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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더 이상 과거처럼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꽉꽉 눌러담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정보는 네트워크 상에 존재한다. 우리는 네트워크 어딘가에 걸려있는 정보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다 쓰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그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들었고, 스마트폰은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풀어주었다. 기존의 뇌와 더불어 손 위에서 동작하는 두 번째 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바야흐로 '정보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정보화 시대는 인류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드높은 차원으로 세대를 인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빅뱅과 같다. 매일같이 새로운 정보가
폭발하고 있다. 앞으로는 폭발이 만들어낸 파편들을 누가 먼저 줍느냐, 누가 먼저 재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된다.
파편을 줍는 행위는 유용한 정보를 찾는
능력, 즉 검색 능력을 말한다. 적당한 키워드가 제시된다면 파편을 줍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작업은 '기존의 뇌' 없이 앞서
말한 '두 번째 뇌'만 가지고도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약간의 시간적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숙련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편을 재활용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아직 '두 번째 뇌'만 가지고는 할 수
없다. 주어진 정보를 모아서 창의적으로 재조합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그렇기에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는 작업 의도에
대한 유연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계산된 프로그래밍에 의해 이루어지는 동일성의 판단이 아닌,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사성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정보의 시대'에도
여전히 '기존의 뇌'가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기존의 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두 번째 뇌'의 성능이 제아무리 LTE 급에 옥타코어여도 의미가 없다. '두 번째 뇌'만 맹목적으로 의지해서는 오히려 기계화된
인간이 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시스템에 쉽게 휩쓸리고 쉽게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결국 '정보의 시대'의 실체는 다시 돌아온 '생각의
시대'인 것이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 그 자체를 나 몰라라 하는
느낌이다. 빨라지는 기기의 속도만큼 곰곰이 생각할 시간도 같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의 시대>의 저자인 김용규
씨가 우려하는 점도 바로 이와 같다. 모든 인간에게는 생각을 익숙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시대>는 말 그대로 생각에 대한 생각을 서술해 나가는 책이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서양 철학사라는
튼튼한 축을 기반으로 촘촘하게 직조해 나간다.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등 반가운 이름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의 업적을 단순 나열하고 있는 다른 인문서들과 이 책을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방대한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읽히기도 한다. 생각의 구축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책의 내용처럼, 이미지화, 이야기화가 잘 되어 있는 김용규 씨의 문장은 독자의 개념 구축에
큰 도움을 준다. 읽는 재미마저 쏠쏠하다. 역사서로 보아도, 철학서로 보아도 모두 대단하다. 그야말로 '김용규 스타일'의 총망라인
것이다.
뭔가 아쉬우니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그래. 영화는 아니지만 스포일러를 조금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의 시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쪼개어 볼 수 있다. 전반부인
1,2부에서는 '생각'이라는 개념이 인류에게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고, 후반부인 3부 '생각의 도구'에서는 '생각'이라는 개념을 이루고 있는 5가지 필수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부도 무척이나 흥미롭지만 역시나 후반부인 3부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5가지 필수 요소는 하나씩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메타포라(metaphora)
- 은유
아르케(arche) -
원리
로고스(logos) -
문장
아리스모스(arithmos)
- 수
레토리케(rhetorike)
- 수사
원어로만 읽어보면 어딘지 낯설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각각을 한국어 표현으로 다시 읽어보면 역시 수긍이 간다. 재밌는 것은 '생각'을 이루는 이 5가지
요소들이 모두 '언어'로부터 나왔다는 것이고, 하나의 요소는 완성된 또 다른 요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구축하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Manner Maketh Man' 이전에 '언어 Maketh
Man'이었던 것이다! 이는 자기계발적인 측면뿐 아니라 자녀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한 가지 깨우침을 주는 포인트다.(3부에서는 각 장마다 언어를
활용하는 다양한 훈련법을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사실 그렇다. 5가지 요소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추상화하여 의식하지 못 했을 뿐이다. 과거로부터 저자가 끄집어낸 개념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필수적인 요소로 사용되고 있던 것들이다. 우리 인간의 시대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5가지 요소들의 가치는 변치 않을
것이다. 영원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다이아몬드 회사가 그렇게 이야기했고, <향연>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바야흐로 다시 <생각의 시대>다. 우리는 오늘도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한다. 생각 없이 저절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