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악어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루리 그림, 글라인.이화진 글 / 요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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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베아트리스』라는 그림책을 읽었다. 글자가 하나도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책이었다. 줄글이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게 신기해서 구매했는데 복잡한 타임리프 서사가 색채의 대비와 이미지의 변화로 완벽히 표현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림이 스토리에 부여하는 힘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화에도 무성영화가 있지 않았는가. 『베아트리스』를 읽으며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글과 대사보다 그림과 장면의 힘이 더 클 수도 있다는 배움이 있었다. 그 뒤로 그림책을 볼 때면 글뿐 아니라 그림도 함께 보곤 한다.

『도시 악어』는 표지와 내지의 그림을 보고 선택했다. 실험적인 색채와 구도를 활용했다는 이 책이 내내 눈에 밟혀 서평단을 신청했다. 동화치고는 감명받은 어른들의 추천사가 눈에 띄었다는 점도 이 책을 보는 데에 한몫했다. "시원한 라거 맥주 같은"(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작가 강은경의 추천사)동화책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악어가 도시에 살게 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도시'와 '악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악어는 "내가 원해서 여기에 온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악어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어딘가'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원해서' 사는 삶은 흔치 않다. 우리는 종종 억지로, 원치 않는 이유로 하나의 공간에 던져진다. 때로는 꽤 긴 시간동안 그런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악어는 우리와 비슷하다.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소 '도시'에 던져진 악어는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뾰족한 악어의 이빨과 날카로운 생김새는 도시에 어울리지 않았다. 악어는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처럼 행동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오이팩을 하는 악어는 귀엽다. 하지만 이빨을 둥글게 다듬는 악어는 조금 힘들어 보인다. 악어가 꼬리 엑스레이를 찍는 장면에서는 울컥 치미는 감정이 있다. 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사람처럼 살기 위해서는 악어에게 꼬리가 없어야 한다. '도시 악어'가 되기 위한 여정은 점점 악어의 몸과 마음을 옥죄고 상하게 한다. 악어는 지하철역에서 꼬리를 감싸고 울먹인다.

독자는 악어의 마음에 십분 공감한다. 악어에게 오이팩을 하는 것과 이를 다듬는 것, 그리고 꼬리를 자르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도 이처럼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한다. '도시'에 살기 위해 우리가 잘라야 했던 꼬리는 무엇이었을까. 기분, 체면, 마음, 감정. 악어와 같은 우리네가 잃어버린 꼬리는 생각보다 길고 소중한 것이다.

악어는 물을 아주 두려워한다. 물은 그가 원래 살았던 환경이지만, 악어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곳에 쉽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이런 악어의 모습도 당연히 독자와 닮아 있다. 갑작스럽게 물에 빠진 악어가 버둥거리는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본래의 모습을 들여다보길 꺼려한다. 감추고 피하는 데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 악어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사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나였다. 언제나 '나에게서 도망가기 바쁘던 '나'.

악어는 얼떨결에 빠진 물에서 점점 자신을 되찾는다. 잘라버리고 싶었던 꼬리가 사실 자신의 정체성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악어야"라는 두 번째 대사는 '도시'가 아닌 '악어'에 집중한다. 꼬리가 있는 것이 '악어'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악어는 물속에서 마음껏 헤엄친다. 무엇을 자르거나 고칠 필요 없이 '나는 악어'라고 받아들인 자유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꼬리가 있음으로 악어는 헤엄친다. 동화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악어는 같은 대사를 반복하지만("나는 악어야"), 그것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눈동자에 도시의 빛을 담은 악어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본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악어는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에서 오는 작은 위로가 점점 독자를 집어삼킨다. 악어는 빽빽하게 세워진 빌딩을 보며 담담히 말한다. 그림으로, 그리고 눈빛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살아가야 하니까. 이 도시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당신을 다정히 마주할 때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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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개인 인스타그램의 게시글을 일부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www.instagram.com/p/CZbwQAXp4cf/?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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