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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 상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0
보카치오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문학가가 시대를 초월하는 작가이기 이전에 당대를 살아간 한 명의 인간이듯이, 문학작품도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기 이전에 당대에 표현된 하나의 '이야기'(recit)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어볼 때에는 그 문학작품이 처해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수적이리라... 특히 데카메론의 경우는 당대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에는 너무나도 기발한 작품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중세말은 문화적으로 13세기까지 이루어 왔던 중세문명의 쇠락기 이자, 르네상스를 향한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는 시대였다. 그만큼 사상과 심성, 문화적 가치와 일상생활은 서로 다른 의미들로 복잡하게 얽여 있었고, 그 복잡함이 풀리는 과정은 시대적 전환이라고 불릴만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변동의 시대는 사람들의 삶을 불안과 공포로 가득차게 했던 시대였다. 수확량의 감소와 인구의 감소, 정치적 혼란과 계속되는 전쟁과 정쟁들... 데카메론은 이 모든 파국을 '페스트'라는 말로 표현한다. 보카치오가 살던 시대는 죽음으로 뒤덮여 있었다.(참고로 페스트 이전의 13세기 인구수는 18세기 말에 가서야 회복된다.)
이러한 파국의 상황 속에서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모든 가치를 전통적인 교회로 집중시키거나, 모든 정치권력을 국가로 집중시키고자 한다. 그것은 역으로 이단과 지방분권적 해체라는 반발을 유발한다. 이러한 가치의 획일화와 분열, 권력의 집중과 해체 사이에서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카치오는 이러한 극단 한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꾸려가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데카메론이 지금으로서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자연스러우며 유치한 이야기로 비춰질지라도, 당대로서는 기발하고 열정적인 이야기였음에 틀림없다.
웃고 울며, 먹고 마시며, 연애하고 어처구니 없게 죽어버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 획일적인 가치나 집중된 권력과는 늘 괴리되면서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분열되고나 해체되지 않는 일상적인 인간들의 모습...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왔음에도, 한 번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당당한 필치로 표현된다. 한 마디로 <데카메론>은 비장미 넘치는 격한 감정의 시대에 인간의 웃음을 되찾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