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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도덕경 - 철학으로 다시 읽는 노자
김형효 지음 / 소나무 / 2004년 6월
평점 :
노자의 도덕경만큼 후인(後人)들의 해석이 분분한 책이 또 있을까?
원문이 워낙 고문(古文)인데다가 그 자구(字句)마저 판본마다 다양한 탓에 그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도덕경을 꿰뚫는 노자 사상 자체가 일반인이 파악하기 어려우리만치 심오하고 현묘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고한 철학자 김형효 교수는 그 나름의 독특한 식견으로 노자를 해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도덕경을 읽는 새로운 깊은 맛을 일깨워준다.
하이데거와 데리다 철학의 인식틀을 통하여 바라본 노자의 도덕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우주가 인과론적 사유로 짜여져 있지 않고 상관적 사유(correlative thinking)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에게 가장 불가사의한 문제는 바로 악(惡)의 문제일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이 악을 오로지 도덕윤리적 차원에서 선의 적이나 싸워야 할 투쟁의 대상으로 보지 말 것을 종용한다. 왜냐하면 악은 선의 바깥에 서 있는 이물질이 아니라, 선이 분비한 자기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악(惡)을 선(善)의 다른 측면으로 보면서 불선(不善)이라고 명명했다.
악은 불선이지만, 그 불선 개념은 선의 대대법적 차이와 같으므로 선/불선이 하나의 쌍으로 존립한다. 그래서 일자가 없으면 타자가 성립할 수 없다. 말하자면 선이 존립하지 않으면 불선 역시 성립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 상선(上善)은 선/불선을 다 포용하는 포일(抱一) 개념과 유사하다.
선과 불선은 같은 유(有)의 이중적 모습에 불과하다. … 차라리 그 불선으로서의 악을 다르게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노자나 불가의 처방전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인간의 욕심에 따라 好/惡, 利/害, 善/惡으로 대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대대법적인 상관적 차연을 자연의 비상도가 지닌 대대법적인 차연처럼 생멸의 상생과 상극의 이중성으로 읽는 것이 더 현명한 인식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마음의 욕심에 따라 모든 것에 대해 자기중심적으로 호/오, 이/해, 선/악을 나누어 대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에서의 유욕이 드러내는 병작(竝作)과 자빈(自賓)처럼 상관적 차연으로, 즉 상생과 상극의 비동시적 동시성으로 유(有)를 읽는 것이 가장 무위적인 세상보기가 아니겠는가?
이 이중긍정의 상관적 차연이나 이중부정의 초탈과 해탈이 바로 노자가 도덕경에서 기술한 이 세상의 무위법과 무위지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노자는 선/악과 진/위의 분별 대신 자연의 근원적 사실대로 세상을 살기를 종용한다. ... 결국 세상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미혹과 깨달음의 문제이므로, 선악의 기준으로 흑백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무명(無明)이 악보다 더 근원적으로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 석가세존은 무명을 씻어내는 깨달음이 가장 긴급한 인간의 도리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