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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ㅣ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공민희 옮김, 양윤정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평점 :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한참을 표지만 바라봤다.
붉은색이다. 흔한 빨강이 아니다. 와인의 깊은 끝을 닮은, 오래된 벽지 같기도 하고, 과거의 서재에서 묵혀진 가죽 표지처럼도 느껴지는 붉은색이다. 마치 19세기 런던 귀족 도서관의 장서 같은 고전미를 뽑낸다.
그리고 그 위에 얇고 단정한 금빛 선이 사각 틀을 그리고 있다. 정중하면서도 과감하다.
가운데, 작은 원형 안엔 익숙한 장면 하나.
앨리스가 아기 돼지를 안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장면 중에서도 유독 기묘하고 상징적인 컷이라 할수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예쁜것을 넘어, 이작품의 정수인 기이함과 모순을 표지에서부터 느낄수 있다. 이 감각은 꽤나 절묘하다. ‘앨리스’라는 이름이 없이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직관적으로 느껴지니까.
이 책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디자인과 서사, 두 축에서 교차한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이 책은 아주 정제된 복각이다. 고전의 맥락을 알고 있는 이라면, 단숨에 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군더더기 없는 표지, 적당한 여백, 섬세한 삽화.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말이 적다’는 것이다.
요즘은 책들이 자꾸 말을 너무 많이 한다. 띠지를 두르고, 문구를 덧붙이고, 표지마저 "나 좀 봐줘" 하고 소리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무엇인지, 왜 만들어졌는지를 정확히 아는 표지다.
사이즈는 작지만, 그게 오히려 장점이다.
130에 190mm, 200그램도 안 되는 무게. 약 A5보다 작고 문고판보다는 살짝큰 사이즈는 한 손에 들어오고, 어디든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다.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듯, 앨리스의 세계를 주머니에 넣는 기분이랄까.
본문에는 존 테니얼의 삽화 42점이 원형 그대로 담겨 있다. 고전 삽화 특유의 묘사력과 기괴한 위트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디자인적으로도 표지의 삽화 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다. 이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물론, 몇 가지 단점도 있다.
이 표지는 지나치게 단아해서, 아이들이 보기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컬러풀한 삽화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전반적으로 톤이 너무 얌전하고 무채색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무채색’의 감정이야말로 앨리스다운 것 아닐까 싶다.
어른이 된 독자들이 예전의 환상을 다시 꺼내보기 딱 좋은 분위기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고전의 정신을 현대적인 손길로 재현한 복각본이다.
그 모습이 비록 평면적일수 있지만 충분히 아름다우며,
말 없는 디자인 속에 깊은 의도와 질감 있는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 자체로 충분히 품격 있고, 조용하고, 묘하게 끌리는 책.
손바닥만 한 붉은 문, 그 안에 이상한 나라가 고요히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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