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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문기업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7월
평점 :





이 책을 고르게 된 결정적인 포인트는 책표지였다.
눈길을 끌게 하는 복잡하지만 단순한 일러스트의 향연.
또한 복잡하지 않은 컬러 감.
게다가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동경 예대의 천재들이라니....
일본 최고의 예술대학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들의 어떤 학부 생활을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냉큼 신청하게 된 책이다.
일단 저자를 보면 신기하게도 호러소설이나 오락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다. 그런 사람이 왜 동경 예대에 관한 이야기를 적게 되었나 싶었는데, 그 궁금증은 바로 해결되었다. 부인이 동경 예대 출신이란다...ㅎㅎㅎ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영향을 받은 거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 궁금증이 당연히 일었겠지 싶었다.
아내는 글 쓰는 남편 옆에서 예술을 하고 있었다. 여는 글부터 흥미로웠다.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 애정의 형태로 시작된 궁금증은 남편에게로 옮았던 걸까. 저자는 부인의 예술적 행위?에 동경 예대가 궁금해졌다 했다. 그는 그길로 동경 예대에 관해 조사를 시작했고,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나 또한 조형 예대를 나온지라(영상과 애니메이션 학부였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벌써 20년도 전 이야기지만... 당시에도 우리 학교에는 괴짜들 투성이었다. 그림 그리는 놈들, 영상미술 하는 놈들, 조형하는 놈들... 레게머리를 길게 늘어트렸다던가, 폭탄머리를 하고 다니거나, 갈기갈기 찢어지진 청바지를 그야말로 입고 x 걸치? 고 다니거나... 나 또한 당시 군복에 매력을 느껴서 카투사 복장을 하고 금발머리를 휘날리고 다녔다...ㅎㅎ 그때의 개성 넘치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그럴까 일본과 한국의 괴짜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읽는 내내 눈이 좀 아프긴 했는데(노안이라... 글씨 폰트가 무지막지하게 작았다!)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저자의 부인의 괴상한 과제 작업부터 시작해서 예대 학생들의 이야기까지. 보는 내내 웃었다.
캠퍼스를 양분하는 미술 캠과 음악 캠...의 모습이 생생히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와... 내가 학교 다닐 때 모습과 너무 흡사해서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나름 예술? 한다는 애들은 비슷하구나 싶었다. 또한 음악 캠의 모습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불현듯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가 떠올랐다. 음악 괴짜의 모습은 그런 거였을까 싶었다.
책을 순차적으로 읽다 보면 입시 이야기가 나온다. 뭐...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겠지만 동경 예대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홍대나 한국예술대학 정도 되는 곳이라 그런가 재수 삼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입시 때를 회상하면 나는 무척 느긋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은 미술학원 다니면서 치열하게 석고 데생을 할 때 나는 치열? 하게 만화를 그렸다. 만화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만화를 그리고 회지를 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입시 시험은 운 좋게 A4 한 장을 주고 그곳에 적힌 내용을 컷으로 구성해서 제출하라였다. 나는 신나서 컷 만화를 그려서 제출했다. 그때 제출하면서 느꼈다. 나는 분명 합격이다!
그리고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사실 만화과를 갔어야 했지만... 운명이 나를 이쪽으로 이끌었다. 애니과를 가서 약간 다른 방향으로 예술성? 을 뽐내게 되었다. 그래도 기본은 같다고... 학교생활은 그림+그림+영상+사진+음악 작업의 연속이었다. 밤새 작업을 하고 커다란 미술실 책상?에 누워 잠을 자는 일이 허다했다.
학교 외벽에 그라피티를 하고 어느 날은 설치 미술을 매달아 놓고 이름을 붙이고는 이 녀석이 언제까지 외부에서 잘 있는지 친구들과 내기도 했다.
피곤하면 잔디에 누워 친구들과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감독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를 꼽을 수 있다. 아마 저 시절에 평생 볼 영화는 다 본 듯하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동경 예대의 천재들은 내 학창 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였고 자연스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동경 예대는 음학 캠이 존재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는 것.
동경 예대의 천재들은 정말 줄줄줄 순식간에 읽혔다. 학생들의 인터뷰는 온갖 에피소드들이 쏟아지고 그의 중심엔 예술혼이 불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음악을 하고 싶다. 그 열정이 넘실거리는 게 다시 내 심장을 두들겼다.
그러던 중 예술을 대하는 마음에서 매우 뼈를 맞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라는 소회감.
중간중간 당혹스러운 인터뷰도 많았다. 가면 히어로 브래지어 우먼이 그랬다. 그걸 예술이라 보기에는 참으로 성진국스럽다고 할까. 그래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라는 그 굳건한 마음만은 인정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쁜 것을 탐미하는 굳건함이라니....
예쁜 엉덩이를 만져보고 싶다니 반은 이해가 되고... 반은... 그러다 철컹철컹할 걸...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젠더 디스 포리아이지만 매우 당당했고 그것을 하나의 작품 활동으로 승화해낸다.
그저 그 열정이 부럽기까지 하다. 아니, 질투가 났다.
사실 나도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밤새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그렇게 열정을 불태웠었는데 이제는 그 열정이 사그라진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피곤했고 그림으로 뭘 해야 할지 길을 잃었다.
분명 재능 있는 예술가 중 창의성과 열정은 분명 뛰어나지만, 진정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기술적 숙련을 넘어서, 내면 깊숙이 자리한 독창적인 시각과 통찰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
구체화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고, 끊임없는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정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런한 고뇌를 겪어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가가 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웃음)
지금은 그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간혹 작가 모임에 나가 수다를 떨고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종종 그림 수업을 다시 듣는 정도로 살아가고있다.
분명 예술이란 자신만의 독창적 표현으로 본질에 접근하고 진실성을 추구하는 길이겠지. 나는 그런 이들을 깊이 존경한다.
동경 예대의 천재들... 오래간만에 추억을 되찾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예대의 생활을 낱낱이 파헤치고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면 이 책은 매우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