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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 ㅣ 피노키오의 철학 2
양운덕 지음 / 창비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몇년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어떤 면에서 위기라고 하는지는 주장하는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 인문학이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 사람을 떠난 건지, 사람들이 인문학을 떠난 건지는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에 다가서기 힘들다고 말하고, 인문학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사람들과 인문학의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척박하진 삶의 토양에 인문학이 이제는 꽃피기가 어려워 졌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수많은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을 꽃피우기 위해 색색가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을 여기저기서 들여와 심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꽃들이 과연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발했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친구하자고 달라붙는 사람처럼, 황무지에 억지로 씨를 뿌린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에는 아름다운 꽃을 심고 가꾸는 정원사의 손길보다, 땀흘려 땅을 일궈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농부의 손길, 황소의 우직함이 필요하다. 열흘 피었다 지는 꽃보다 수백년을 내려가며 곡식을 생산하는 기름진 땅이 필요하다. 기후에도 맞지 않는 외국산 장미보다 민들레라도 필 수 있는 조그마한 땅이 필요하다. 멋진 친구를 어색하게 소개시켜주기 보다는 친구를 사귈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피노키오의 철학'과 더불어, 이제 인문학의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의 토양이 개간되기 시작하였다. 닫힌 마음에 친구를 내다 볼 수 있는 조그만 창 하나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