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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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업실 책상 한구석에 이 책을 두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있다.


일러스트 작업을 하다 보면 종이의 평량이나 질감, 레이아웃에 유독 예민해지는 시기가 오는데, 이 책은 일단 첫인상부터가 반칙이다.


겉면을 감싸고 있는 캔버스 천의 그 서걱거리는 질감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든다. 마치 내가 거장의 작업실에서 갓 완성된 캔버스를 만지는 듯한 착각이 든달까. 


특히 그 거친 격자무늬 위로 툭 얹어진 고흐의 꽃 그림은 인쇄된 평면 그 이상의 입체감을 준다. 눈으로만 훑는 게 아니라 손으로 질감을 읽는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다.


표지의 묵직함을 지나 책장을 넘겨보면 편집 디자인에서도 고심한 흔적들이 뚝뚝 묻어난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책이 왜 '세계문화전집'의 첫 번째 얼굴인지 금방 알게 된다. 독일 헤르만 헤세 박물관과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이 협력해 만든 책이라 그런지, 도판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빈센트가 가족들에게 보낸 친필 편지 원문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종이의 바스락거리는 결까지 살아있어 그가 펜을 꾹꾹 눌러 쓰던 당시의 공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1933년 군터 뵈머가 작업했다는 헤세 소설의 삽화들도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거라는데, 대문호의 문장과 당대 삽화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보고 있으면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렇듯 도판들이 텍스트 사이사이에 배치된 비례를 보고 있으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큐레이션된 전시회 같다.


인쇄 퀄리티도 상당해서 친필 편지의 바스락거리는 종이 결이나 헤세가 노년에 그렸던 수채화의 맑은 농담이 뭉개짐 없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가끔 아이디어가 막혀 멍하니 있을 때,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여백과 색감을 보고 있으면 '아, 이런 식의 화면 구성도 있었지' 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그 먹먹함은 더 깊어진다.


헤세와 고흐, 이 두 사람의 삶을 '안부'라는 키워드로 엮어냈는데 그 서사가 참 기구하다.


둘 다 엄격한 신학자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내면의 지옥을 안고 살았다는 평행이론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결국 그들을 가른 건 세상에 건넨 안부의 방식이었다. 


고흐는 마지막 편지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났지만, 헤세는 수천 점의 수채화를 그리고 평생 4만 통 넘는 답장을 쓰며 끈질기게 세상과 연결되려 노력했다.


<반 고흐를 죽인 안부와 헤세를 살린 안부>라는 문장을 읽을 때는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특히 창작자로서 살다보면 그런날이 있지 않나. 눈에 무언가 꼿히는... 가장 마음이 머물렀던 지점은 헤세가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받던 시기에 붓을 들었다는 대목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 


화면 속 선 하나, 색 하나가 단순히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날에는 나 자신을 간신히 버티게 하는 유일한 생존 수단이자 안간힘일 때가 있다. 


헤세에게 수채화가 그랬듯, 나에게도 지금 그리는 이 그림들이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절박한 안부 인사라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해졌다.


이 책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비평서라기보다는, 창작의 고통을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는 묵직하고 따뜻한 위로 같다. 


캔버스 천이 주는 물리적인 무게감만큼이나 그 안에 담긴 문장과 도판들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디자인도, 메시지도 하나하나 소중해서 아마 한동안은 책꽂이가 아니라 내 손이 제일 잘 닿는 책상 가장자리에 계속 머물 것 같다. 


감각이 좀 무뎌졌다 싶을 때, 혹은 내가 왜 이 작업을 하고 있는지 길을 잃었을 때 다시 꺼내 보기 딱 좋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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