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 상상 청소년소설 1
이만교 지음 / 상상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어제 자네의 이야기를 읽었네. 이만교작가가 쓴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였지. ‘얼굴서책’을 통해 만난 벗들이 자네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네. 그런데 하나같이 속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그저 깨작깨작 감질나게 하지 않겠나.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가 친히 ‘등잔서점’에 주문을 넣고, 자네의 이야기를 받아 펼쳐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책은 무사히 도착했네. 표지를 보니 갓을 쓰고 도포를 두른 어떤 사내의 목에 칼날이 겨누어진 그림이 있더군.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서 띠지를 풀어보았네. 그제야 그림의 전체가 보이더군. 사내 발밑에 둘둘 말린 종이 같은 게 보였네. 사내는 바위를 딛고 서 있었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위처럼 보이는 것들도 이야기가 적힌 종이 같더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그림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네.

책은 이야기 장수인 자네, ‘전기수(傳奇叟)’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네. 서당에 나가 친구들과 공부를 하던 학동이었던 자네가 어쩌다가 이야기 장수가 되었는지를 풀어내고 있었지. 나는 그저 옛날이야기 한 토막을 듣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네. 그런데 말일세, 참 신기하더군. 자네는 분명히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머리는 자꾸 ‘아, 글의 소재는 이렇게 잡는구나’, ‘이야기의 원형과 저작권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렇지. 글은 이 친구처럼 고치고 또 고치면서 원하는 한 문장을 찾는 거지’ 같은 생각이 떠다니더군. 옛날이야기 한 편을 읽으며 머리가 혼자서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네. 참 기묘한 경험이었어.

게다가... 부끄럽지만 자네에게만 고백하자면, 나는 자네가 이야기 때문에 화를 당하는 부분을 보면서 혼자 울컥했네. 이야기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네. 권력가들에게 노여움을 사든, 대중들의 미움을 사든 그것은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겪는 빈번한 일이니 말일세. 어쩌면 언젠가의 내 모습일수도 있고 말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네처럼 또 이야기를 만들고 있지. 왜냐면 그것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네. 자네가 목숨을 걸고 ‘활XX’의 ‘X정이’의 이야기를 썼듯, 이야기꾼들에게는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니 말일세.

나는 그동안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었네. 내 자신이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고, ‘대안학당’에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학동들에게 ‘잘 알려주는 선생’이 되고 싶어서였지. 그런데 말일세, 자네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글쓰기 책중에 단연 최고였네. ‘이야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니 말일세. 이것이야말로 1타 3피가 아니겠는가! (자네가 잘 모를듯하여 설명하자면, 1타 3피는 하나를 내고 세 개를 얻는다는 뜻이네. 한 번에 얻는 게 많다는 것이니 엄청 좋다는 뜻이지.) 내 이제 학동들이 글쓰기에 대해 물으면 자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네. 하지만 나도 ‘얼굴서책’ 벗들처럼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는 않을 거라네. 자네 이야기를 감질나게해서 그들이 직접 읽도록 만들 것이라네. 자네와 단 둘이 마주앉아야 자네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테니까 말일세.

자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마웠네. 덕분에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 그런데 말일세, 자네는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인가? 나는 믿지 않네. 자네가 청나라의 이야기를 혼자서 비밀 수첩에 적고 있다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네. 그러니 적당한 때에 그 이야기도 들려주시게. 선우의 이름이로든 자네의 이름으로든 청나라로 떠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다리겠네. 아, 알겠네. 다음에 자네가 청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도 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네. 어디 한 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날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활짝 피워봄세나.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다 오시게.

신축년 여름, 자네의 이야기에 홀려버린 벗이 쓰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