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철학 - 사상과 그 원천 들뢰즈의 창 3
서동욱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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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팬레터 수준에 불과했던 기존의 들뢰즈 선전 팜플렛들과 달리 이 책은 정말로 들뢰즈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 저작이다. 단순한 짝사랑이 아니라 들뢰즈, 주변 철학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풍부하고도 왕성한 역량을 드러낸다. 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저작에 대해 칭찬하고 있는 바다.

그럼에도 이 저작은 미완성의 저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모든 저작들이 완벽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미완성이다. 먼저 첫번째 미완성은 저자에 대한 기대에 상응한다. 기존의 저작인 "차이와 타자"에서 저자의 사유도정에 동감하는 많은 독자들은 단순히 저자가 들뢰즈 개설서-아무리 충실하고 한국에 보기 드문 내용을 지녔다 하더라도-에 머무르는데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차이와 타자"에서 나타듯이 저자가 걸어갈 사유의 길은 궁극적으로 들뢰즈를 추종하는 데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레비나스와 들뢰즈 사이에서 서동욱의 철학으로 나아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두번재 미완성은 저자에 대한 실망에 상응한다. 들뢰즈 개설서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들뢰즈 초기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베르그손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사실 들뢰즈의 존재론은 베르그손에게서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데(마이클 하트의 개설서는 베르그손에서 시작한다), 굳이 "베르그손주의"라는 짧지만 간결하고 힘찬 들뢰즈의 저작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니체와 철학"만 보더라도 그 내용은 니체를 "베르그손화"하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베르그손 철학에 대한 누락은 라캉과의 비교에서 "실재"에 대한 논의를 빗나가게 만든다. 내가 볼 때에는 들뢰즈와 라캉은 이 개념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게서 실재는 베르그손의 "실재le reel", 즉 "생명의 지속(들뢰즈는 이를 차이화 하는 욕망의 일의성으로 본다)"을 계승하고 있다. 물론 베르그손은 "창조적 진화" 등에서 이 개념을 통해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공격하고 있다. 반대로 라캉의 "실재"는 하이데거의 "존재", 궁극적으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에서 칸트의 물자체를 자기 철학으로 끌어들인 이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 그러나 저자는 라캉과 들뢰즈가 이미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이 서술하고 있으며, 양자의 엇갈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etre"동사가 근원적으로 존재를  뜻하는지(하이데거)? 아니면 계사를 뜻하는지(베르그손)? 들뢰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후자를 밀고 나가고 있을 뿐이다. 

미완성은 완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완벽한 최후의 완성이란 당연하게도 불가능하리라. 그럼에도 불가능한 완성에 다다르려는 모습을 통해 즐거운 변신에 성공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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