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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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불완전한 인간. 어느 쪽이든 한 곳으로 치우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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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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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과학 소설이라고 하여 관심이 갔던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 작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후 지속적으로 과학 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소설로서의 과학이 무척 궁금하였다. 게다가 근래에 시간과 우주론 그리고 시뮬레이션에 관련된 양자물리학 책을 읽은 후여서 더 궁금하였다. 덕분에 생소한 분야에 발을 담가서인지 아는 만큼 많이 본다는 말을 이번 책만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책에 덧붙여진 닉네임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이다. 이 별명은 읽기 전부터 독자로 하여금 픽션과 논픽션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매우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책의 절반을 읽는 동안 어느 것이 허구인지 어느 것이 사실인지 전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등장인물과 사건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소설이 맞을까 하는 의문을 놓지 못할 정도로 허구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한 이세돌 편에 오면 드디어 어떤 것이 허구인지 감이 잡힌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의 필력에 의해 독자는 마구잡이로 휘둘리며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가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랄까. 쉽게 설명하면 우리나라 대하드라마와 비슷한 결이라고 보면 된다.



책의 처음은 꽤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기존 이론물리학자이며 네덜란드 레이덴대학교 이론물리학과 학장을 지낸 파울 에렌페스트가 양자물리학을 처음 접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삶을 포기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주인공은 자신이 아는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것을 오히려 인정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성적이라는 단어와 동급으로 취급하던 물리학에 논리적인 동시에 비이성적인 양자물리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양자물리학을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울 에렌페스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부부터 굉장히 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문장에 스쳐지는 과학자부터 비중 있게 등장하는 과학자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아인슈타인부터 들어보지도 못한 인물까지. 덕분에 읽으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열심히 검색하면서 읽어 지식의 층을 조금 더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SF 과학 영화나 SF 소설, 일반교양 과학 도서를 접해본 분이라면 읽으면서 이미지가 그려져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양자물리학의 등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조니 폰 노이만의 최초의 컴퓨터를 진화시켜 만든 매니악 얘기로 넘어오면서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 맨해튼 프로젝트 얘기로 넘어가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리처드 파인만이 등장한다.


"기폭 장치를 집어넣는 구멍들은 테이프로 덮여 있었는데, 흰색 테이프가 십자가 모양으로 붙어 있어 꼭 붕대 같았고, 결과적으로 폭탄의 생김새는 다쳤든지 두들겨맞았든지 해서 부서지기 직전에 겨우 꿰매 붙인 프랑켄슈타인의 작은 괴물 같았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151



글 중에 리처드 파인만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첫 원자폭탄 실험 때 폭탄을 보고 묘사한 것이다. 물론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아직도 구분이 안 간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위력을 생각하면 프랑켄슈타인의 작은 괴물이라는 표현이 너무 꼭 들어맞는 것 같아 이렇게 소개한다.



책의 대부분은 우리가 흔히 미래에서 온 남자로 부르는 조니 폰 노이만을 주변인이 본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작가가 노이만과 당대의 과학자들을 다 만나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니 꽤 많은 허구가 섞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계를 소설 안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다. 주변인들의 입을 빌려 소개된 노이만은 히틀러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통제광이었다. 무엇이든 본인이 이해해야만 했고 기술적으로 통제가 가능해야만 했던 노이만이었다. 심지어 생물학에도.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논리의 손길 바깥에서 우리가 길들일 수도, 써먹을 수도 없는 우연과 혼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생물학적 존재들은 정신없이 복잡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이해 못 할 리듬 안에 갇힌 채, 경이로운 무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 역시 그와 같은 조화로 형성되고 움직이다. 고통스럽지만 대다수가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진실이 나의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어떤 대상을 통제할 수 ㅇ벗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는 격분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대상이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247




여기서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만약 노이만과 히틀러가, 노이만과 스탈린이 손을 잡았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민주주의와 손을 잡은 노이만이었지만 그 결과는 딱히 독재자와 손잡은 것과 큰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인격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조니 폰 노이만은 천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는 심지어 현재의 AI, 그리고 앞으로 진화할 AI에 대해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알파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던 거다.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으니까. 이 승리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증거다. 시간이 지나면 AI를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승리······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p.390



이 책의 의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성향과 이들의 활약이 아니다. 과학의 발견과 발전으로 인해 인류가 현재에 다다른 AI 자체와 이것으로 인한 앞으로의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문제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마지막 얘기에서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의 인터뷰로 인하여 책은 다시 처음 양자물리학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파울 에렌페스트에게로 돌아간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여 진화하는 AI를 비롯하여 두려움을 가진 과학 분야를 어떻게 대하며 앞으로 어떻게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말이다.



"이번 경험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얻은 교훈으로 더 발전할 겁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인간이 창의적이라 생각했던 수들을 알파고가 관습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둑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하 생략."

매니악 벵하트 라바투트 p.396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은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조금 더 깊게 이해가 가능하며, 없더라도 이해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과학 소설이지만 작가는 과학적 내용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으로서의 철학에 대하여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AI가 인류를 역으로 공격하는 영화나 소설을 우리는 자주 접했다. 이제 이 문제가 단순히 화면 너머의, 종이 안의 활자로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님을 작가는 마지막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린다. 그러면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만 하여야 할까?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이다.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문학동네 #부커상후보작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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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 우주 - 우주론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앤드루 폰첸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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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나 천체물리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블랙홀, 코스믹 웹, 양자물리학, 양자컴퓨터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제로 검증이 어려운 부분이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식 추구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존재하지만 증명이 어려운 것이 합쳐져 많은 이들의 열정을 쏟아 넣게 만들고 있다. 상자 속 우주의 저자인 영국의 우주론 학자 앤드루 폰첸도 그들 중 하나이다.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우주론에 관련된 과학자들은 이론과학자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에 직접 가서 실험을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직접 가더라도 앞서 말한 우주의 95%를 구성하는 물질을 어떠한 도구로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가설을 먼저 세우고 시뮬레이션을 하여 거기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결괏값을 역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 이론과학자들인 것이다. 상자 속 우주는 이론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하여 관측과 가설 설정 그리고 시뮬레이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얻은 불확정한 우주론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을 최초로 적용한 분야가 바로 오늘의 날씨였다. 지금보다 기술이 뒤떨어져 모든 것을 인간의 손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던 그때의 기상 시뮬레이션은 예측이 적중한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지지부진하던 기상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과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합쳐져 마침내 눈에 띄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상학에서 시작하여 시뮬레이션이 우주 관측으로 도입되어 반전되는 과정을 하나씩 빌드 업하면서 독자를 우주론 깊숙이 끌고 가버린다. 독자는 알지 못하는 순간 이미 우리 은하계를 넘어 알 수 없는 우주를, 미시 세계에서만 적용된다는 양자컴퓨터의 세계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고 지능을 가진 로봇의 세계를, 시뮬레이션 가설 속을 헤엄치고 있다.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책의 난이도 빌드 업을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우주론자들이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가 나의 예상과 달라서 조금 놀랐다. 미래의 눈을 가지고 우주를 보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들은 별이 보낸 과거의 빛으로 우리 우주의 태초를 재현하는 것에 더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은 기술적 요소보다 인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며 우리를 현실로 데려다 놓는다. 책의 내용은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엄청 쉽지도 않았다. 아마 정규 교육을 받고 우주나 별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우주론에 관련된 책이지만, 의외로 기상학, 생명공학, 화학공학, 기술공학 분야에 대하여 두루두루 나와 많은 이들이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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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 아작 YA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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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지인이 읽는 것을 보고 제목이 독특하여 눈길을 끈 레이 브래드버리의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 소감을 듣는 순간 바로 주문해서 읽었을 정도로 호기심이 이는 책이었다. 책은 120여 페이지로 매우 얇은 편이고 이야기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 '페이지 터너'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머릿속을 꽤 복잡하게 만드는 책이어서 쉽지만 킬링 타임용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먼저 작가가 익숙하지 않아 잠시 살펴보자면 20세기 SF 문학의 입지를 주류 문학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라고 한다. 의미는 다르지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로켓맨'이라는 용어의 창시자라고 하며 장르 소설 작가로서는 최초로 전미도서재단 평생 공로상을 시작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모비딕의 각본 집필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분이시라고 하는데 일단 나는 이번 책으로 레이 브래드버리를 처음 만났다.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는 무려 66년 전의 작품이다. 사실 이 말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20년 전의 문화만 해도 고전물 같은데 66년 전이면 아무리 SF 장르물이더라도 시대적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경은 2349년이며 이미 화성을 점령하여 그곳에 사람이 살면서 개발까지 하고 있었다. 당장은 실현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세균 때문에 인간에게 해롭다고 선정하여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모두 소각하는 부분은 터무니없다기보다 실제로 먼 미래에는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더 몰입이 되었다.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남은 묘지의 철거 작업 도중 작업 시간이 다 되어 퇴근한 인부들이 아직 손대지 못한 관에서 시체가 좀비로 되살아나면서 시작이 된다. 이 책의 묘미는 스토리 자체보다 그 배경이지 않을까 한다. 2349년은 인간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범죄가 없어 경찰도 존재하지 않으며 불면증과 같은 질병도 없다. 게다가 인간을 좀먹는 분노, 두려움, 의심,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 자체와 상상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서 유일하게 문제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방금 깨어난 시체뿐이다. 즉, 모든 인간에게서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데 오히려 숨을 쉬지 않는 시체에서 인간의 냄새가 난달까.




상황은 매우 이상적이지만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있어 오히려 두려움을 야기하는 2349년의 지구. 읽으면서 조지 오웰의 1984처럼 강제적으로 인간을 감시하여 세뇌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아 등골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무덤에서 나온 주인공인  윌리엄 랜트리. 스스로 자신을 향해 "나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랜트리가 이 말을 할 때는 시공간을 초월한 단 하나의 존재라는 의미가 강해서인지 꽤 슬프게 다가왔다. 이런 랜트리가 동료를 만들기 위하여 사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2349년을 사는 인간들은 우리가 거장이라고 느끼는 애드거 앨러 포나 로드 던세이니나 앰브로즈 비어즈에 대한 판단을 보면서 두려움과 함께 의문점이 생겼다. 약 300년 후의 사람들이 우리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는 기원전 4~5천 년 전의 수메르 문명에 대하여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얇디얇으면서 술술 넘어가는 책 한 권을 읽고 하루 종일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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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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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의 구운몽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한글 소설로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간략한 줄거리나 시험을 위하여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를 제외하고 책의 전반적 스토리와 표현법을 아는 사람은 유명세에 비하여 매우 적지 않을까 한다. 영어 번역까지 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의 문학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여 선택한 책이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하여 읽을 가치는 세계 고전에 뒤지지 않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중국의 오악 중 남쪽의 형산 즉 남악에서 시작이 된다. 불가에 몸을 담고 있는 성진이라는 제자가 마음으로 품은 음욕이라는 죄로 인하여 스승이 이 죄와 관련된 성진과 8선녀를 모두 인간 세상에 보내는데 이 과정이 꽤 급박하게 흘러간다. 요즘 웹 소설에서 빙의물이 많이 나오는데 그처럼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현대의 빙의물 형식을 띄고 있다. 아마 웹 소설을 좀 읽어보신 분이나 판타지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스토리에 몰입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작가인 서포 김만중은 김장생의 증손자이면서 조선시대 19대 왕인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의 부친인 김만기의 친동생이다. 게다가 모친은 선조의 부마였던 윤신지의 손녀이다. 김만중 본인은 도승지, 대제학, 대사헌, 예조판서를 역임하였으니 대단한 집안인 만큼 적도 많았던 집안이어서 꽤 많은 유배를 다녔다. 구운몽은 이렇게 유배를 다니며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고 자기 자신의 처지를 위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뼛속까지 유교적 사상이 배어있는 사람이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글 소설이라는 것,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달리 남녀 간의 사이가 굉장히 자유분방하게 드러나있다는 것이 특색이다. 고전문학은 이런 개인적, 시대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조금 더 비판적이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당연하게 관련자 9인이 모두 인간 세상에 보내지는데 말 그대로 드래곤 볼이다. 그 넓은 중국 땅 어디에 있는지도 감도 잡지 못할 곳으로 모두 흩뿌려진다. 하지만, 이들은 인연으로 묶여 있는 이들. 당연하게 다시 만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조선시대스럽지 않아 더 의미가 있는 소설이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우리는 구운몽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아홉 구자에 구름 운, 그리고 꿈 몽. 여기의 아홉은 양소유과 8선녀를 말하며 구름은 덧없는 인생을, 몽은 말 그대로 꿈을 의미한다. 제목 자체가 너무 직관적이어서 대략 내용에 감이 올 것이다. 



일반적으로 책이 불교적 색채가 강하면 다른 종교의 색채는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운몽은 불교적 색채를 바탕에 깔고 가면서 도교와 유교에 민간 설화까지 모두 드러나 있어 이것들의 조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쓰인 시대가 조선이고 배경이 중국 당나라 시기이기에 중국인 인물과 지명 그리고 고어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이런 고어도 초반에 꼼꼼하게 검색하여 읽으면 후반은 수월하니 도전해 볼 만하다. 밉지 않은 조선판 예의 바르고 모든 능력 스탯이 최고치를 찍는 카사노바인 양소유와 대담무쌍한 능력자들인 8선녀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한 분, 이런 이야기가 왜 덧없다는 것으로 끝나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주가 꿈에 나비 되었다가 나비가 다시 장주가 되니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변하지 못했다.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뇨?"


구운몽 김만중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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