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눈, 존재의 눈 -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 강해
조광제 지음 / 이학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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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 대상에게도 인식이 있다. 화가들은 객관 세계에 자신의 의식을 투영한다. 


“그렇게 많은 화가들이 사물들이 자기를 노려본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클레를 좇아 앙드레 마르샹은 이렇게 말한다. ‘숲 속에서 나는 숲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아님을 여러 번 느꼈다. … 나는 거기에 서서 듣고 있었다. … 화가는 우주에 의해 꿰뚫어져야지 우주를 꿰뚫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는다.’ - 본문중에서 


존재자들은 모두 다 반사적인 성격을 발휘하면서 서로를 보면서-보이는 무한대의 시선들의 교차적인 네트워크로서 현존하는 셈입니다. 이 때 이 시선을 일컬어 메를로퐁티는 “선인간적인 시선”이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교직-교차]에서 존재의 원소로서 살을 말하면서 이 살을 가시성과 같은 차원으로 취급하는데요, 여기에서 말하는 이 “선인간적인 시선”이야말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말하는 바로 그 ‘가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繪畵는 화가가 바로 이 “선인간적인 시선” 내지는 “가시성”에 걸려들어 거기에 매혹되어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 본문중에서 


몸도 세계도 모두다 근본적인 ‘살’로 되어 있기에 보는 자도 보이는 자도 상호 교직,교접한다.


내가 볼 수 있다는 건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여질 수 있기에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세계가 보여진다는 것은 그 세계 안에서 보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귀머거리가 동시에 벙어리인 이유.

들을 수 있기에 듣게 할 수 (즉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식, 외계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

철학자가 화가보다 더 느리다. 적어도 봄의 문제에 있어서는 철학자가 화가보다 항상 한 발 늦은 미숙아임을 역설하는 것 같다. 


생명체가 없더라도 7식, 8식, 우주심은 항상 존재하기에 식-경-근이 있다.


동일한 의식이 광물 속에서 잠자고 있으며, 식물 속에서 꿈틀거리고, 동물 속에서 움직이고, 인간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리고 깨어난 현자 안에서 스스로에 돌아간다.- 켄 윌버 


회화의 의미를 화가의 '봄'과 대상의 '보여짐'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틀로 해석한다. 

저자의 현학적인 설명문체가 읽기에 상당히 거슬리는 게 흠이지만, 현대 철학까지 동원하여 회화의 의미를 해설해준다. 

단지,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의 저본인 <눈과 정신>의 원저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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