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 아니라, 그러니까 어째서인데요?"
"꼭 내 입으로 네놈의 특출한 재능을 칭찬해야 만족할까? 눈이 멀었다고 코앞의 재목을 두고 몰라볼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 듣거라, 이 녀석아. 네놈이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는지 몰라도 타고난 무언가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그것을 극복해내지 않고서는 훌륭한 화가는 될지언정 유일한 화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이 어쩐지 가슴을 뒤흔들어서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 그 반대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훌륭한 화가는 못될지언정 유일한 화가는 될 테니까요. 누구와도 같지 않고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을 제가, 그릴 겁니다!"
스승님은 의외라는 듯 나를 보다가 이가 다 빠진 입으로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들끓는 낮은 웃음을 한참이나 웃었다.
"다 늙은 화가의 가슴을 이리도 두드려 깨우느냐. 네가 여태까지 해온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로다. 그래, 두고 보마. 어디 나도 세상도 깜짝 놀라게 해보려무나."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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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굉장하지 않느냐?"
"예, 사람이 이걸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무서울 정도지. 나는 가끔 사람이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두렵다."
"그게 왜 두려운 일인가요?"
"모든 것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아라. 이 성당, 그 위로 쏟아지는 빛, 그리고 어쩌면 신까지도.
차갑고 섬뜩한 기분이 등골을 찔렀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방금 스승님이 아주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것만큼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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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있을 땐 아무리 봐도 미남은 아닌 승훈이었지만, 웃으면 미남이 되었다. 종종 그런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반경 70미터쯤이 환해지는, 얼굴 구조가 아예 바뀌는 듯한 대단한 웃음 말이다.

정윤은 영광을 원한다. 기억하는 한 언제나 그래왔다. 정윤의 경쟁자들은 살아남았을까? 활을 쏠 줄 안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절체절명의 순간에 손에 활이 있었을까? 화살은? 혹시 마음속에 경쟁자들이 줄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 정윤은 자주 점검해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얼굴만 알거나, 인사를 나눠본 다른 선수들이 살아 있길 기도했다. 영광을 영광스럽게 쟁취하길 원했다. 이런 지옥에서도 끔찍할 정도로 어두운 조각의 마음은 자라나지 않아서 안도했고, 스스로가 온전한 운동선수처럼 느껴졌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윤리는 어쩌면 비위에 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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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저녁, 연선은 수용소 앞마당의 벤치에서 고작 맥주 두 캔에 취해 느슨하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경모의 담배를 뺏어 들고는, 피우지는 않고 머리 위로 들고 공중에 연기로 그림을 그렸다. 혹은 글씨를 썼는지도 모른다.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이었지만 바라보는 내내 승균은 담뱃재가 연선에게 떨어질까 불안했고 그 노심초사가 무색하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수용소가, 세계가 연선을 사랑해서 담뱃재조차 닿지 않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존재. 우주의 사악한 톱니바퀴에 으스러지지 않는 모호한 존재.

연선을 만나러 갈 것이다. 찾아가면 그 알 수 없는 얼굴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겠지. 수술대는 추웠고, 의사는 어쩌면 의사가 아니라 정부가 보낸 사람이라 수술을 하는 척 승균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승균은 미소 지었다. 마취약이 들어올 때, 의사가 숫자를 거꾸로 세라고 했는데 승균은 전혀 엉뚱한 말을 남겼다.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

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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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 이터(bug eater)?"
매켄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뗄 수 있어? 옴잡이인 부분을 떼서 그냥 보통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못 떼어 내. 인간이어야 뭘 떼도 되지. 씨앗으로 뗄 수 있는 수준이 아냐. 아예 위를 떼어 내든가."
심드렁하게 매켄지가 물러섰다.
"비용을 들여도 방법을 못 찾습니까?"
인표가 흥정을 붙였다.
"우와, 너무해. 나 상처 받아요. 홍 샘, 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교포니까 미국식으로 돈 좋아할 거 같아요?"
은영은 이민 간 친척들을 떠올리며 속이 상했다.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별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하는 그런 넌더리야. 수백만 해외 동포는 다정하게 생각하지만 너는 딱 싫어. 그 어떤 오해도 다른 맥락도 끼어들 필요 없이 누군가를 해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네가 싫어. - P210

그리고 대흥은 조금 덜 온건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고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대흥은 변했다. 학생들은 대흥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대흥의 기대보다 자주 하곤 했다. 이를테면 ‘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선거에서 뽑히나요? 왜 좋은 방향으로 일어났던 변화들이 무산되나요? 왜 역사는 역류 없이 흐르지 못하나요?‘ 그런 질문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얼버무리거나 피했을 텐데 대흥은 최대한 덜 민감한 방식으로 설명을 해 주려고 애썼다. 물론 아무리 균형 잡힌 설명을 해 주어도 가끔은 학부모들에게 항의 전화가 왔다. 항의 전화를 감수하더라도 해 줘야 할 설명이었다고 선배들과 독한 술과 꼬치구이를 사 먹으며 항변하기도 했다.
"있잖아, 다음 선거에는 너희들한테도 선거권이 있어."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 바보 같은 교과서를 막길 잘했어.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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