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독한 외로움에 빨려 들어가다 못해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한때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생각보다 위험상황이라는 걸 캐치해야 한다. 그 뒤에 방아쇠가 당겨질지도 모르기에..... 저자는 결국 동생의 시신을 찾았고 그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는 계속 자살에 관한 책을 읽고 자살의 세계에 유령처럼 부유하고 다닌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한다.
왜?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은 어려운 길이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그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해하며 발버둥을 친다.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거다. 그 사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게 하고 사회적인 연결고리는 점점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고 외로움은 사람들이 사회적 지지와 교류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를 겪게 되며, 이러한 문제들은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일종의 사회문제이기도 한데, 비단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쟁과 스트레스가 매우 높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러한 감정을 눌러 참게 되고 이러한 감정들이 쌓이다 보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하지 않던가. 이는 특정 계층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내려앉은 풍조로까지 느껴진다. 10대의 수업 스트레스와 가정사로 인한 자살, 20대의 취업난과 삶의 의미를 잃은 자살, 최근에는 그래도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중년들의 자살까지.
상실감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사회에서 내쳐진 존재라는 막막함, 그 외로움의 끝이 막다른 길목이 그들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강물 아래, 동생에게》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무너졌다.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 동생과의 추억을 담담히 써 내려간 저자의 문장 중, <복잡하지 않은 시대의 복잡하지 않은 풍경>이라는 문구는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통렬한 슬픔을 드러나게 했다. 우리는 과연 서로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답게 순수했던 예전처럼, 사회적 연결고리가 강해지길 원한다. 서로를 지지하며 외로움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보호할 수 있길 소망한다.
추신. 울집 중딩이에게 보여주지 않는것으로 결정. 너무 감정이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