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카드
마이클 돕스 지음, 김시현 옮김 / 푸른숲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치란 무엇인가? 한자의 음과 국어사전에 있는 그대로 풀어쓰면 정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정치 政治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진짜로 저게 맞는 의미인가? 그런가?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늘상 보는 문구인 "모니터에 따라 실제 색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라든지 아니면 "위 사진은 연출된 이미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처럼, 명사의 의미가 현실세계로 뛰쳐나오는 경우에도 간혹 실제와는 다른 형태를 보이기도 하나보다. 배송 전까지는 온갖 미사여구와 할인쿠폰, 프로모션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결제가 끝난 바로 그 시점부터 관계는 역전된다. 택배가 어느 곳에 짱박혀 있든 제품에 무슨 하자가 있든 마음 졸이는 것은 쇼핑몰이 아닌 소비자다. 정치판도 그렇다. 어쩜 이리 빼닮았는지 그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도 딱 선거까지. 공약은 보통 과대 광고다. 매니페스토를 제대로 이행하는 정치인들이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다. 그러니 국민은 늘 진정성을 운운한다. 이들에 비하면 애초부터 난 '이렇게 비싸게 팔 거야'하고 팔아제끼는 장미인애의 '로즈인러브'나 조민아의 '우주여신 베이커리'가 훨씬 떳떳하다. 최소한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판단을 소비자에게 맡길뿐. 제발 사주십사 굽신거리지는 않는 모양이니 말이다.

아무튼 현실로 튀어나온 정치가 그러하다. 선거가 가장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다. 출판사 스스로 본격 정치스릴러라 일컫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도 정책이나 안건을 둘러싼 이야기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지만, 정치가 원래 그런 거라니 그러려니 한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초중고 시절을 통틀어 8번의 반장과 3번의 부반장 2번의 미화부장을 역임했던 화려한 현실 정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설사 그런 수준이 아니라 해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독자들이라면 적어도 줄반장이나 하다못해 조별 과제 조장 한 번쯤은 맡아 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굳이 허지웅, 마키아벨리,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들먹이면서까지 장르에 대해 부연 설명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동명의 미드는 또 얼마나 소문이 자자한가.

물론 미드의 명성에 비하면 원작인 소설은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FU(프랜시스 어카트)가 총리직에 오르기까지 어떻게 상대들을 무너뜨리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읽다 보면 "상대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과 "그래서 우리는 FU라는 냉혈한을 단지 악인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처세의 매뉴얼처럼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마저도 너무 순진한 질문이다. 그만큼 사회가 각박하다. 배경이 영국 국회일 뿐. 이미 막장 드라마와 막장 정부, 네거티브에 친숙한 우리에게 <하우스 오브 카드>로부터 오는 이질감은 전혀 없다. 조금 옛날 소설이라 그런가? 영국이라 그런가? 신사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것이 FU의 설계대로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것도 조금 아쉬웠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영화 <타짜>의 명대사를 빌려 "쫄리면 뒈지시던가!"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와 <타짜>의 온도차는 사뭇 다르다. <타짜>에서 이 대사가 극적인 이유는 타짜가 또 다른 타짜에게 던지는 대사였기 때문이다.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는 같은 대사를 한 명의 타짜가 다수의 호구들에게 윽박지르고 있다. 호구들은 "예림이 그 패 봐봐." 정도의 대사나 칠 줄 알지. 타짜인 FU 앞에서 모두 다 쫄려서 잽싸게 뒈져버릴 뿐이다. 역시 조금 더 강력한 자극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신문의 정치면이나 여의도를 주제로 하는 팟캐스트에게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듯하다. 말 그대로 쫄리면 뒈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