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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 요양원을 탈출한 엄마와 K-장녀의 우당탕 간병 분투기
유미 지음 / 샘터사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샘터에서 출간한 유미 작가의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라는 제목을 보면서 익숙한 유머 소설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다소 기시감이 들 수 있다. 나 역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기억하며, 혹시 그 패러디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 제목은 전혀 허구가 아닌 실제로 벌어진 일을 담담히 옮긴 것에 불과하다. 뇌종양 수술 후 요양원에 있던 엄마가 새벽 두 시, 맨발로 창문을 넘어 히치하이킹을 통해 집으로 도망쳐온 그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돌발 사건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저자의 엄마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후 사회로 뛰쳐나와 내도록 진취적으로 살아왔다. 운동화를 신으면 용기가 생긴다며 마라톤에 도전할 정도였으며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달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 녹즙 배달을 할 때에도 자신의 삶을 창피해하기 보다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가 상대방들이 꽤 인정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이런 삶을 살 것 같은 그녀에게 질병의 구름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유방암으로 시작한다. 이후 신우암, 폐암, 뇌종양에 이어 다시 폐암으로의 전이까지. 책의 내용은 첫 폐암까지 이겨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 환자 같은 행동을 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가족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여겨 엄마를 요양원에 입소시킨다. 주중에는 간병인이 돌보았고, 주말에는 딸이 내려갔지만 어머니는 갇혀 있다는 것에 더욱 난폭해진다. 주말에 요양원에 들른 딸의 눈에 반편이 마비가 되어 있는 것이 보여 뇌졸중인 줄 알고 병원에 급히 데려간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뇌종양이었다. 너무나 위험하여 일사천리로 상담까지 진행되어 수술을 받은 엄마. 그러나 수술 후유증 때문인지 뇌종양과 함께 치매까지 온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좋아지지 않는다. 불안, 공격성, 기억 장애가 섞인 변화는 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후폭풍이 몰아친다. 하룻밤에 전화가 30통 이상 올 정도로.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상태는 이제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수준에 이른다.

간병 에세이인 유미 작가의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단순히 노년과 병, 돌봄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돌봄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기를 끝없이 몰아붙이는 자식의 이야기다. 딸은 스스로 엄마를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에 맡기는 자체에 스스로를 책망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였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언니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쓴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엄마는 단 하나의 문장을 반복한다.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그 목소리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마지막을 결정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이자, 아무리 병들어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규에 가깝다. 그리고 작가도 단순히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의 헛소리가 아니라 엄마의 간절한 소망임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녀는 이젠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엄마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후 반전은 꽤 큰데 이건 책으로 직접 읽어보시길!

이 책은 누군가의 병든 몸이 회복되어가는 이야기라기 보다 그 병든 몸을 둘러싼 관계들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태로운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병과 함께 찾아오는 실질적 변화보다 그것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한계를 경험하는 가족의 감정이 더 섬세하게 다뤄진다. 딸은 내도록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만약 자신이 이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은 것을 해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책한다. 그리고 그 고민은 독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된다.

과연 지금 당장 나에게 저자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그녀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돌도 지나지 않은 자식이 있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그 결말이 희망이 아닌 절망이라면.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마지막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가? 다행스럽게 책 속에서는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였고, 그 결과 가족과의 이별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적인 부담까지 고려해야 하는 부담감을 책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삶의 시작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끝없이 희생하여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단순히 어느 특정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이 사회 속에서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단면을 날것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가족을 돌보는 고통의 한계선을 넘어선 어느 순부터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슬픔과 감동뿐만 아니라 저자가 던진 더 단단한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유미 작가의 간병 에세이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읽는 내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단 한 번도 드라마틱 하지 않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더 아프다. 끝까지 품을 수 없다는 죄책감과, 끝까지 품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고통받는 모든 자식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생각보다 허점이 많은 제도를 고발함과 동시에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저절로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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