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문장들 -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
박산호 지음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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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른의 문장들은 번역가 박산호가 삶의 문장들을 정리한 책이다. 모든 게 처음인 길에서 성숙함 한 스푼 얹은 어른살이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정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처럼 목표를 설정하거나 정서적 울림을 강하게 유도하지 않는다. 대신 짧고 단단한 문장을 따라가며 독자가 자기 삶의 흐름을 비춰보게 만든다. 그 과정은 감동보다는 사유에 가깝고, 위로보다는 정돈에 가깝다. 결국 이 책은 특정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비춰주는 거울에 가까운 형태로 작동한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총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은 어른살이의 태도, 관계, 성장, 회복, 행복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에서는 거절과 성실, 선택의 태도를, 이상하고 이로운 어른들에서는 관계 안에서의 감수성과 경계를 다룬다. 3장은 부모로서의 시선을 통해 성장의 관찰을, 4장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중심으로 감각의 회복을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실패 이후의 재시작, 도망이라는 선택, 자기 보호의 기술이 중심에 있다. 각 장마다 인용된 문장에 저자의 경험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책의 문장들은 길지 않고 대부분 인용과 사유의 결합 형태를 띤다. 단문 중심의 서술은 일상 속 어느 지점에서든 쉽게 읽히고 멈출 수 있다. 책 전체를 따라 읽기보다 필요한 부분을 골라 보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소화된다. 읽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문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저자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조용한 책이다. 말을 줄이되 그 안에 생각을 머금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한 다기보다는 독자 스스로의 언어가 떠오르기를 유도하는 흐름으로 정리되어 있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태도를 정리해 주되 그 적용은 전적으로 독자 몫이다. 거절, 성실, 실패와 회복이라는 익숙한 키워드를 다루면서도, 문장과 태도는 반복과 과잉을 피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들이지만 이 책 안에서는 조금 더 깊게 다가온다. 미움받을 용기, 지금 당장 행복하자 같은 문장은 자극 없이 전달되며, 독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태도를 조정해 볼 수 있다. 말보다 말투, 주장보다 맥락이 우선시되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건넨다.


저자의 역할은 이끌기보다는 비추는 쪽에 가깝다. 독자의 삶을 평가하거나 서열화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자신이 겪은 일과 읽은 문장을 통해, 나도 그런 적 있다는 태도로 곁에 머무른다. 이로써 책은 위로보다는 혼자 생각할 시간을 제공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양육과 돌봄에 대한 통찰, 감정과 거리 두기에 대한 성찰 모두가 과시 없이 서술된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에 닿아 있는 사람에게만 자연스럽게 읽히는 구조다.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이 책의 유용성은 명확하다. 문장은 가볍지만 그것이 주는 정돈감은 독서 후에도 오래 남는다. 서술의 긴장이 낮은 대신 반복해서 펼쳐볼 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특히 긴 글을 읽기 어려운 시기, 복잡한 설명보다는 마음을 두드리는 말이 필요한 순간에 효과적이다. 인생을 바꾸는 책이라기보다는 하루의 균형을 바로잡는 글이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사고의 중심을 다시 조정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정리된 언어와 생각의 기본 단위를 건네줄 수 있다. 정보보다 리듬, 감정보다 구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있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어른은 나이와 무관하다. 태도와 시선, 자기 거리 두기와 회복 탄력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책은 이런 어른다움을 특별한 위치로 올리지 않는다. 실수해도 괜찮고, 도망쳐도 괜찮다는 말은 그 자체로 해답이 아니라 여지를 남긴다. 완성형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대신 미완의 상태에서도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조용히 제안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누군가를 닮으라고 하지 않고 각자 스스로 다다를 수 있는 방식의 여백을 남긴다.


에세이라는 형식에 기대는 글이 많은 시대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톤과 구성을 유지한다. 개별 경험에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에서 자신을 비추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도 생각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자기 말 걸기보다는 독자가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 책의 미덕은 그 조용함이다. 어떤 말을 하고 싶다기보다, 어떤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정리된다. 말보다 태도가 오래 남고, 언어보다 맥락이 깊게 스며든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인 길 위에서 성숙함 한 스푼을 보태려 애쓰지만, 정작 나이 듦에는 서글픔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젊음만이 좋은 것처럼 떠드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나이 듦 그 자체에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여러 이유 가운데 특히 마음을 깊이 울린 말은 오랜 시간 나라는 존재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온다.



목표 지향적인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자연스레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허탈감에서 비롯된 공허한 우울 속에서도 저자의 말을 곱씹다 보면 가장 좋은 치료제를 이미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러 있던 나라는 존재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돌아봐주지 않았을 뿐이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익숙해지듯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면이 텅 빈 듯한 순간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내 나이만큼 내 옆에 붙어 살아온 나에게 있다.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은 인생을 바꾸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용히 삶을 정리하고 싶은 순간, 하루의 속도를 늦추고 싶은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대신 생각할 시간을 만들고 감정을 정리할 틈을 건넨다. 감정은 줄이고, 여백은 넓힌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묻지 않고 조용히 곁에 머무는 책. 그게 어른의 문장들이다. 이를 저자는 흔들리는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하지만 단단한 말들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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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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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살만 루슈디가 극찬하고 오펜하이머 제작사가 영화화를 확정한 마자 멩기스테의 역사 소설 그림자 왕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본질은 전쟁이 아니다. 이 작품은 진실을 쥔 자와 기록을 조작하려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 즉 기억을 둘러싼 역사 기록 패권 쟁탈전에 가깝다. 누가 이름을 남기고, 누가 잊힐 것인가. 가장 치열한 싸움은 말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서사를 두고 벌어진다. 그럼 그 장대한 서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다. 어린 하녀 히루트는 군 총사령관 키다네의 집에서 일하다 전쟁에 휘말린다. 여성들은 처음에는 식량을 나르고 무기를 나르지만 곧 전투에 직접 참여한다. 황제가 망명하자, 전사들의 사기를 위해 한 농부가 그림자 왕으로 위장돼 세워지고 히루트는 그의 호위병이 된다. 이 과정에서 히루트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과 수용소 포로 생활까지 겪으며 전쟁 한복판을 통과해 나간다. 어린 소녀였던 히루트는 점차 이름 없는 전사로 성장하며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역사 소설 마자 멩기스테의 그림자 왕은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전쟁을 단일 사건으로 두고 본다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크기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왜냐하면 이것의 이면에는 1895-6년에 벌어졌던 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의 패배 기록을 지우고 그 위에 승리의 역사를 덧씌우기 위한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대외 국가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며 향후 국제 사회는 이탈리아에 경제 제재만을 가하게 된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의 씨앗으로 작용한다.



이런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작품 속에서 몇 가지 포인트를 인지하고 읽는다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깊이가 다르게 다가온다. 먼저 이 작품 속에는 책 제목을 의미하는 그림자 왕이 엄밀하게 따져 두 명 등장한다. 바로 실제 전쟁 전 실제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와 그와 닮아 국민들의 구심점이 되도록 만들어진 가짜 왕. 전자는 기억을 잊은 왕으로 후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 왜 굳이 당시의 황제가 책 제목에 부합하는 인물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전쟁 발발 전,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후손이라는 전설을 가져 종교적 정통성과 정치적 절대성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도 아프리카 통합과 반제국주의 상징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망명이라 쓰고 도망이라고 읽는 행위를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으나 왕국이 붕괴되어 기억의 유령으로 남은 그림자 왕에 불과했다. 이런 위상의 변동은 이후 에티오피아 내전이 발발하는 발판이 되었다.



다음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그림자 왕인 농부 미님의 가짜 황제 만들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깊다. 이들은 도망간 황제를 대신하여 국민을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이 필요했기에 닮은 이를 황제로 만든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공동의 상상과 연결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믿기로 한 허구라는 개념을 작중 주인공들은 전쟁 속에서 뼈저리게 겪었기에 가짜 왕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는 크게 두 명의 여전사가 나온다. 표면적으로만 읽으면 이 책은 억압받고 멸시받던 여성들의 활약을 다룬 전쟁 소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살만 슈디가 극찬한 내용과 연계한다면 단순히 젠더 갈등보다 훨씬 깊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다룰 여전사는 아스테르이다. 그녀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들끼리의 계산으로 현재 남편과 결혼한 케이스이다. 결혼식 전에 요리사와 도망을 계획했다가 그녀 대신에 요리사가 고초를 겪었을 정도로 저항이 심했다.



첫 날밤을 묘사하는 부분이 꽤 긴 편인데 이 부분에서 작가의 필력(물론 다른 부분에도 많이 드러난다)이 드러난다. 바로 그녀 자리에 에티오피아라는 국가를 대입함과 동시에 첫 날밤의 묘사는 당시 국가와 국민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스테르는 고귀한 혈통을 지녔기에 당시 당시 공식적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유일하게 사용했던 에티오피아와 흡사하다. 이런 그녀조차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한 남자에게 유린당하다시피 첫 날밤을 보내게 된다.



아스테르 개인의 서사인 강제 결혼, 도망과 저항, 출산, 억압의 종말을 상징하는 아이의 죽음,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녀 자리에 에티오피아를 넣어 집단 서사로 바꾸면 강제 합병으로 인한 식민지화, 저항과 전쟁의 실패, 정복의 산물인 식민지 체제, 이후 식민체제의 붕괴로 독립의 조건 달성으로 대비된다. 아스테르의 결혼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국가의 상태로 놓게 되면 그녀는 에티오피아라는 국가의 아이콘으로 신화적 상징으로 급부상한다.


마지막으로 작중에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인물인 히루트 이야기이다. 그녀는 살아남은 자이다. 신화로 봉인된 왕도, 죽음으로 상징화된 귀족 여성도 아닌, 육체로 전쟁을 통과한 이름 없는 병사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존재로 그녀는 더 이상 대체되지 않는 국가의 현재를 상징한다. 기억과 생존이 그녀 안에 결합되며, 에티오피아는 왕도, 여왕도 아닌 그녀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 일으켜 역사의 기억을 다시 쓰려 했던 이탈리아에 맞선 싸움의 최종 승자는 히루트가 아니었을까.?



살만 루슈디가 극찬하고 오펜하이머 제작사가 영화화를 확정한 마자 멩기스테의 역사 소설 그림자 왕은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기억이 어떻게 선택되며, 상징이 어떻게 권력을 잃는지를 기록한다. 왕은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복원하지 못했고, 여전사는 침묵 속에 사라졌으며, 살아남은 병사만이 국가의 현재가 되었다. 이름을 잃은 이들이, 살아남은 자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현대 에티오피아는 더 이상 왕의 나라가 아니라, 히루트들의 나라라고 하는 듯.



#그림자왕 #마자멩기스테 #문학동네 #장편소설 #살만루슈디극찬 #오펜하이머제작사영화화확정 #영화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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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의 연결을 묻는 카를로 로벨리의 질문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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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이라는 정밀한 도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물리학의 언어를 넘어, 철학과 예술, 정치와 삶의 구체성으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한다. 이 책은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관계적 존재론을 제시하며, 존재의 본질이 고립이 아닌 연결에 있다는 관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이기에 건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만의 특유한 부드러움으로 딱딱한 과학의 흔적을 덮어 누구나 읽기에 부담이 없다.



이 책은 장자의 물고기 일화에서 출발한다. '나는 여기에서 알았다'라는 장자의 말은, 앎이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인지 행위가 아니라 세계 자체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입장은 이원론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며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 감각과 진리의 경계를 허문다. 관계 중심의 사유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작가는 원자의 정체조차 그것이 세계의 다른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음악 역시 음파나 악보가 아니라, 듣는 이의 뇌에서 발생하는 복합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관계적 현상이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를 반사하고 변주하는 상호작용의 총합으로 설명된다. 레스보스 섬의 서정시와 고대 자연철학, 갈릴레오와 하이데거, 우주론과 양자역학, 기후 위기와 전염병까지. 겉보기엔 이질적인 주제들이 하나의 축(연결성)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독자는 장르를 넘나드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과학과 인문학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임을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과학을 객관적 진리의 집합이 아닌 관점의 전환을 통한 세계의 재인식으로 해석한다. 그는 갈릴레오의 두 세계의 대화가 과학적으로는 오류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인 시선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과학이 단순한 사실의 축적이 아닌 존재 방식의 전환과 맞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그에 따르면 최고의 과학은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감각의 직관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통찰 또한 그의 중요한 주장이다. 저자는 단순한 과학적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생태 위기와 팬데믹, 불평등과 전쟁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그는 권력이 해결책보다 우위를 추구하고, 폭력의 논리에 빠진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게임이론의 발상을 전환해 경쟁의 구도를 협력의 게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 협력 없이는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경고는 과학자의 경계 너머에서 들려오는 도덕적 요청이다.



특히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존재론과 윤리가 하나의 축으로 엮여 있다는 데 있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며 그 관계를 인식하고 확장하는 것이 곧 윤리적 실천이 된다. 저자는 이론적 철학과 사회적 연대를 분리하지 않는다. 존재의 이해는 곧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며 이 책은 그러한 철학적 통찰과 실천적 태도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를 위하여 그는 첫 챕터에서 말한 장자 일화에 대한 독자들의 의문을 씻어주기 위하여 마무리에서 다시 끄집어 낸다. 이러한 시선은 독자 각자의 사고와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난다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를 모은 카를로 로벨리의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의 연결을 생각하지 않고 읽었을 때 오해하기 쉬운 책이다. 아마 첫 몇 챕터만에 길을 잃고 헤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론 물리학자라는 저자의 정체성을 떠올리면서 읽는다면 제각각으로 떨어져 있는 주제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장자, 전쟁, 정치, 미술, 음악, 과학, 철학까지 무엇 하나 일관성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은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양자로 인식한다면 오히려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학자가 확실성 대신 질문을 남긴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때때로 명확한 결론 없이 사유를 멈추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깊은 사고를 유도했다. 장자의 물고기 일화가 뜬금없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끝에 가서야 앎이 세계의 일부라는 메시지로 닫히는 구조는 의도적인 사유의 미로 같았다. 문장을 곱씹고 페이지를 몇 번이고 되짚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그 미로는 때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 자체로 사고의 운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갈증도 남았다. 모든 존재가 관계 속에 있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그 관계 너머의 개별성은 어디에 있을까? 세계가 얽혀 있다는 설명은 풍부했지만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 고유한 선택과 실존의 무게는 다소 가볍게 다뤄진 듯했다. 어쩌면 이 책은 질문을 던지는 데 집중했을 뿐 답은 애초에 각자에게 찾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열린 태도 자체가 저자의 윤리였을 것이다. 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차원에 대한 침묵은 오히려 독자에게 더 본질적인 고민을 유도한다.



물론 이 책이 제시하는 사유는 모든 문제에 완결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저자는 과학의 객관성과 관계적 존재론의 상대성, 겸손한 존재 인식과 인간 주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 균형점은 독자에게 열린 채 남아 있으며 이는 이 책의 미덕이다. 완결된 체계보다 질문을 남기고, 통합적 시야를 제안하며, 사유의 확장을 유도하는 방식은 관계의 철학을 품은 과학자의 사유라는 그만의 컬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식의 구조보다는 사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본질적 가치이다.



이 책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재구성하고,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재정비하며 삶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물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이론보다 존재에 가깝고, 실험보다 질문에 충실하다.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의 사유 흐름으로 연결하며 그 안에서 독자는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게 된다. 지금처럼 전 지구적 혼란이 구조화되는 시대에 작가의 연결 사유는 사고의 방식 자체를 되묻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된 이들에게 열려 있는 사유의 지도이다.



#무엇도홀로존재하지않는다

#카를로로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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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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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
찰스 S. 코켈 지음, 이충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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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찰스S. 코겔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가 눈에 띄는 순간 무조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양 과학서에 속하는 이 책은 단순하게 존재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 관한 허황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지의 존재를 통하여 그 시선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장 쉬운 언어로 제공하는 도서이다. 따라서 창의성을 길러야 하는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영국의 우주 생물학자 찰스 S. 코켈은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에서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이 책은 택시 운전사와 승객 사이의 대화를 빌려 복잡한 우주론과 생물학 이론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변환한다.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우주의 법칙, 문명의 조건과 지적 생명체의 가능성까지 저자는 일상의 언어로 우주의 경이로움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마치 천체 망원경을 들이대듯 이 책은 낯설고 광활한 세계를 눈앞으로 끌어당긴다.



책은 총 열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식은 단순하다. 택시에 오른 한 손님과 운전기사의 대화로 제기된 문제에 대한  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외계인, 우주 같은 과학적 개념부터, 유령, 삶과 죽음, 우연과 필연 같은 철학적 주제까지 오간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평이한 문장 속에 녹여내고 낯선 개념도 익숙한 비유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 책은 과학 입문서이자 동시에 철학적 성찰을 유도하는 일상 속 지적 탐사기다. 별과 원자, 인간과 문명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과학을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훈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독자에게 엉뚱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과학·철학·수학 등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다. 그 여정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주가 말을 건다는 이 상상은 SF 적 상상력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존재를 다시 정의하려는 철학적 출발선이다. 우리는 우주를 바라보지만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을 담은 찰스S. 코켈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를 처음 접하면 의외의 방향성에 놀라게 된다. 첫 챕터인 외계인 택시 기사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했을 때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보다 그동안 알고 있던 지식으로 먼저 이 질문에 답해보았다. 가장 먼저 지구 밖은 산소 기반의 생명체가 살 수 없으니 메탄 환경에서도 살아야 하므로 우리가 아는 생명체와는 다를 것이다. 살 수 있다면 균류나 미생물과 비슷할 것이다.



이런 생물은 태양빛이 닿지 않을 수 있어 광합성도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우리와는 형태가 매우 다른 종류의 생명체일 것이며 다세포 생물보다는 단세포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외계인의 존재는 있을 수 있으나 다세포 생물이 아니라면 인간과 같은 지능은 어렵고 에너지 획득 방식조차 우리와 다를 테니 택시 기사까지는 없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한 후 첫 페이지를 열었다.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연하게 우주 환경에 대하여 첫 매듭을 풀 줄 알았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시선을 원시 지구로 끌고 온다. 원시 지구에는 산소보다는 메탄 등의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어쩌다가 세포가 막 속에 갇히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면서 미생물이 바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남세균인데 물을 분해하여 수소는 자신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산소는 노폐물로 인식하여 밖으로 뿜어냈다. 이런 행위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최초의 환경 오염으로 정의된다. 산소를 이용한 환경 오염.


이렇게 산소가 점차 대기에 쌓이게 되면서 다세포 생물이 생성되었고, 산소의 농도가 가장 많았을 때 출현한 것이 공룡류이다. 산소 농도가 극대화되었을 때 나타난 거대한 생물이다. 즉, 우리 인간은 지구가 원래 상태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이 된 결과물로 생성된 희한한 존재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오염된 바다에 출현하는 녹조류와 인간은 같은 조건에서 등장한 생물이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녹조류가 사라지는 상황과 인간의 멸종도 비슷하지 않을까? 



탄소 중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지구가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환경 자체가 지구 입장에서는 고여서 썩어있던 상태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무엇을 기준으로 오염이라 정의할지 혼란스러워진다. 이 책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확실하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누구나 이렇게 사유의 장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열어주는 데 이 책의 매력이 있다.



이제 이런 과거 원시의 지구 상태를 미지의 행성에 대입해 보자. 당신이 우주선을 타고 어떤 행성에 도착했을 때 산소 농도 측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만약 거기에 산소가 없다면 우리처럼 고도의 지능을 갖춘 외계인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산소 농도라면 대화를 하고 이해를 나눌 누군가를 발견할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테지만 공룡 시대 수준의 산소라면 생존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끝없는 사고의 과정을 일으키게 만드는 찰스S. 코켈의 어느 날 택시에서 우주가 말을 걸었다는 처음에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우주로 나갔을 때 외계인을 만날 수 있을지,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만약 우리가 어떤 행성에 정착했을 때 문제점은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정의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 많은 부분을 다룬다. 과학적 사고 위에 펼쳐진 상상력의 기차, 그것이 이 책이 선사하는 지적인 잡담으로 떠나는 우주여행이다. 


#어느날택시에서우주가말을걸었다 #찰스S코켈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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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
리처드 바크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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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에게 『갈매기의 꿈』 작가로 알려진 리처드 바크가 『나는 자유』라는 신작 비행 에세이를 출간하였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그의 작품을 한 번쯤은 책이든 각종 미디어에서든 접해봤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이야기를 주로 쓰는 그는 스케일 크게 비행기 구매하는 이야기로 책의 처음을 시작한다. 작중 비행기의 이름은 퍼프이며 그를 사람과 같은 동료로 대한다. 덕분에 독자는 책장이 넘어갈수록 『갈매기의 꿈』 성인 버전으로 인식하게 되는 마법을 겪는다. 그가 말하는 자유의 정의와 철학에 대하여 살펴보자.


리처드 바크의 신작 『나는 자유』는 그가 시레이라고 하는 수륙양용 비행기를 구매한 후 연습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작성한 비행 에세이이다. 『갈매기의 꿈』 작가답게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비행기에게 퍼프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마치 그가 자유 의지를 가진 것처럼 비행기와 대화를 이어간다. 덕분에 비행 과정에서 겪는 아찔함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함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코믹함과 천진함이 배경에 흐르고 있어 또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작품 속에서 저자와 댄이라는 지질학자이자 법학 학위를 가진 멘토, 그리고 퍼프와 댄의 비행기 제니퍼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독자는 그가 공군 전투기 조종사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비행에 꽤 능숙하리라 생각하지만 그 텀이 길어서인지 그는 초반에 고군분투한다. 쉬울 것 같은 착륙에서 오히려 퍼프를 망가뜨리고, 날씨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상어 떼를 만나기도 한다. 매번 하늘을 향해 솟구치지만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위기에서 항상 벗어난다. 그는 이를 두고 최선을 다했을 때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 자신을 돕는다고 말한다. 때론 천사라고도 하고, 때론 수호천사라고도 한다. 토네이도, 폭우, 우박, 돌풍, 기기 결함, 예기치 못한 사고 등으로 언제나 좌충우돌이지만 저자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하나씩 겪을 때마다 무사히 잘 넘어간 것에 그치지 않으며 꼭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는 말한다. 이렇게 배운 것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고. 다음에 꼭 꺼내서 활용해야 한다고.



총 마흔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그의 비행 에세이는 언제나 시작만 있다. 매일 날아오르는 하늘의 환경도 매번 다르다. 이는 마치 리허설이 없는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 그 또한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이 점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말한다. 자유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산물이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희생되는 것이 있다고. 이를 위한 베이스는 열정이며 열정이 없는 삶에서 자유 또한 없다고.



책은 언제나 자신만의 목소리가 흐른다. 『갈매기의 꿈』 작가 리처드 바크의 신작 비행 에세이 『나는 자유』에는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소년의 목소리와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목소리가 선율을 이루어 독자에게 말을 건다. 몇 번을 저자의 나이를 생각하며 음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매일 도전하는 자의 목소리는 절대로 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저자는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과 그 후에 감당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하고 있다. 이것의 선택에는 모험이 따르며 반드시 기회비용으로 발생하는 희생되어야 할 것이 존재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당장 나쁜 일로 보이더라도 그 사건의 좋고 나쁨에 관한 정의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입으로 자유와 열정, 그리고 도전을 외치지만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당장 눈앞에 펼쳐진 아찔함에 시간을 주어 심리적 여유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자유를 외치면서도 안전을 확인하고, 도전을 말하면서도 결과를 보장받으려 한다. 희생은 말속에만 존재하고, 행동은 늘 계산 안에서 멈추며 그 계산마저 멀리 보는 것이 아니라 코앞에 발생한 일만을 기준으로 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그것은 고결하며 실천은 어렵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의 고결함은 언제나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여유가 있다. 누구도 감당하지 않기에, 자유는 때로 신화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관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날지 않고 나는 이를 구경한다.



자유는 삶을 건너는 방식이자, 끝까지 감당하지 못한 말들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날았다. 우리는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걷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말하는 순간마다 그 거리만큼 간극은 또렷해진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을 동경하며, 날지 못한 채 우리는 이를 지켜본다. 그것도 하나의 방식일까. 아니면,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 첫 선택에 가까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리처드 바크의 신작 『나는 자유』는 거창한 철학 대신 반복되는 경험을 쌓아 올려 현실적 감각을 만들어낸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막상 감당하려 하면 자주 물러나는 말. 저자는 사유의 자유가 아니라 실천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실패마저 다음 추진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그의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상상 속의 날아오름이 아니라, 행동으로의 날아오름으로 옮겨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삶이 지루하신 분,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분, 언제나 행동 앞에서 멈추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자유 #리처드바크 #에세이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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