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가까워질 때면 늘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게 있다. 분위기와 이미지 같은 것들. 어떤 사물이나 동물, 날씨 같은 것들을 빗대며 이런 것들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사람에게 느끼곤 한다.
그러면 왜 이 사람에겐 이런 분위기가 날까, 이 사람을 보면 이것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알고 싶어진다.
분명 경험과 감각으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유일무이한 세상일 테니, 나는 감히 침범하고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일 테니.
특정한 분위기가 외면(말투, 표정, 행동)에서 드러날 때 나는 이 사람의 세상을 조금 엿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아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이 사람을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최지은 시인의 에세이를 읽고 앞서 말한 내 생각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첫 번째 과정이라는 것을. 그건 결코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세계를 통해 나의 세계가 더 충만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최지은 시인의 기록은 그녀의 유년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하나의 세상에 대한 묘사다.
그녀의 세상은 분명 수많은 마음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본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정말 시인과 가만히 눈을 맞춘다는 마음으로 고요히, 시인의 충만한 여름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곳엔 다정과 존중, 그리고 애정이 흠뻑 녹아들어 있다.
『우리의 여름에게』에는 그런 장면들이 가득 담겨있다. 책 표지에 펼쳐진 싱그럽고 아늑한 여름의 이미지들이.
장면들이 겹쳐져 만들어진 그녀의 세상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닿았을 때, 과연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책을 덮고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페이지에 머무르는 내내 힐링을 받았던 나는 그녀의 진득하고 사랑 가득한 세상 속에 최대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다.
상실과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언어
상실은 나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란 건 누구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 혹은 가까운 사람을 잃는 상실을 직접 겪게 되면 커다란 상실감에 고통받아 도망치고 싶기 마련일 테다.
시인은 자신의 상실의 무게를 이미지화하며, 모든 어린이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손에 쥐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부지런히 배워간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언어가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고뇌에 빠졌다. 언어 하나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런 거대한 힘이 어디서 나올까.
이런 의문은 시인이 발견한 언어 '돌멩이'의 이미지를 묘사한 구절을 보고 해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언어는 단순 언어인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언어이기 전 하나의 형태가 한 사람의 시선과 맞닿아 세계의 구성이 될 수도 있음을, 그렇게 되었을 때의 벅참을 시인은 알려준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언어가 마음을 살리는 일이고,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독자들로부터 하여금 스며들게 한다.
순전히 사랑만으로
예쁜 것은 소중히 간직하고 오래오래 보관하여 가끔씩 꺼내보고 싶다. 정말 가끔씩.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을 익숙함으로 인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구절들이 한가득이었다. 사랑과 선함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시인이 유년 시절에 느꼈던 할머니의 한 여름 오이지에 담긴 사랑,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생명의 생동감 같은 것들. 시인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는 감각들을 결코 놓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감각들이 타인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존중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든 걸까.
이런 추측을 하게 만드는 것도 타인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장되는 것 같고,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사랑을 만드는 장면들은 어디에서든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은 말해주는 것 같다.
그 사랑들이 모여 거대해질 때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다.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랑의 힘
시인은 공황장애를 겪었던 과거, 자신이 불안정한 상태의 상황 당시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쉼 없이 부유하던 자신의 목소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 책에서 모두 담담히 고백한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보이지 않는 감정을 형태화하면서 말이다.
문장을 통해 형태화되고,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건 참으로 근사한 일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건 시인이 받았던 사랑이 만들어낸 힘이란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시인이 받았던 사랑을 통해 한층 변화를 겪은 문장들에선 시인이 건네는 사랑과 용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삶이 세계가 되고 문학으로 녹아들 때
한 편의 독립영화 같고 소설 같은 이야기들에 몰입하다가 이 책은 시인이 쓴 에세이라는 것을 책 후반부쯤 자각했다.
시인의 삶 조각조각이 여러 편의 시가 되는 과정이 참 흥미로웠고 벅찼다.
물론 시인마다 각자 자신의 시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이나 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다를 테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경험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독자를 새로운 시공으로 안내한다는 건 여느 시인도 다름없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시는 정말 한계가 없구나 하며 생각해 보는 장이었다.
시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으며, 미지에서 출발한 것이 또 하나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말한다.
지금은 눈앞에 없어져 버린 순간들은 "있었던" 것만으로도 어떤 시기와 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과 같이 그 순간을 보존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로 탄생되기도 한다.
사실 최지은 시인의 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시인의 시가 매우 궁금해졌다. 그녀의 여름이 어떤 형태의 시 세계로 구성되었을지.
사랑과 선함으로 섬세하게 구성된 그녀의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힐링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사랑을 알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