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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꿈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1996년 6월 19일 새벽, 조그만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신 씨, 작가이자 창조의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동경 대학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꿈이었다. 소나기가 종종 내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날은 창밖에 비 대신 피가 내렸다. 바닥이 온통 붉고 비릿했다. 다른 학생들은 없었고 피케 티를 걸친 젊은 남자 교수와 그녀 오직 둘 뿐이었다. 교수의 허리춤에는 벨트 대신 칼집이 묶여 있었지만 칼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강의는 일본어로 진행됐다. 드문드문 알아듣긴 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따분하다고 신 씨는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성실한 그녀의 태도에 교수도 기분이 우쭐해 보였다. 교수는 그녀에게 수업은 교단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며 따라오라 했다. 우산을 쓰고 있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교수와 그녀는 거리를 거닐었다. 교수는 그녀의 걸음 속도를 고려하지 않았고, 미처 나막신을 준비하지 못한 그녀의 발은 붉게 물들었다. 도착한 곳은 어느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주택가였다. 인적이 드물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교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교수는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긴 침묵이 이어졌을까? 교수가 문득 허름해 보이는 한 주택의 창을 가리켰다. 그녀가 다가가보니 아무렇게나 대충 쳐진 커튼 틈새로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교수를 돌아봤지만, 교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두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얼굴도 점차 상기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첫날이었다. 신 씨와 교수는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 땅거미가 질 때쯤 이 골목에서 다시 만났고 교대로 창 안쪽을 훔쳐보았다.
두 남녀는 모두 실로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몸짓은 격렬하였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자는 하루의 고단함을 채 씻어내리기도 전에 그녀를 쓰러뜨리고는 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이제 교수는 더 이상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교수는 사무실 앞에서 자신의 배를 칼로 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한 달이 더 흘러갔다. 그러니까 첫날로부터 두 달이 지났을까?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남자는 누구보다 그 변화를 기뻐하고 있었다. 물론 관찰자 신 씨에게도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저 격렬하게만 보이던 남녀의 몸짓에서 아름다운 문장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다 됐다. 이제 이 문장들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급하게 가방을 뒤적여 펜과 공책을 꺼내어든 그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그녀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알람이었다. 개꿈이었나...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찌뿌둥한 어깨를 두들기며 책상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러 갔다. 그리고 그녀가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정말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니터에는 그녀가 고민 끝에 적지 못 했던 문장들이 너무나 완벽한 형태를 갖춘 채 적혀 있었다. 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하고 말이다.
PS,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위 글의 신 씨는 절대로 신경숙 작가가 아님을 밝혀 둡니다. 저는 그분을 잘 모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은 읽었지만, 그 외 다른 작품들은 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감상은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 <꿈의 꿈>을 읽고 흉내낸 유치한 글일 뿐입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