그녀의 세상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닿았을 때, 과연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책을 덮고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페이지에 머무르는 내내 힐링을 받았던 나는 그녀의 진득하고 사랑 가득한 세상 속에 최대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다.


상실과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언어


상실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 혹은 가까운 사람을 잃는 상실을 직접 겪게 되면 커다란 상실감에 고통받아 도망치고 싶기 마련일 테다.

시인은 자신의 상실의 무게를 이미지화하며,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손에 쥐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부지런히 배워간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언어가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고뇌에 빠졌다. 언어 하나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런 거대한 힘이 어디서 나올까.

이런 의문은 시인이 발견한 언어 '돌멩이'의 이미지를 묘사한 구절을 보고 해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단순 언어인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언어이기 전 하나의 형태가 한 사람의 시선과 맞닿아 세계의 구성이 될 수도 있음을, 그렇게 되었을 때의 벅참을 시인은 알려준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가 마음을 살리는 일이고,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로부터 하여금 스며들게 한다.


순전히 사랑만으로


예쁜 것은 소중히 간직하고 오래오래 보관하여 가끔씩 꺼내보고 싶다. 정말 가끔씩.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을 익숙함으로 인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구절들이 한가득이었다. 사랑과 선함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시인이 유년 시절에 느꼈던 할머니의 한 여름 오이지에 담긴 사랑,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생명의 생동감 같은 것들. 시인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는 감각들을 결코 놓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감각들이 타인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존중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든 걸까.

이런 추측을 하게 만드는 것도 타인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는 것 같고,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사랑을 만드는 장면들은 어디에서든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은 말해주는 것 같다.

그 사랑들이 모여 거대해질 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랑의 힘


시인은 공황장애를 겪었던 과거, 자신이 불안정한 상태의 상황 당시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쉼 없이 부유하던 자신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 책에서 모두 담담히 고백한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감정을 형태화하면서 말이다.

문장을 통해 형태화되고,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건 시인이 받았던 사랑이 만들어낸 힘이란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시인이 받았던 사랑을 통해 한층 변화를 겪은 문장들에선 시인이 건네는 사랑과 용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삶이 세계가 되고 문학으로 녹아들 때


한 편의 독립영화 같고 소설 같은 이야기들에 몰입하다가 이 책은 시인이 쓴 에세이라는 것을 책 후반부쯤 자각했다.

시인의 삶 조각조각이 여러 편의 시가 되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고 벅찼다.

물론 시인마다 각자 자신의 시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다를 테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경험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독자를 새로운 시공으로 안내한다는 건 여느 시인도 다름없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시는 정말 한계가 없구나 하며 생각해 보는 장이었다.

시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미지에서 출발한 것이 또 하나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말한다.

지금은 눈앞에 없어져 버린 순간들은 "있었던" 것만으로도 어떤 시기와 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과 같이 그 순간을 보존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로 탄생되기도 한다.

사실 최지은 시인의 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시인의 시가 매우 궁금해졌다. 그녀의 여름이 어떤 형태의 시 세계로 구성되었을지.

사랑과 선함으로 섬세하게 구성된 그녀의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힐링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랑을 알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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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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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책이다. 다른 리뷰들을 보니 소설 한 편 한 편이 이어지는 연작소설 같다는 말도 있어서 차례대로 읽었다.

자연스럽게 「검은 말」부터 읽게 되었는데 첫 문장부터 이서아 작가의 문장에 압도되었다.

지금 당장 검은 말 한 마리를 상상하시라. 그것도 맹렬히 달리는 놈으로.

「검은 말」 中 9p

첫 문장부터 강렬한 이미지 묘사에 검은 말의 이미지를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생동한 말의 움직임이 절로 떠올랐다.

책 뒤표지에 수록된 김보경 평론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거침없이 내달리면서도 총알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표적을 맞혀" 본인의 이야기를 선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느껴지기도 했다. (첫 출간한 책이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신예 작가이기도 하고 이번 소설집을 통해 이서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작가의 문장은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그만큼 소설 한 편 한 편에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너무나 강렬했고, 정말 첫 번째 단편에서 등장한 검은 말의 이미지처럼 그녀의 글은 거침없다.

하지만 나에겐 조금 읽기가 힘든 부분도 있었다. 나는 낯선 이미지와 장면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지거나 인물이 소설의 흐름과는 조금 뒤틀린 행동을 보여줄 때 혼란을 느끼는 편인데, 이런 부분이 일곱 편의 소설마다 빈번히 나와 조금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적인 부분이지,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특징이자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이어야만 했다는 걸 책을 덮고 깨닫게 되었다.

그저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게 모두 그들의 생존을 위한 고귀한 투쟁이었다.

일곱 편의 소설 속 화자는 모두 어린 소녀들이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으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와 만나 연대를 맺는다.

그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들과 맞서 나름대로 그들에게 저항한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처 입고, 좌절하고, 절망에 빠지더라도 자신들의 목표 혹은 표적을 향해 질주한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비록 공간은 낯설더라도 실제 우리 사회 문제의식과 매우 근접해 있다. 어린 소녀들과 여성에게 향해지는 희롱과 위협, 혐오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보며 쾌감을 주는 동시에 씁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처절하게 저항하고, 날카롭게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인물들의 바람은 그저 위계질서가 없고,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공간 속에서 사는 것.

책 표지에서나마 이들의 이상적인 공간이 형태화된 듯하다.

신비로운 듯하면서 따뜻한 색감의 배경 속에 펼쳐진 바다. 돌고래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넓은 공간. 언뜻 보면 놀이공원처럼 보이기도 하면서도 자연과 공존하는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누군가의 "낙원"을 연상케하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범죄와 혐오가 없던 해는 한 번도 없었다. 자연 훼손이 없고, 악한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계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을 띨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부드럽고 평화로워 보이는 배경 한 가운 데에 책 제목이 굵은 서체로 배치해 놓은 게 흔들리지 않은 소설 속 인물들의 굳건한 마음같이 느껴져 표지에 조금 여운이 남았다.


현실성과 쾌감의 줄타기


『어린 심장 훈련』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인 '쾌감'이다.

책을 몰입해서 읽다 보면 화자에게 몰입을 하게 되는데, 천진난만한 순수한 소녀가 대상에게 순수함을 빼앗기고 당하는 서사와 상반되는 이야기 전개에 간접적인 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해당 스샷은 「초록 땅의 수혜자들」에서 화자와 수정이 예술가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성적으로 위협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두 인물이 그에게 응징을 하는 장면이다.

우스꽝스럽게도, 그로테스크하게도, 기괴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감각에서 통쾌함에 도달할 수 있는 해당 단편의 장면 중 가장 강렬했다.


어린 소녀가 한없이 크고 위협적인 존재에게 대응하는 장면은 소설 곳곳에 배치돼 있다.

각 단편마다 기호나 도형을 사용해 형태를 만들어 표현한 부분이 책 곳곳에 빈번히 보인다.

「사하라의 DMZ」 중 무례한 질문을 쏟아부으며 여성을 바라보는 삐뚤어진 시선, 기저에 혐오가 깔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들처럼 굴고 있는" (261p) 외국인 가이드 남성에게 의연한 태도로 대하는 인물의 모습을 시각화한 부분이 꽤나 신선했다.

본문 중 괄호를 열어 그들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인물의 속마음을 검열 없이 그대로 넣기도 하고, 비속어 사용도 거리낌 없다.

그동안 꽤 많은 페미니즘 소설과 여성 범죄와 여성 혐오를 문제의식으로 삼는 소설을 봐왔어도 이런 파격적인 시도는 처음이다. (물론 저의 독서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의 대응 후 결말이 마냥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싸움과 결과까지의 과정은 허무에 저버리지 않는다.

그저 훈련 중 하나일 뿐이다. 어린 소녀들이 붙들고 살아야 하는 생이 가혹하고 부당하지만 말이다. 절대 허무와 비관으로 완결되지 않음을 단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스며든 수많은 폭력과 혐오들

일곱 편의 단편 속 화자는 여러 폭력 속에서 저항한다. 『어린 심장 훈련』은 동화적인 요소와 누아르 장르가 결합해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이미지들이 등장해서 신선한 느낌을 준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폭력은 결코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모의 아동학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통제,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교사, 어린 여자 직원들을 추행하는 공장장과 상사, 어떤 직업을 갖든 근무복으로 성적 대상화가 되는 여성, 국경을 넘어서도 성차별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도 약자를 향하는 폭력은 예부터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범죄로 판정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들" (261p)이라는 구절을 보고 어떤 남성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약자를 향한 폭력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너무나 깊숙이 스며들고 말았다.

소설은 이들을 부각해 보여줌으로써 다시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지금도 존재함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킨다.

미학과 주제의식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의 문장력에 감탄했다.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들


각 단편마다 지켜야 할 것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 이유 없는 폭력에 노출돼 있는 자들끼리 뭉쳐 보호자가 돼주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우위에 서 보호를 목적으로 명령을 하는 인물도 있다. 체벌에 희생된 자연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조금 난해할 수도 있는 소설의 흐름 속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들이 더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더 이상 무분별한 폭력과 혐오로 인한 희생자가 없어져야 할 것을, 이것을 피해자인 자신들이 저항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일임을 일곱 편의 단편은 신선한 시도들과 방식들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여성들은 더 이상 약자인 채로 굴복할 수 없다.


일곱 편의 단편을 다 읽고 책 소개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난무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평정하러 온 소녀들의 고군분투기"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살 때에만 나는 진실로 살아있었다."

소녀들은 능동적으로 자신과 더불어 자신과 비슷한 소녀를 보호하며 어른들, 그리고 성인 남자들과 맞서 싸운다.

낙관과 비관을 무한 반복하지만, 이것이 그들이 사는 생의 진실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혐오, 체벌은 이야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위협적인 어른들에게 저항하며 살아가는 소녀들이 있음을 소설은 독자들에게 단단히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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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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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색감을 바탕으로 귀여운 표지 디자인과 달리,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날카롭고 단호하다. 하지만 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하거나 익숙지 않은 자리에서 경직되고 얼어붙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하는 작가의 따뜻한 의도가 담겨 있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와닿을 것 같다.

감히 말하자면, 해당 책을 읽는 내내 나와 같은 또래인 20대들이 읽기 가장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연령대 독자들을 배제하는 말은 아니다. SNS나 유튜브 숏폼 같은 영상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연령대는 20대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한 도파민에 묻혀 저도 모르게 간과한 사실들을 직시하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란 걸 확신할 수 있다. (실제 나도 그랬고.) 나아가 실제 일상에서도 귀중한 양분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자기 계발서, 에세이가 가진 강점이니깐 말이다.

이 책이 가장 매력적인 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매우 긴밀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필수적으로 여러 타인과 의사소통이 요구되고, 부적절한 언어와 화법으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이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겪은 이들도 많을 테다.

본문에선 아주 사소히다고 넘겨버린 지점, 그리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멋대로 단정 지어버린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 원인에 대해 분석한다. 나아가 어떤 심리에서 나온 건지, 묻어버린 진심은 무엇인지, 그리고 품격 있는 대안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말이 입 밖으로 혹은 텍스트로 나오지 못할 때 응어리가 되어 마음이 된다고 생각한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반죽해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선 시간과 그에 적절한 말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일지 깨닫기 위해선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행동으로 옮긴다. 의지가 있는 자에겐 스스로에게 필요한 말이 반드시 힘을 발휘할 것이란 것을, 작가는 확신을 준다.

누군가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례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다.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지적해 주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더욱 커져간다.

본문에서도 나와있듯이 감정적으로 화를 내며 토로하기보단, 감정 전달 -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을 테다.

이런 당연한 말을 품은 대목이 나를 안심시켰다. 혹여 내가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이 또한 작가의 논리적인 설득력 덕분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작가가 본문에서 강조했던 "설득은 과학자처럼"을 복습하게 된다.


대충 넘어가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거나 저거나 그게 그거지"라고 찝찝한 마음을 묻어두는 건

그저 회피해 버리는 아주 안 좋은 방법이다. 흔히들 말하는 깊게 생각하기 피곤하다, 귀찮다 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중단하는 건

결국 자신도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는데 언어 수준은 낮은 채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거다. 그러나 발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결코 없을 거다.

정말 준비된 누구나 실천 가능한 언어표현 기술들이 실려 있는 책이니 내 주변 모든 이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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