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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발견 - 어떻게 개인을 찾아가는가 1500 - 1800
리햐르트 반 뒬멘 지음, 최윤영 옮김 / 현실문화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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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가장 큰 특징들 중의 하나로 근대적 개개인의 자기 개성에 대한 자각과 그 주관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반면 이후의 중세사가들은 중세 시대에 이루어진 지식인들 또는 어떤 특수한 문명의 예를 들어 개인의 자각을 시기적으로 훨씬 앞당기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입장의 경우 서유럽 근대라는 특수한 시공간적 조건들과 그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개인간의 관계를 필연적인 것으로 연관시키고 있지 못하다는 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즉 서유럽 근대문명의 개인주의 발생과 전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개인 일반이 아닌 바로 서유럽 근대문명 속에서 자라난 개인주의적 개인을 연구의 관건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전자의 경우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보편사의 일환으로 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후자의 경우는 명확히 중세 말 이후에야 나타나는 근대적 개인의 발생을 일반적인 개인의 모습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 더 큰 문제는 개인주의의 역사를 어떤 한 맹아적 모티프의 일직선적 전개과정으로 서술하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중세 말, 또는 근대 초의 어떠한 요소가 개인주의 역사에 핵심적인 중추를 담당했는가가 학문적 논쟁들을 이끌곤 하였다.
리하르트 반 뒬멘의 저서는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피하면서, 또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이르는 300여년 간의 근대유럽 세계에 집중하면서, 서구 근대 개인주의의 전개과정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역자의 소개와는 다르게 저자에게도 다음과 같은 푸코의 성과들이 수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첫째는 18세기에 심성, 이데올로기, 푸코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에피스테메의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저자 또한 푸코에 의해 강력하게 비판받은 일직선적 역사서술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역사서술의 방식은 푸코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저자가 개인주의의 전개과정을 개인이라는 대상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개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사회적 틀과 현상들의 전망 속에 위치시키면서 6개의 역사적 다이어그램(6개의 테마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다이어그램들은 그 초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이로써 개인주의의 전개가 어떠한 역사적 기획이 아닌 여러 조건들간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발생과정이었다는 점이 나타난다. 삶의 극단적 영역인 예술과 종교적 체험에서 시작되는 개인에 대한 자각(1장), 종교와 사회, 국가 제도가 닥달해내는 제도적 개인(2장), 학문을 통해서 구성되는 개인의 심신에 대한 관심들(3장), 개인들이 드러내는 자신의 표현들(4장),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따른 개인 의식의 변화과정(5장), 마지막으로 18세기에야 근대적 주체라는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 근대문명의 열매로서의 개인. 첫번째 다이어그램에서 서술되는 개인은 물론 여섯 번째 다이어그램에서 나타나는 개인과 직접적인 관련을 지을 수는 없지만, 이는 중간에 걸친 네 개의 다른 다이어그램들과 연결되면서 이질적인 서구 근대 개인주의의 모습들을 명확히 드러내준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새로운 연구성과들과 함께 또 다른 저자에게서는 다른 방식으로 엮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서유럽식의 냉혹하고 쓸쓸한 개인주의 사회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개개인들간의 이해와 대화가 가족주의의 틀 속에서 질식되지 않을 필요는 있다. 서유럽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는 결국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감추어진 다른 모습의 개인을 드러내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