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X다 - 부디 당신은 O를 골라요
김별로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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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단순한 건강검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됐다. 얼마 전부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오래 전 나를 고통으로 밀어넣었던 증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하던 마음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될 대로 되라지! !’ 체념으로 바뀌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인생, X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은 건, ‘항암 분투기라는 말 때문이었다. ‘항암 분투기투병기라는 말인데... 긴 시간을 앓아본 사람은 안다. ‘투병기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날카로운 고통이 깃들어 있는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널을 뛴다는 걸.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말이다. 나도 그랬다. 조직검사를 하면서 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다행히 암은 아닙니다라는 의견을 들었을 때는 천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약을 쓰긴 하겠지만, 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은 나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고,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며 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병을 앓으며 차라리 죽고 싶었다. 환부 때문에 아이들을 안아줄 수 없어 우울했고,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닌 나를 보며 거울을 내려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투병기라니, 읽지 않겠어!

 

첫 마음과 달리 책을 구입한 건 기억때문이었다. 물론 편집자치고 이 작가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장담한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에 혹!한 것도 있었다. 그가 누군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최종적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본 한 줄 때문이었다.

 

고창에 내려오던 날, 집 앞 골목에서 나를 보며 성호를 그으시던 어머니가 있고

 

내게도 날마다 아픈 나를 위해 성호를 긋던 엄마가 있었다...

 

-

 

책은 서문부터 유쾌했다. 아픈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머가 가득했고, 통통 튀는 문장에는 생명력이 가득했다. 역시 카피라이터다웠다.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읽힌 건 그의 글 솜씨 때문이었다. 단어를 가지고 노는 경지가 남다른 클라스라고나 할까.

 

코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암 진단을 받은 저자의 항암 분투기는 서울과 고창과 일본과 강릉을 넘나든다. 그가 서울의 병원에서 얌전하게!’ ‘항암!’만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항암 치료에 앞서 암 관련 책을 수 십 권 독파한다. 그리고 분투를 시작한다. 먼저 고창에서 리셋버튼을 누르, 일본의 타마가와 온천에갔다가, 다시 동쪽에 있는 강릉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결국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뉴클리어 런치 디텍티드!라고 외치면서. (스타크래프트에서 핵을 투하할 때 나오는 경고 메시지인데,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코에 핵을 투하하는 항암을 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저자의 항암 분투기를 읽으면서 참 많이 웃었다. 아프다는 사람이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자는 글을 참 유쾌하게 썼다. 특히 일본에서 받은 감동을 전하며 쓴 마무리 발언은 진짜 포복절도 할 정도였다. 게다가 책에는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암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많았다. 진단부터 항암까지 어떤 절차가 있는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내게 혹은 내 주변에 이런 일이 닥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이 유쾌하고 재밌다고 해서 그의 아픔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진짜 슬픈 사람의 눈에서는 슬픔이 보이는 것처럼, 저자의 웃음 속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저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내 삶의 궤적이 그의 삶과 약간의 교집합을 이루고 있고, 나는 그가 쓴 첫 책의 독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완쾌를 기원했다. 보험회사에서 단 번에 1억을 줄만큼 고위험군에 속하는 암일지라도, 그의 유쾌함으로 잘 이겨내기를, 불법 쪼개기를 해서 소음이 가득한 방이 아니라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고요한 그 방에서 톡으로 전송받은 선물을 잘 누리시기를! 그리하여 새로 태어난 김별로라는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는 길()’이 되기를, 오래오래 그 길이 빛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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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상상 청소년소설 1
이만교 지음 / 상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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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제 자네의 이야기를 읽었네. 이만교작가가 쓴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였지. ‘얼굴서책’을 통해 만난 벗들이 자네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네. 그런데 하나같이 속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그저 깨작깨작 감질나게 하지 않겠나.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친히 ‘등잔서점’에 주문을 넣고, 자네의 이야기를 받아 펼쳐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책은 무사히 도착했네. 표지를 보니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어떤 사내의 목에 칼날이 겨누어진 그림이 있더군.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서 띠지를 풀어보았네. 그제야 그림의 전체가 보이더군. 사내 발밑에 둘둘 말린 종이 같은 게 보였네. 사내는 바위를 딛고 서 있었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위처럼 보이는 것들도 이야기가 적힌 종이 같더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그림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네.

책은 이야기 장수인 자네, ‘전기수(傳奇叟)’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네. 서당에 나가 친구들과 공부를 하던 학동이었던 자네가 어쩌다가 이야기 장수가 되었는지를 풀어내고 있었지. 나는 그저 옛날이야기 한 토막을 듣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네. 그런데 말일세, 참 신기하더군. 자네는 분명히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머리는 자꾸 ‘아, 글의 소재는 이렇게 잡는구나’, ‘이야기의 원형과 저작권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렇지. 글은 이 친구처럼 고치고 또 고치면서 원하는 한 문장을 찾는 거지’ 같은 생각이 떠다니더군. 옛날이야기 한 편을 읽으며 머리가 혼자서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네. 참 기묘한 경험이었어.

게다가... 부끄럽지만 자네에게만 고백하자면, 나는 자네가 이야기 때문에 화를 당하는 부분을 보면서 혼자 울컥했네. 이야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네. 권력가들에게 노여움을 사든, 대중들의 미움을 사든 그것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겪는 빈번한 일이니 말일세. 어쩌면 언젠가의 내 모습일수도 있고 말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네처럼 또 이야기를 만들고 있지. 왜냐면 그것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네. 자네가 목숨을 걸고 ‘활XX’의 ‘X정이’의 이야기를 썼듯, 이야기꾼들에게는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 말일세.

나는 그동안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었네. 내 자신이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고, ‘대안학당’에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학동들에게 ‘잘 알려주는 선생’이 되고 싶어서였지. 그런데 말일세, 자네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글쓰기 책중에 단연 최고였네. ‘이야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니 말일세. 이것이야말로 1타 3피가 아니겠는가! (자네가 잘 모를듯하여 설명하자면, 1타 3피는 하나를 내고 세 개를 얻는다는 뜻이네. 한 번에 얻는 게 많다는 것이니 엄청 좋다는 뜻이지.) 내 이제 학동들이 글쓰기에 대해 물으면 자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네. 하지만 나도 ‘얼굴서책’ 벗들처럼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는 않을 거라네. 자네 이야기를 감질나게해서 그들이 직접 읽도록 만들 것이라네. 자네와 단 둘이 마주앉아야 자네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테니까 말일세.

자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마웠네. 덕분에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 그런데 말일세, 자네는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인가? 나는 믿지 않네. 자네가 청나라의 이야기를 혼자서 비밀 수첩에 적고 있다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네. 그러니 적당한 때에 그 이야기도 들려주시게. 선우의 이름이로든 자네의 이름으로든 청나라로 떠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다리겠네. 아, 알겠네. 다음에 자네가 청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도 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네. 어디 한 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활짝 피워봄세나.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다 오시게.

신축년 여름, 자네의 이야기에 홀려버린 벗이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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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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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근대작가들의 편지를 들여다보려고 그 시대 작가들의 이름을 찾던 때였지요. 정지용, 임화, 이태준, 한설야, 이용악 등의 이름을 보던 제게 누군가 김사량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워낙 문학적 지식이 빈곤했던 터라 교과서에서 배웠던 정지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낯선 이름이었습니다만, 김사량은 정말 낯설고 낯설었습니다. ‘김사랑도 아니고 김사량이라니요. 당신이 일본어로 글을 썼고, 해방 후 북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남긴 편지가 있을까 검색해봤지만 당신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을 잊어갔습니다. 내겐 당신 말고도 기억해야 할 이름이 많았으니까요.

 

당신의 이름을 다시 만난 건 빛 속으로(김석희 옮김, 녹색광선)라는 책에서였습니다. 당신의 작품 네 편이 실린 책이었지요. 당신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어떤 작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설레는 맘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 <노마만리>를요. 작품 하나하나가 마음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잔잔하게, 그러나 넓게.

 

당신의 이름을 대표하는 <빛 속으로>는 역시 좋았습니다. 하루오, 남선생, 이군 등 모든 등장인물이 그 시절의 삶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보여주는 게 좋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어 좋았습니다. 저는 <빛 속으로>를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름으로써 그가 가진 반짝이는 빛 속으로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 만으로도요.

 

<천마>를 읽는 동안은 내내 그림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19377, 개벽사에서 발행한 별건곤의 표지였지요. 없는 게 없는 휘황찬란한 도시 속에 자살장이 있고, 그 아래는 지금 막 그곳에서 뛰어내린듯한 사람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천마>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자살장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을까, 숨을 쉬고 살아있지만 이미 영혼은 저 곳에서 뛰어내린 수많은 현룡들이 존재했겠구나 싶었습니다.

 

<풀이 깊다>에서 만난 코풀이 선생님OX를 등에 지고 있던 하얀 옷을 입은 이름 모를 사람들도 오래오래 가슴에 남았습니다. 물론 태어나고 자란 땅을 버리고 먼 길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를 다룬 <노마만리>도 많은 여운을 남겼지요. 이 책에 실린 <노마만리>는 당신이 타이항산 지구의 항일근거지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탈출기의 도입부라고 하니, 언젠가 전편을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당신의 작품을 엮은 빛 속으로를 읽고, 당신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몇 개 찾아보고, 다른 이들이 쓴 당신의 이야기를 주문했습니다. 당신을 자세히 알아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저는 당신의 이름을 자주 부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에 여불비(餘不備)’라는 말은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당신이 <노마만리>에서 마지막 편지를 의미하는 뜻으로 썼던 그 단어말입니다. 그저 저는 총총(悤悤)’이라 적고 언젠가 또 다음 편지를 써 볼 생각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불러 당신을 만나고, 할 이야기가 또 쌓이고 쌓이면 오늘처럼 이렇게 편지 한 통을 쓰겠습니다. 우표 없이 보내는 제 편지가 방랑하고 있는 당신에게 꼭 도착하기를, 풀이 깊은 산 속이나 신사숙녀가 가득한 반점이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의 한 복판 어디에서라도 당신이 이 편지를 펼쳐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 하나 -

어디선가 당신의 이름이 들리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빛 속으로를 통해 당신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당신의 이름을 부를 테니까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이 가진 반짝이는 빛 속으로향하는 이들과 반갑게 만나 뜨거운 악수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럼 방랑자 김사량 당신,

언젠가 또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부를 것을 약속하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당신의 방랑이 이제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총총.

 

2021814,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친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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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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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삶이 기록된 글을 읽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었지요.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인간실격』을 읽었을 뿐입니다만, 당신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이건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군!’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론가들은 당신의 이야기가 다자이 오사무의 여느 작품과 확연히 다르다고들 하지만 글쎄요, 저는 ‘또 다른 요조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그만큼 결이 많이 닮아 있었지요.

당신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장녀였습니다. 이혼을 한 후 친정으로 돌아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지요. 도쿄가 아닌 이즈의 산장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삶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으나, 속으로는 어떤 열망을 죽이고 또 죽여야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할 만큼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귀족의 품격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그게 ‘전형적인 귀족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식사예절을 지키지 않아도 천박해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만들어진 우아함이 아니라 DNA에 새겨진 우아함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혹자들은 어머니를 향해 우아할 뿐, 경제적인 능력도 생활력도 없다고 비난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의 삼촌이 집을 팔고 이즈로 내려가라고 했을 때도 그의 뜻에 따랐다고요. 그러나 나는 당신 어머니가 무능했다고 단언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오지의 삶을 연장시킨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으니까요. (어떤 사람이든 한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람은 '무능'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다른 요조의 이야기’라고 느낀 건, 당신 동생 나오지 때문이었습니다. 요조와 나오지가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그 둘은 닮아 있었지요. 두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내지 못해 끝내 자신의 삶을 몰락시켰지만,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노력은 했으나 그 노력이 제대로 된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날마다 저물다 결국 영원히 저물고 말았지만요.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가즈코 당신이 주인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 제목이 ‘사양’이라는 걸 깨닫고, ‘아, 다자이 오사무는 나오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신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 ‘한 사람’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는 아침에 찬란하게 뜨는 해도 결국은 지고 만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녁 때 지는 해’를 뜻하는 ‘사양’을 제목으로 걸었겠지요.

그런데 가즈코... 나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당신만큼은 ‘오늘의 해가 져도 내일의 해가 뜬다’는 것을 믿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어둡고 긴 밤이 와도 결국 아침이 온다는 것을, 어머니가 저물고, 나오지가 저물고, 우헤하라 마저 저문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면 당신의 날들은 날마다 떠오른다는 것을 당신이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생명을 품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당신은 그 믿음을 가졌을 테지만요.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저 또한 당신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군요. ‘사양’입니다. 그러나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온다해도 해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걸 믿는 사람에게는 찬란한 아침이 찾아올 것입니다. 저 또한 그걸 믿으며 지는 해를 바라봅니다.
내일 다시 떠오를 가즈코, 그럼 안녕.
2021년 5월 18일,
74년을 건너와 만난 당신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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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 당신의 아이를 바꾸는 문해력
진동섭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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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를 읽은 건, 문해력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문해력에 대해 제대로 알면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책은 <공부가 뭐니?>의 전문가 패널이자 전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이었던 진동섭 선생이 집필했다. 나는 그의 전작인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를 읽은 적이 있는데, 사실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입시설계를 초등 때부터 하라고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한결같이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입시설계의 기초가 독서에 있다는 뜻이었다.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는 전작보다 더 체계적으로 독서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의 흐름을 짚어주고, 어떻게 독서하며 문해력을 키워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저자는 그 중 하나의 방법으로 한 권의 책을 깊게 읽기를 제안한다. 한 권의 책을 깊게 읽으면 내면화가 이루어지고, 책 내용을 수용하고 비판하면서 넓은 세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토론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비교하면서 내 생각을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음은 물론, 다른 이들의 주장을 들으며 수긍할 점과 비판할 점을 정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가능해지지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이런 시간이 거의 없다. 저자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깊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수업으로 정해진 독서시간에 독서하는 방법만알려주고, ‘글쓰기시간에 글 쓰는 방법만알려주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 것이다. 나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방법뿐 아니라 책을 읽을 시간을 마련해주고, 글 쓰는 방법뿐 아니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시간이 확보된다면 문해력이 낮다고 모두들 걱정만!하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이 책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교육과정으로 배우는지 알고 싶고,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고 제대로 의사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고 싶다면 말이다. ‘문해력을 키워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면 그런 이유도 좋다. 단어를,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면 공부머리도 좋아진다니까.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펼치는 부모님들이 문해력을 글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해력은 글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각도 제대로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해력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챙겨야할 필수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른들이여! 우리 아이들이 필수템을 잘 챙길 수 있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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