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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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언젠가부터 항상 드는 의문이 있었다. 성향은 모던에 가까운데 왜 고전 미술 특히 회화에 항상 관심을 가질까 하는 의문. 이것을 알기 위하여 그동안 예술, 예술사 관련 책들을 열심히 읽었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고, 급기야 각국의 역사까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 지성에서 출간한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모두 풀렸다. 해답을 알려준 책 내용과 이를 도출해 낸 과정을 알아보자.



현대 지성에서 출간한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들어가며 와 11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각 장마다 한 시간씩 12시간이면 미술 감상을 하기 위한 기본을 갖출 수 있다고.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 책의 원제는 The 12-Hour Art Expert(12시간 만에 예술 전문가 되기)이다. 책은 예술에 관한 철학적 의미, 미술에서 사용하는 용어, 그림을 읽는 도상학, 각 사조 및 대표적인 작품, 미술 범죄, 첨단 기술과의 접목, 심리학과의 연결, 경제적 가치, 미술사, 그리고 앞으로의 미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1장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것이 예술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설명한다. 첫 문단부터 호기심을 일게 만드는 예시를 들고 있어 독자의 마음을 단숨에 훔친다. 당신이 친구와 부서질 것 같은 나무배를 구매하여 수리한 후 733킬로미터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어느 섬까지 항해한다. 이 과정을 모두 동영상으로 제작하였고, 도착 후 배를 해체하여 이것으로 오크 통을 만든다. 여기에 최고급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채운 후 숙성시켜 위스키 733병을 만든다. 이 모든 여정은 영화, 스케치, 책으로 제작된다. 이게 왜 예술로 여겨질까?


이 한 문단을 읽는 순간 이미 당신은 작가가 쳐 놓은 집중의 덫에 단단히 휘말린 것이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평소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읽어야 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끌어온다. 훌륭한가?, 아름다운가?, 흥미로운가? 이쯤 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어렵지 않다. 잠시 방심한 틈을 타 플라톤의 예술은 모두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굴의 맞은편 벽에서 춤추는 그림자와 같다는 국가의 한 문단을 가져온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책이지만 작가의 설명과 곁들여지니 시학도, 국가도 예술 관련 이야기는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뒤로 넘어가 사조 파트에서도 다시 나오지만 1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고대 벽화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예술은 밥 먹고살 만한 여유 상황에서 접하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호랑이의 밥이 될지 모르고, 다음 시간에 먹을 밥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고대인들조차 벽에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인간이 생존을 위한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영혼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는 여유 있는 삶과 관계가 없다는 말이었다.



미술에 관련된 도서는 대부분 서양인의 우월주의 시각에서 쓰여 있다. 그 유명한 미술 입문서인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마저도. 작가는 이 부분을 지적하며 중국, 나이지리아, 일본 등에서 더 먼저, 현저히 발달한 미술까지 언급하고 있다. 또한 다빈치가 활동하던 시기에 왜 여성 미술가가 없는지에 대한 분석을 비롯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화가를 찾아 언급한다. 심지어 자신을 가르친 스승보다 나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보고 누가 흠집을 잡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을 작가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대학에서 예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가르쳐봤기 때문일 것이다.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의 부제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났을 때 어지간한 일반인 앞에서 우아하게 예술품을 보며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 이후는 직접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감상하라고 저자는 제시한다.



이제 이야기의 시작에서 잔뜩 궁금하게 만든 고전 회화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유의 답을 살펴보자. 왜 취향도 아닌 작품에 이토록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도상학 때문이다. 단순히 기법이나 감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가 숨겨놓은 메시지를 읽어내는 학문이다. 우리는 이를 미술의 언어를 읽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면 아무리 교양서를 읽어도 그 언어는 닿지 않는다.



작가는 이를 3장에서 설명한다. 그림 속 인물, 동물, 과일, 빛과 구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상징이다. 다리 밑의 개는 충성심을, 창가의 오렌지는 경제력을 의미한다. 수태고지의 구도는 마리아의 순결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장치다. 도상학은 성인 연구, 알레고리, 감춰진 상징으로 나뉜다. 이를 해독하려면 당시의 시각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작가와 제목 없이도 이미지만으로 성인을 구분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동안 내가 역사나 종교, 생활상을 찾아 헤맨 이유도 결국 도상학을 알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미술 자체보다 그 안의 암호를 궁금해했던 것이다. 고전 회화 속 모든 요소는 반드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고, 이 책은 그 의미를 해독할 열쇠를 제공한다. 이제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상징을 찾고 있을 것이다.


주로 미술 범죄에 관심을 가진다는 노아 차니여서인지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미술품에 생긴 나쁜 일에 대한 파트가 꽤 흥미로웠다. 현대 지성에서 출간한 노아 차니의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의 제목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도슨트처럼 미술관을 걸을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물감의 조합이 아닌 시간의 한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당시의 작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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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2가지 물질 - 물질은 어떻게 문명을 확장하고 역사를 만들어 왔을까?
사이토 가쓰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북라이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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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 to Z로 된 세계 역사책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부터 줄기차게 보았다. 그러나 이런 책의 최대 단점은 따분하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관심 분야에 현미경을 들이댄 부분의 역사는 누구나 눈을 반짝일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수많은 분야가 있겠지만 오늘은 제대로 읽으면 국제 정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북라이프에서 출간한 사이토 가쓰히로의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물질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북라이프에서 출간한 따끈따끈한 시작 사이토 가쓰히로의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물질은 제목 그대로 열두 챕터로 되어 있다. 전분, 약, 금속, 세라믹, 독, 셀룰로스, 화석연료, 백신, 암모니아, 플라스틱, 원자핵, 자석까지. 언뜻 보면 공통점이 단순히 포인트가 문명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국제 사회의 힘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작가가 과학을 전공하여서 그런지 내용이 단순한 역사라기보다는 과학적 논리가 탄탄하게 갖추고 있어 이 힘의 논리를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맨 처음의 전분과 자석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알아보려고 한다. 먼저 전분은 식량으로 대체해도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파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농업 혁명에 관하여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계기이며 집단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어 자연에서 먹이 사슬 최상위층으로 올려준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노동에 생존 기간을 거의 다 쏟아부어야 먹고 살 환경을 스스로 만든 것이며 각종 영양 결핍으로 간 계기라며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문학자의 눈이 아니라 철저하게 과학자의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구의 근원적인 에너지인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생물체는 식물이 유일하다. 태양은 태양빛을 쬐며 공기 속 이산화탄소와 물을 에너지로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반응이 흔히 말하는 광합성이다. 우리는 이것을 먹고 소화시켜 에너지를 얻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탄수화물을 흡수하여 몸속의 소화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이산화탄소, 물, 에너지로 변환한다. 즉, 우리는 역광합성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동물은 태양 에너지를 절대 직접 이용하지 못한다. 반드시 식물을 통하여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섭취하는 탄수화물을 저자는 태양 에너지 통조림이라고 부른다. 좀 더 많은 농업 혁명은 식량 생산량을 증가시켜 인구 증가와 문명 발전을 가져왔지만 전쟁과 함께 빈부 격차도 가져왔다.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는 현재 땅에 대한 전쟁을 인간끼리만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심한 땅 싸움은 바로 식물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중세 시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마녀사냥의 원인도 저자는 탄수화물에서 찾는다. 마녀사냥의 원인은 성 안토니우스의 불이라고 불리는 병이다. 바로 맥각균이라는 균 때문이다. 이 균이 번식한 곡식을 먹으면 손발이 마치 불타는 듯한 통증과 환각 작용으로 인하여 이상 행동이 나타난다. 이게 심했던 시기와 마녀사냥 수의 증가와 일치했다며 저자는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운 관점은 농업 혁명 이후 부족이 생기고 계급이 생겼으며 이것이 확대되어 국가로 이어졌다. 당연하게 그 결과는 계급 사회와 빈부 격차로 이어졌다. 이런 점은 동물의 본능적인 특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런 일은 식물 사회에서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키가 큰 나무는 근원 에너지를 마음껏 빨아들여 더 커지고 바닥에 붙은 식물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환경에 적응했다. 어쩌면 이런 계급과 빈부 격차는 생물의 기본 특성이 아닐까?



마지막 단원의 자석은 사실 그 자체의 내용보다 한국에서 얼마 전 개발에 성공한 중국의 희토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구 자석을 개발했다는 기사를 보았기에 그간의 내용이 궁금하여 더 주의 깊게 보았다. 희토류의 80%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이 희토류 수출에 칼을 대기 시작하면 전 세계 경제가 마비된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전기 제품 등에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작동이 가능한 자석의 원료가 사라져 그야말로 한국 산업의 숨통을 끊어 놓게 된다. 



물론 다른 희토류도 있지만 일단 자석 파트에서만 국한하여 이야기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것을 개발했다는 기사에 남몰래 뛰는 심장을 지그시 눌렀던 기억이 나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이 자석 파트에는 꿈의 초전도 자석이 있다. 바로 얼마 전 개발했지만 실험에서 실패한 초전도체 LK-99로 만들 제품이다. 비록 이 실험이 실패했으나 세계적으로 그동안 테스트에 사용하던 물질의 확장을 가져와 많은 국가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전도 자석은 에너지 저항을 0에 이르게 만들어 에너지 손실이 없어 각종 산업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자기부상 열차는 저비용으로 고속화 가능하며 양자컴퓨터, MRI, 군사 레이더 등을 저비용,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또한 AI 기술의 베이스가 되는 반도체, 모터 기술도 지금보다 몇 단계 도약하게 된다. 고가 장비의 핵심 부품이 초전도 자석인데, 상온에서 이용이 가능하다면 국가 경쟁력이 어마어마해진다. 그야말로 기술 종속 탈피를 이루는 지름길이다. 비록 LK-99의 실험에 실패했지만 꾸준히 기사를 탐색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첫째, 청소년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친절한 언어로 쓰였으며, 역사나 과학에 익숙하지 않아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이미 일정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책 속 곳곳에 흩뿌려진 과학적 단서들을 따라가며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다. 그만큼 독자층이 넓고, 읽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확이 있는 책이다. 특히 국제 정세나 경제 흐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필독서로 삼을 만하다.


#세계사를바꾼12가지물질 #사이토가쓰히로 #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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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 요양원을 탈출한 엄마와 K-장녀의 우당탕 간병 분투기
유미 지음 / 샘터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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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샘터에서 출간한 유미 작가의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라는 제목을 보면서 익숙한 유머 소설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다소 기시감이 들 수 있다. 나 역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기억하며, 혹시 그 패러디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 제목은 전혀 허구가 아닌 실제로 벌어진 일을 담담히 옮긴 것에 불과하다. 뇌종양 수술 후 요양원에 있던 엄마가 새벽 두 시, 맨발로 창문을 넘어 히치하이킹을 통해 집으로 도망쳐온 그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돌발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저자의 엄마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후 사회로 뛰쳐나와 내도록 진취적으로 살아왔다. 운동화를 신으면 용기가 생긴다며 마라톤에 도전할 정도였으며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달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 녹즙 배달을 할 때에도 자신의 삶을 창피해하기 보다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가 상대방들이 꽤 인정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이런 삶을 살 것 같은 그녀에게 질병의 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유방암으로 시작한다. 이후 신우암, 폐암, 뇌종양에 이어 다시 폐암으로의 전이까지. 책의 내용은 첫 폐암까지 이겨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 환자 같은 행동을 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가족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여겨 엄마를 요양원에 입소시킨다. 주중에는 간병인이 돌보았고, 주말에는 딸이 내려갔지만 어머니는 갇혀 있다는 것에 더욱 난폭해진다. 주말에 요양원에 들른 딸의 눈에 반편이 마비가 되어 있는 것이 보여 뇌졸중인 줄 알고 병원에 급히 데려간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뇌종양이었다. 너무나 위험하여 일사천리로 상담까지 진행되어 수술을 받은 엄마. 그러나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뇌종양과 함께 치매까지 온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좋아지지 않는다. 불안, 공격성, 기억 장애가 섞인 변화는 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후폭풍이 몰아친다. 하룻밤에 전화가 30통 이상 올 정도로.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상태는 이제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수준에 이른다.









간병 에세이인 유미 작가의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단순히 노년과 병, 돌봄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를 끝없이 몰아붙이는 자식의 이야기다. 딸은 스스로 엄마를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에 맡기는 자체에 스스로를 책망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였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언니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쓴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엄마는 단 하나의 문장을 반복한다.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그 목소리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마지막을 결정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이자, 아무리 병들어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규에 가깝다. 그리고 작가도 단순히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의 헛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간절한 소망임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녀는 이젠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엄마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후 반전은 꽤 큰데 이건 책으로 직접 읽어보시길!







이 책은 누군가의 병든 몸이 회복되어가는 이야기라기 보다 그 병든 몸을 둘러싼 관계들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병과 함께 찾아오는 실질적 변화보다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한계를 경험하는 가족의 감정이 더 섬세하게 다뤄진다. 딸은 내도록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만약 자신이 이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은 것을 해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책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독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과연 지금 당장 나에게 저자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그녀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돌도 지나지 않은 자식이 있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그 결말이 희망이 아닌 절망이라면.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마지막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 책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그 결과 가족과의 이별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적인 부담까지 고려해야 하는 부담감을 책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삶의 시작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끝없이 희생하여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단순히 어느 특정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이 사회 속에서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단면을 날것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가족을 돌보는 고통의 한계선을 넘어선 어느 순부터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슬픔과 감동뿐만 아니라 저자가 던진 더 단단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유미 작가의 간병 에세이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읽는 내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단 한 번도 드라마틱 하지 않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더 아프다. 끝까지 품을 수 없다는 죄책감과, 끝까지 품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고통받는 모든 자식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생각보다 허점이 많은 제도를 고발함과 동시에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저절로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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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파올라 퀸타발레 지음, 미겔 탕코 그림, 정원정 외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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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직접 경험하기 전 그림책은 유아용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읽어보니 메말라 버린 감성을 깨우기에는 그림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 매달 한 권씩은 꼭 챙겨서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 일환으로 이번 달은 파올라 퀸타발레의 어떤 날은을 가져왔다. 봄에 어울리는 노란 꽃들이 만발한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개나리가 피는 지금 읽기에 딱 좋은 그림책이다.








파올라 퀸타발레의 어떤 날은 어린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상들을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스토리가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줄거리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점점 더 심리적으로 단단해져 가는 방법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말하고 있다. 첫 페이지에는 아이가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후 그것을 지켜본다. 







살다가 보면 가끔 어떤 일을 망칠 수도 있고, 친구와 비밀이 생기기도 한다. 점점 자신만의 세계가 생기면서 두려움도 극복하고, 한때 친구였던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이별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점차 자신만의 공간을 넓히면서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글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히 적거나 가볍지 않다.






상황에 따른 삽화가 두 페이지에 걸쳐 하나가 등장하는데 너무나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어서 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슴 두근거릴 만큼 행복하고 설레는 일도,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 책의 한글 제목은 어떤 날엔이지만, 원제는 공간 만들기(Making Space)이다. 특정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기보다 점점 외부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마음의 공간을 말하고 있다. 매 페이지마다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주체적이라는 것. 삶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역시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어린이가 읽기에도 좋지만 감성과 자신감이 바닥난 성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특히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나이 대를 가지신 분, 자녀를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희생한 후 스스로를 잃어버려 되찾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에게 꽤 좋은 처방전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삶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늘 적당히 포기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꽤 큰 자극이 되었다.







"하루의 끝에서 반갑게 


밤을 맞을 수 있을 거예요"



성공한 인생을 산 누군가의 조언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을 똑똑똑 두드리는 매 페이지들은 도전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사르르 녹이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이의 성장이 아닌 인생 전반의 여정을 저절로 연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성인이 이 책을 읽으면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위의 문구가 훨씬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파올라 퀸타발레의 그림책 어떤 날은의 노란색 표지를 벗기면 같은 그림체이지만 고풍스러운 하드커버 표지가 나타난다. 마치 세상에 첫발을 갓 내디디는 어린아이의 샛노란 색부터 고풍스럽고 단아한 어른의 마음까지 다다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의 번역가들이 눈에 익어서 찾아보니 이전에 소개한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한 분들과 동일인이었다. 그 책을 포근하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어떤날은 #파올라퀸타발레 #미겔탕코 #문학동네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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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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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끔은 우주가 지금은 그런 것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듯 어떠한 종류의 책만 줄기차게 던져주는 시기가 있다. 요즘 내가 반드시 접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자주 SF 소설이 자주 들어온다. 그야말로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다고나 할까? 오늘 손에 잡은 책도 그 일환인데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긴 제목의 도서이다. 표지나 제목이 에세이처럼 느껴지지만 이 작품은 SF 철학 소설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는 SF 단편 소설집이다. 총 열다섯 개의 이야기가 모여 있으며 그중에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역노화와 포탈이다. 역노화는 읽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포탈은 내용에서 책의 제목을 따와 더욱 신경 써서 읽었는데 마지막 줄을 읽고는 다음 장으로 페이지가 선뜻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럼 두 작품의 줄거리와 읽고 난 후 생각을 나눠보자.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사람이 죽을 때에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그대로 죽든지 아니면 시간을 역순으로 돌리든지. 주인공의 아버지는 후자를 선택한다. 평소에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 왕래가 없던 하나뿐인 딸에게 이 소식이 전해진다. 내키지 않지만, 이를 대신해 줄 도우미를 구하는데 엄청난 금액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 우리가 80년을 살 때는 80년을 살아야 하지만, 역으로 갈 때는 단 며칠 만에 어린 아기로 돌아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주인공은 참기로 한다.



70대의 아버지, 60대의 그, 50대의 모습, 40대로 넘어오던 어느 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에 둘은 대화를 나눈다. 몸만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도 역순으로 간다는 대화. 즉, 마흔다섯 살에 딸을 낳은 그는 마흔네 살이 되면서 딸의 존재 자체가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순간 두려웠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멈추거나 되돌릴 방법을 찾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30대를 지나 10대에 이르렀을 때조차도 그에 대한 미움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한 주인공.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도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는 아빠에게 미움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기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무렵 그녀는 모든 것이 상관없다는 듯 그를 용서하겠다고 하며 그의 작음 몸을 안아 준다. 




현실에서는 작품 속 내용과 같은 역노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 알츠하이머류의 병을 대입할 수 있다. 어제의 부모님과 나의 관계와 오늘의 관계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더는 부모님에게 더는 자식이 아닐 수 있는 상황과 동일하다. 상대의 존재가 실존이 아니라 기억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주인공인 나는 여성이고 남자를 좋아하는 척하지만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는 남자이지만 남자를 좋아한다. 서로 큰 비밀을 공유하며 타인에게 이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열심히 도와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이들의 마을에는 포탈이 여기저기에서 꽤 많이 존재하는데 비선형적이다.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리는 경우가 있고, 눈을 씻고 찾으러 다녀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호기심에 손을 넣었다가 그 안에 있는 무엇인가에 잡아먹혀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생성만 비선형적인 게 아니라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주인공과 그녀의 친구는 포탈을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드디어 그곳으로 손을 넣어보기로 한다. 막상 손을 넣었더니 그곳에서 만져지는 건 자신들이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온 마을 곳곳에 나타나는 포탈은 우리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우주의 구멍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감정은 슬픔, 두려움, 소망, 수치심 등등 다양하며 이 모든 감정들이 포털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 포털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 손을 넣는 행위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들여다보겠다는 용기이다. 다만, 이때 담대한 마음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포탈에 잡아먹힌 인물처럼 자신의 감정에 빠져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주인공과 친구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관하여 타인을 속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인물들이다. 이제 이것을 숨기고 가리지 않기 위하여 드디어 한 발을 내디디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그렇다고 포탈 안을 들여다보고 용기를 얻어 바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하여 커밍아웃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며, 후폭풍이 있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이를 막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대성당의 레이먼드 카버가 환생하여 SF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우주나 시간 같은 큰 개념을 다루면서도 사랑, 상실, 기억, 용서 같은 카버적 테마를 우주적 스케일로 펼쳐 보이는 감정극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나 앤드루 포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역시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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