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그 누구에게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민주주의는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다. -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 안 그래도 정치는 어려운데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해진 때에는 머리가 지끈거리게 느껴질 정도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뉴스 보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소재라 정치에 대해 잘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이 달라 또 쉽지 않다.<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으면 올바른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시도들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처음부터 윤석열의 지난 3년에 대한 행적의 나열이라 올바른 정치는 없는걸까? 생각이 들었다. 읽어갈수록 그 행적이 올바르지 못한 정치의 예시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울의 봄’ 영화가 흥행한 걸 보면 계엄령이 최악의 정치였음을 대다수의 사람은 알고 있다. 게다가 그 말도 안되는 계엄령을 2년 전 우리는 모두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계엄이 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더 양극화 되어가기만 하는 최근의 정치 행태, 좌파 우파로 나뉘어 다투기만 하는 사람들까지. 다들 본인 이념만 옳다고 말하며 반대되는 이념은 배척하며 급기야 혐오에 가까워지는 모습은 책에서 볼 수 있는 나쁜 정치의 예시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일은 머리 아프고 누군가와 다퉈야만 하는 일일 수 있겠으나 비난과 비판보다 정치적 무관심이 더 최악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 활동(?)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4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처음 보여줬던 <나니아 연대기>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영화 속에서 벽장을 열면 다른 세계가 열린다. 내 옷장에서도 그런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시로 붙박이장들을 열고 그 속에 숨어 엄마한테 몇 번 혼났던 기억이 있다. 역시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속에서도 그런 벽장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이 벽장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아니었다. 현실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둘 수 있는 도피처였다. 벽장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 무게는 전혀 줄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제목과 같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격리하게 된 평범한 어른 우식, 그런 우식과 동업을 하는 마태공, 1980년대 전쟁을 피해 격리된 소년 조기준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개인적으로 순서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기 편하다 느끼는 터라 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게 약간 어렵게 느껴졌다.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보면 현실에서도 겪기 쉬운 딜레마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인간은 성선설, 성악설 무엇을 따를까? 같은 생각부터, 우식의 삶을 보며 나만 아파 격리되는 게 나을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격리되는 게 나을지 같은 생각이나 마태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아이가 사건 속의 가해자인 게 나을까? 피해자인게 나을까? 그런 답이 없는 질문들 말이다. 이런 딜레마들에 생각하다보면 인간은 ‘나’만의 고통보다 ‘모두’의 고통에 오히려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 역시 바이러스를 안고도 죄의식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나는 여전히 끓고 있는 사과 잼을 한입 맛본다. 델 것을 알면서 입에 넣는다. 아찔하게 뜨겁고 달다. 반성은 그렇게 짧고 뜨겁게 지나간다. 아마 나는 조기준을 만나러 가지 않을 것이다. 이 페이지는 접힌 채 다시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생각하고 묘사한 책 같다.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는 인간은 역시 성악설을 따르는 존재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는 이 말은 인간은 노력하면 선해질 수 있는 존재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겁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으므로 현실에서 최대한 평온에 가까워지는 길을 택하는 게 이 세상을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 같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참 어려운 책이었다. 누군가의 죽음과 살아왔던 삶을 훑으며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어도 되는건지 혼란스러웠고,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사회에 통탄스러웠다. <양양>의 작가 양주연 씨의 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존재도 몰랐던 고모가 있었음을 알게 됐고, 또 고모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때부터 고모의 죽음부터 거꾸로 살아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70년대 대학생이었던 고모 양지영 씨는 요즘의 우리보다 더 진취적이고 당당한 모습이다. 동아리에 가입해 자기소개를 하며 ‘좋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거나, 요즘도 괜히 공개하기 쉽지 않은 CC (캠퍼스커플)를 하면서도 공개연애를(!) 한다. 양지영 씨의 삶을 되돌아보며 머릿속에 물음표가 참 많이 떴다. 이토록 진취적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 왜 갑자기 스스로 죽음을 결정했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남자친구의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양주연 씨는 양지영 씨의 삶의 퍼즐을 맞춰가며 그녀가 겪은 교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당시 그 남자친구에 대한 깊은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그 시대상에서 그녀는 남자친구 집을 드나들었던 되바라진 여성이었을 뿐이다. 죽음을 감추는 게 먼저였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숨겨야 할 일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그저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 사회와 가족 속에서도 사라져버린다. 그저 가족들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존재한다.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꺼렸던 양주연 씨의 아버지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고모처럼 되지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양주연 씨는 수긍하거나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모가 겪었을 지도 모를 교제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 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확장시켜 나간다. 지금도 연인과 교제하며 일어나는 폭행이나 살인 사건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70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에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참지 않고, 그 사건들을 공론화시킬 뿐이다. 피해를 입은 여성을 위해 다른 여성들이 같이 연대할 뿐이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피해자가 홀로 져야하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 무게를 사회가 같이 나눌 수 있도록 제도적 개편, 처벌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양지영 씨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은 왜 유독 밤중에 생각나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가!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그런 밤이면 또 생각한다. 원시 시대의 인간들도 이렇게 밤을 괴로워했을까?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당장' 굶주림을 해소해야 하고, '지금 당장' 맹수들로부터 숨어야 살 수 있었으므로. 점점 인간이 진화해가고 세상이 발전해가며 우리는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지는 않다. 다만 생존을 포기하는 인간의 수는 자꾸 늘어만 간다. 생각하다보면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생각하다보니 더 괴로워진다. 장강명의 <뤼미에르 피플>은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그 고민과 더불어 괴로운 인간에 대해서도 잘 표현해낸다. 화려한 서울에서도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신촌에 위치한 뤼미에르 빌딩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서울의 화려함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잉여인간, 루저로 불리는 인간, 인간과 동물이 반씩 섞인 반인반서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괴로운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808호 쥐들의 지하왕국'이었다. ‘도대체 왜들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는 거예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몰라요? 커피점에서 주사를 부리는 취한 아저씨들과 놀이터에서 본 낯선 남자를 따라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오고 있는 가출 소녀에게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남은 삶을 신나게 낭비하고 태워버릴수록 감각과 감정이 더 격렬해지는 걸까. 그래서 인간들도 몸의 신경과 세포를 짧은 순간에 더 많이 파괴하는 약과 음료를 찾는 걸까.’ 완전한 인간이 아닌 생쥐인간에게 우리는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로 부러움을 산다. 아쉽게도 인간인 우리는 이 당연한 축복에 취해 어떻게든 즉각적인 쾌락에 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술을 마시고, 위험한 관계를 맺고, '나'의 파괴를 초래하는 약물까지 찾는 행위가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복수를 위해 현재를 놓치거나, 미래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현재의 쾌락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들을 우리는 <뤼미에르 피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은 정말 왜 살아가는 것인가! 의문이 절로 든다. 각 호실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이 예상 밖이라 계속 눈이 가는 책이었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보다 더 큰 반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발행일이었다. <뤼미에르 피플>의 종이책 발행일은 2012년 12월 17일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어보는 터라 장강명 작가의 신작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용 또한 현재의 사회문제가 될만한 현상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년이 넘어도 같은 사회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니. 참 씁쓸하다. 읽는 동안 인간이 정녕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지,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답게 살려고 할수록 더 괴로워지는 인간들이 안쓰럽다. '평균의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만 버려도 모두 숨통이 약간씩은 더 트일텐데... 10년 뒤에는 이 책의 사회문제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까?*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좋았던 건 글쓰기 수업이 있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필독도서가 아닌 책은 쓸모없는 책이었고, 백일장이 아닌 곳에서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시간을 보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글쓰기와 관련이 깊은 과도 아니었기에) 교양수업이라는 명목 아래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 수업이 참 반가웠다. 그 수업이 있는 날엔 좋아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진짜다. 아직도 인상깊었던 과제가 있다. ‘세상을 유익하게 바꿀 발명품을 소개하라’는 것이었는데 정~말 웃기고 재밌게 적어라! 라는 단서가 붙었었다. 평소 내 말투대로 적었다가 틀에서 벗어나서 감점이다! 라는 평가를 받으면 매우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일반적인 형식의 글을 썼고, 웃긴 발명품(?)을 생각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과제 총평회에서 교수님은 올해도 웃기고 참신한 글은 찾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쓰는 몸으로 살기>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 이유는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틀을 벗어나면서도 독자(=교수님)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이들이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만 글을 잘 시작하고 끝맺는 법을 알려주는 이는 적다. 이 책은 생각을 글로 완성시키는 법까지를 알려준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안된다’는 것과 묘사는 기교가 아닌 사로잡힘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을 어떤 문장으로 번역할지 고민하고 글로 옮겨야한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기느냐에 따라 독자는 웃을 수도, 울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의 근원을 잘 관찰해야 독자에게 그 의도가 잘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는 그리움을 표현하는 예시로 황화자 할머니의 오직 한 사람이라는 시를 인용했다. 이 시를 보면 작가가 묘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있다. 내가 쓴 글이 왜 좋지 않은 글인지에 대해 지적없이 더 좋은 글로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같다. 글쓰기의 기본서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나도 앞으로 글을 완성하고, 이 책을 들여다보며 퇴고를 한다면 더 좋은 글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