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 X다 - 부디 당신은 O를 골라요
김별로 지음 / 포르체 / 2021년 12월
평점 :
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단순한 건강검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됐다. 얼마 전부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오래 전 나를 고통으로 밀어넣었던 증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 아니겠지’ 하던 마음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될 대로 되라지! 췟!’ 체념으로 바뀌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인생, X다》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은 건, ‘항암 분투기’라는 말 때문이었다. ‘항암 분투기’면 ‘투병기’라는 말인데... 긴 시간을 앓아본 사람은 안다. ‘투병기’라는 단어 속에 얼마나 날카로운 고통이 깃들어 있는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널을 뛴다는 걸.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말이다. 나도 그랬다. 조직검사를 하면서 ‘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다행히 암은 아닙니다’라는 의견을 들었을 때는 천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약을 쓰긴 하겠지만, 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은 나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었고,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며 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병을 앓으며 차라리 죽고 싶었다. 환부 때문에 아이들을 안아줄 수 없어 우울했고,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닌 나를 보며 거울을 내려치고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투병기’라니, 읽지 않겠어!
첫 마음과 달리 책을 구입한 건 ‘기억’ 때문이었다. 물론 ‘편집자치고 이 작가를 모르는 이는 없다고 장담한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에 혹!한 것도 있었다. 그가 누군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최종적으로 이 책을 선택한 건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본 한 줄 때문이었다.
‘고창에 내려오던 날, 집 앞 골목에서 나를 보며 성호를 그으시던 어머니가 있고’
내게도 날마다 아픈 나를 위해 성호를 긋던 엄마가 있었다...
-
책은 서문부터 유쾌했다. 아픈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머가 가득했고, 통통 튀는 문장에는 생명력이 가득했다. 역시 카피라이터다웠다.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읽힌 건 그의 글 솜씨 때문이었다. 단어를 가지고 노는 경지가 남다른 클라스라고나 할까.
코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암 진단을 받은 저자의 ‘항암 분투기’는 서울과 고창과 일본과 강릉을 넘나든다. 그가 서울의 병원에서 ‘얌전하게!’ ‘항암!’만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항암 치료에 앞서 암 관련 책을 수 십 권 독파한다. 그리고 분투를 시작한다. 먼저 ‘고창에서 리셋버튼을 누르’고, 일본의 ‘타마가와 온천에’ 갔다가, 다시 ‘동쪽’에 있는 강릉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결국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다. 뉴클리어 런치 디텍티드!라고 외치면서. (스타크래프트에서 핵을 투하할 때 나오는 경고 메시지인데,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코에 핵을 투하하는 –항암을 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저자의 ‘항암 분투기’를 읽으면서 참 많이 웃었다. 아프다는 사람이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자는 글을 참 유쾌하게 썼다. 특히 일본에서 받은 감동을 전하며 쓴 마무리 발언은 진짜 포복절도 할 정도였다. 게다가 책에는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암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많았다. 진단부터 항암까지 어떤 절차가 있는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내게 혹은 내 주변에 이런 일이 닥친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이 유쾌하고 재밌다고 해서 그의 아픔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진짜 슬픈 사람의 눈에서는 슬픔이 보이는 것처럼, 저자의 웃음 속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저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내 삶의 궤적이 그의 삶과 약간의 교집합을 이루고 있고, 나는 그가 쓴 첫 책의 독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완쾌를 기원했다. 보험회사에서 단 번에 1억을 줄만큼 고위험군에 속하는 암일지라도, 그의 유쾌함으로 잘 이겨내기를, 불법 쪼개기를 해서 소음이 가득한 방이 아니라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고요한 그 방에서 톡으로 전송받은 선물을 잘 누리시기를! 그리하여 새로 태어난 ‘김별로’라는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는 길(별路)’이 되기를, 오래오래 그 길이 빛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1120/pimg_736096138319851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