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유혹의 기술 -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유혹했을까
오정호 지음, EBS MEDIA 기획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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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 와쵸네임. 나의 존잴 모르기에 너희가 느끼는 공포감~!" - <거북선> 中 자메즈

 

이 가사는 따라 부를 때마다 입에 착착 붙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올여름 등장했던 힙합곡 중 최고의 도입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 많은 사람들이 오빠차를 뽑으러 가는 지금까지도 이러한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지난 주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쇼미더머니4가 막을 내렸다. 사실 나는 자메즈가 떨어진 에피소드 이후 본방을 챙겨보지는 않았다. 대신 금요일 밤이면 쌓아뒀던 볼라뇨를 한 토막씩 꺼내 읽었다. 역시나 볼라뇨는 그럴싸한 대체재가 되었다. 이따금 랩을 하는 MC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쇼미더머니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본방이 끝나면 온 미디어가 쇼미더머니를 이야기했다. SNS, 뉴스, 라디오 등 내 귀와 눈이 닿는 곳에는 늘 쇼미더머니가 있었다. 방송을 안 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용을 줄줄 꿰고 있었다. 준결승 라운드에서는 어차피 우승이라는 송민호 대신 블랙넛을 응원하고 있었고, 결승 라운드를 앞두고는 베이식의 우승을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었으니 말 다 했다. 지난 시즌들에 비해 라인업이 많이 가벼워졌고 매라운드 운영도 매끄럽지 않았던 시즌 4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이쯤 되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가 아니라 '어차피 우승은 쇼미더머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이라는 수사는 오히려 찬사가 되었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유혹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고, 그것은 곧 돈으로 이어진다. 엠넷의 능숙한 제작진들이 또 한번 해낸 것이다.

 

 

"필요에 따라 있는 것을 대중을 유혹하는 사람들은 있던 것도 없애고 없던 것도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요술도 마술도 아닌 하나의 기술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 42p

 

 

<대중 유혹의 기술>, 이 책을 받아들고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프로파간다>였다. 현대적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PR을 PR하기 위해 썼던 그 책. PR을 통해 모든 대중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프로파간다>의 주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우리는 매순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프로파간다>가 에센셜이라면, <대중 유혹의 기술>은 그 에센셜에 대한 한국적인 해석이자, 현대적인 사례 모음집이다. 허니버터칩, 레드불, 무한도전 등의 한국 독자에게 친근한 사례들이 요소마다 등장한다. 앞서 말한 쇼미더머니도 훌륭한 사례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빠져있다. 기삿거리가 다 떨어진 어느 기자가 <쇼미더머니는 어떻게 강한 프로그램이 되었나?>라는 칼럼을 쓴다 하면, 이 책에 실린 목차를 그대로 가져다가 써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것이 그냥 캡쳐 몇장 떠서 올리는 기사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목차는 다음과 같다.

 

 

0.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유혹했을까?

1. 볼거리가 최고다.

2. 입소문을 퍼뜨려라.

3. 그들의 귀에 드라마를 집어넣어라.

4. 공포와 분노가 더 빠르다.

5. 대중의 아이콘을 만들어라.

6. 대중은 진짜를 봐도 믿지 않을 것이다.

7. 대중의 무의식을 발견하라.

 

 

늘 스웩만을 외치던 참가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노래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 논란이 될 장면임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방송에 내보내는 순간들, SNS와 뉴스를 통해 일베충 또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쌓아놓고 의도적으로 악역을 만들어내던 미디어. 관객석의 특정 미녀들만 매번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등. 어떠한가? 각 항목마다 연관되는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떠올리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확실히 <쇼미더머니>와 <대중 유혹의 기술>간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아마 버네이즈가 살아있었더라면 엠넷에 박수라도 쳐주지 않았을까? 썩 괜찮은 PR이었다고 말이다. 책을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읽는 게 귀찮다면 조만간 E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한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진 않을 테고.

 

100% 리얼을 표방하는 그 어떤 것도 100% 리얼은 없다. 보이지 않는 의도가 숨어있다. 정치도, 블로그 서평도, 때로는 교육까지도... 이제 보니 내게 소개팅을 주선해주던 친구들도 늘 그래왔다. 결국 우리에게 스며드는 모든 것은 편집을 거친다. PR을 행하는 자들은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이 모두 PR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다. SNS와 촬영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은 PR에 속도감마저 붙고 있다.

 

대중들은 PR의 존재를 모르기에 막연하게 느껴지는 공포감을 안고 살아간다. PR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기서 다시 반대로 생각해보자.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어도, 총이 내 손에 있다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큰 틀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내가 적응해야 한다. 책을 읽고서 업무나 실생활에 PR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본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사무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히 PR이 필요하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당하지 말고 내가 먼저. <대중 유혹의 기술>은 에필로그에서 착한 프로파간다와 좋은 대중을 꿈꾼다며 마무리한다지만... 과연 착한 프로파간다라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화려한 사례집에 비해 그 끝맺음이 조금 진부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도 따지고 보면 PR, 바이럴 마케팅의 일환이겠죠. 목차로는 2번 '입소문을 퍼뜨려라'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시카고 한 지역에서만, 그것도 일부 학교에서 시크한 소수의 아이들을 이용해 제품을 전파시키는 작전은 최근 애플이 신형 아이폰을 국가별로 시차를 두어 시판하는 전략과 동일하다. 입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들보다 먼저 사용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떠들어댈 수밖에 없다." - 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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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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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서평가, 내가 즐겨 찾는 한 유명 블로거의 포스트 아래 얼마 전부터 이 같은 해시태그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각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독서량,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읽기 쉬운 문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댓글과 공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붙인 해시태그에는 타당성이 있다. 그저 웃고 즐기자고 붙인 태그가 아니었다. 지금은 스스로 태그를 달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이 나서서 그를 그렇게 부를 것이다. 반복된 노출의 힘은 언제나 강력하다.

 

사실 그 블로거만이 아니다. '서평 잘 쓰는 블로거'들은 진짜 많다.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들만 봐도 그렇다. 좀처럼 그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내 깜냥에는 과분한 일이지만, 문득 나는 그들 중에서 과연 몇 등이나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이 블로그도 서평 블로그에 해당하니 말이다. 일단 글로 밥을 벌어먹고사는 프로들은 경쟁상대에서 제외. 내가 가장 잘 쓴 서평들을 보내 호날두(혹은 메시)들과 싸움을 붙이는 것은 모양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무대를 인터넷 서점 정도로 좁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의 서점들. 이들의 공통점은 나름 그럴싸한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나 월단위로 우수 서평을 뽑아 적립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교보문고는 초대형 서점이지만 우수 서평에 대한 시상이 빈약해 제외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서평을 꾸준히 쓰는 블로거라면 대다수가 인터넷 서점들로 자신의 글을 나르고 있을 거라고 본다. 적게는 1,2곳 많게는 저 4곳 모두에 말이다. 서평 블로거는 계속 읽을 책이 필요하고, 각 서점은 소비자들을 솔깃하게 할 서평이 필요하다. 운이 좋으면 날려보낸 서평들이 적립금을 물고 돌아와 한 달치 책값을 충당해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이라도 우수 서평 선정의 맛을 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서점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일단 나부터가 그랬다. 처음은 쿤데라의 <우스운 사랑들> 서평이었다. 나의 글이 금주의 우수 서평으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게 된 그 날. 나는 곧바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고 지인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러러만 보던 파워블로거가 멀지 않아 보였다. 몰래 구독하던 우상들의 닉네임이 나의 닉네임과 같은 화면에 나열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낀 희열은 실로 대단했다. 심지어 우상들 중 친절한 몇몇은 나의 글을 읽고 나서 댓글로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센시니는 … 얼마 전에 내 글을 읽어봤는데 <일급 단편>이자 수준 높은 글이라 생각한다며(나는 아직도 편지의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계속해서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이해했던 것처럼 글쓰기에 정진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모전에 정진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도 그러겠노라고 다짐까지 하는 것이었다." - 18 ~ 19p

 

 

볼라뇨의 단편 <센시니>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후 블로그 이웃이 된 나의 센시니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이쪽(?) 세계를 안내해줬다. 서평은 작성하면 블로그에 썩히지 말고 서점들로 퍼 나를 것, 메이저 출판사의 주목받는 신간들을 놓치지 말 것, 때로는 흠을 내서라도 날카롭게 비난할 것, 감정은 풍부하게, 감탄사는 아끼지 말 것 등. 센시니들은 출판 관계자를 사로잡는 서평 쓰기 스킬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해냈다. 실제로 그들은 그 방식대로 자신들의 닉네임을 꾸준히 서점 사이트 위에 새겼다. 나도 몇 가지는 내 것으로 만들었지만 대다수는 내 스타일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 다른 무엇보다 솔직함을 버려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쓰는 서평 쓰기는 스스로에게 구토를 유발한다.

 

어쨌든 계속해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다.(서평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상이라고 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차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평을 쓰고 나면 이 서평이 적립금을 물어올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감이 온다. 요즘에는 거의 75% 정도는 적중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 글을 뽑아주는 서점 관계자들 덕분에 책값이 바닥나지는 않는다. 그건 참 다행이다. SNS에 자랑은 그만 하기로 한다.

 

다시 '나는 몇 등일까'로 돌아가 보자. 무대를 인터넷 서점으로 한정하고, 점수의 기준은 리뷰로 인해 얻는 적립금으로 산정해보면 어떨까? 신성한 독서 활동을 이런 식으로 줄 세운다 치면 속상할 분들도 많겠지만, 그리고 이 같은 산정 기준이 무척이나 세속적인 것도 다 인정하지만, 그냥 재미로 본다 치고 너그럽게 눈 감아 주시길 바란다. 실은 그 세속적인 면이 이 랭킹의 핵심이다. 랭킹의 이름도 소설 속 공모전 마스터인 작가 센시니의 이름을 따 '센시니 랭킹'으로 혼자 결정했다. 2015년 1월부터 지금까지의 수상작들을 조사하면 대략 자료가 나올 것이다. 기간이 너무 짧아 자료의 신뢰도가 낮다 하면, 조금 무리해서 최근 2년 정도까지는 취합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할 일이 없는 어느 주말 밤에 혼자 랭킹을 매겨볼 계획이다. 자료가 나와도 대놓고 공개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혹여나 자신의 랭킹이 궁금한 분들이 있다면 각 개인에게만 따로 공개를 하던지... 미리 예상해보자면 아마 나는 한 공동 150위권쯤에 있지 않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글은 어느 서점에서도 우수 리뷰로 뽑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에는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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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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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2

생각보다 긴 호흡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집어 든지도 열흘이 다 되었지만 아직 1권이다. 표지 속 소녀의 눈빛과 지하철에서 이 책을 들고 있는 나의 눈빛이 닮아간다. 역시 무턱대고 지원해버린 카페 서평단 때문일까? 진정 책은 내 돈 주고 사서 읽는 게 가장 속이 편하단 말인가?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생말로의 1944년, 하우프트만의 실험실에서 테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베르너의 삼각함수 공식이 1940년, 다시 또 마 셰리와 마네크, 에티엔의 잔잔한 일상이 1940년. 이야기는 계속해서 장면을 바꿔갈 뿐. 쉽사리 동력이 붙지 않는다. 명성이 자자한 보석 '불꽃의 바다'를 찾아 나선 남자 본부 원사 룸펠처럼, 나 역시도 명성이 자자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소설적 가치만을 찾아 덤비고 있기는 한데... 그의 인내심이 내게도 절실한 순간이다.

2009년 10월

상병이다. 맡고 있는 보직은 땅굴탐지병. 북한의 땅굴 공사 징후가 의심된다는 지역으로 파견을 나온 지도 어느덧 2주째. 감지되는 소리는 센서 주변을 나들이하는 고라니 가족의 두둑두둑 거리는 발굽 소리와, 계절의 변화로 이따금 청취되는 땅의 진동, 지하수의 꿈틀댐이 전부이다. 제보자들의 증언과는 달리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자 제보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들은 점호하고, 작업하고, 경계 근무에 나선다. 오직 나와 내 후임병 단둘만이 이 동네의 지하 세계에 집중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다는 일은 지루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은 종종 사람의 마음에서 이유 없이 증폭되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기도 한다. 쉽게 흔들리는 사람은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참고 집중하고 또 참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닿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장비는 사람을 거들 뿐이다. 파견은 내일까지다. 오늘 밤엔 다시 중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직 다 읽지 못한 <트와일라잇>하고, 부식으로 받은 빠다코코넛은 침상 옆자리 이등병 아저씨한테 그냥 주고 가자.

 

 

2015년 8월 16일

다행히 2권부터는 소년과 소녀의 시공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확실히 속도가 붙는다. 소녀 쪽의 문장이나 배경은 여전히 파스텔 톤이다. 레지스탕스의 모습마저 동화처럼 느껴진다. 모든 전쟁이 이렇게만 그려진다면 과연 누가 전쟁을 두려워할까 싶기도 하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확실히 소년 쪽의 이야기다. 라디오가, 과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베르너의 인생을 끌고 간다. 간단한 삼각법(?)과 수신 감도를 통해 프랑스인들을 찾아내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군 시절 나는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베르너는 촉이 오는 족족 전파의 근원지를 잡아냈다. 베르너가 찾고, 폴크하이머가 처리한다. 소년은 본인이 알게 모르게 어느새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긴 여운으로 남는 이름. 프레데리크...

2013년 9월

 

나는 손님이고 그는 아르바이트생이다. 퇴근길에 들린 금광동 세븐일레븐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봤던 고1 때 이후 살이 찐 건 그나 나나 둘 다 마찬가지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낀다. 알아본 건 나 혼자뿐인가? 아니면 그는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일까? 작은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결제하면서 나는 명찰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확실히 내 친구와 동일인물이다. 바코드를 찍는 삑 소리와 함께 영수증을 받을 거냐고 그가 물어본다. 나는 버려달라 말한다. 그리고 편의점을 나선다. 인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는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당시 <야인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안재모를 재모 형이라 불렀고, 예슬 누나와는 종종 피자를 먹는 사이라고 했다. <아라곤>이라는 단막극에 출연했다고 했고, 자신은 연기를 해야 하는 몸이라 학교에 자주 나올 수가 없다 말했다. 그가 안다는 형, 누나가 점점 늘어나고, 출연했다는 단막극의 제목이 하나 둘 늘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갈수록 증명을 원했다.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말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물증을 내놓지 못하는 그에게 친구들은 돌아서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는 '따'가 되었다. 나는 반장이자 몇 안되는 그의 친구였다. 그가 자퇴를 결심했던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한 거냐고? 그냥 적당히 인정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그가 답했었다. "나는 진짜로 연기자의 삶을 살고 있어. 내가 학교를 떠나는 건 공부보다 연기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야. 나중에 니들 다 후회할 거야." 떠나던 날에 그는 나에게 오만 원을 빌려 갔다. 분명 한 달 내로 갚겠다면서 빌려 갔다. 그리고서는 연락이 끊어졌다.

2015년 8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맞아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들고 갔다는 기사가 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들고 갔었다고 한다. 대통령들이 챙겨간 책들은 머지않아 날개 돋친 것처럼 팔려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여름휴가 때 무슨 책을 들고 떠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이미 지난 6월에 휴가를 다녀왔다는 사실만 다시 깨닫는다. 적어도 앞서 말한 그 두 권은 안 들고 갔을 텐데 말이다.

2015년 8월 22일

 

두 주인공의 아련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써야 할까? 전쟁의 참혹함에 초점을 맞추고 써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라디오를 구성하는 각 부품들이나, 앰프, 트랜지스터, 오실레이션에 대해서 써볼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감상을 쓰지 말까? 내가 이 책을 읽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 것도 아니고, 어차피 출판사 카페에 명시된 서평 마감일이 지난 것도 오래 전인데? 이런저런 생각들만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던 '몇 가지'에 대해 끄적거려 보기로 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아마 다른 출판사나 서점들은 나를 서평단 명단에서 애초에 제외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만.

2014년 10월

 

한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대박이라며 보내온 사진 속 남자는 연기자 하겠다며 학교를 때려치운 그 녀석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늙어 보이는 남자 역할로 출연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이다. 그 녀석의 옆에는 국민 MC 유재석도 보인다. 드디어 친구들과 나는 확인했다. 평생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말이다. 어쩌면 오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 8월 22일 오후 9시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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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즐기는 1% 금리
김광기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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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까지 1억을 모으자는 목표가 있다. 2013년 입사 초기에 설정한 목표다. 올해로 스물여덟이 되었으니, 이제 약 2년 정도 남아있는 셈이다. 내 어린 시절과 달리 요즘의 1억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은 아니다. 회사 근처 위치한 아주 작은 원룸 한 채의 전세금이 7, 8천 정도인걸 감안하면 대충 체감이 된다. 1억이란 목표 금액은 결혼을 위한 최소 자금을 모으자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그만큼 녹록지 않다. 빈익빈 부익부의 가속화 때문일까? 모으는 것은 어렵지만 돈을 쓰는 것은 너무 쉽다. 월급은 그대로지만 해가 계속 지나갈수록 지출은 늘어나고 있다. 갈길이 멀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인 <거꾸로 즐기는 1% 금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금리 또한 바닥을 치고 있다. 미국이 조만간 금리 인상을 추진하려 한다는 예측이 얼마 전까지도 팽배했지만, 며칠 전 중국의 환율 조정으로 인해 변수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는 더욱 장기화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 인구 절벽, 산업구조의 변화는 이를 뒷받침한다. 책에서 말하는 뉴노멀이다. 노멀의 기준이 바뀌었으니 우리도 이에 임하는 자세를 고쳐 잡아야 한다. 최악은 디플레이션의 시대를 맛보는 것이다.

정말 실질적인 문제다. 지금까지의 내 저축 전략은 적금과 청약통장, CMA 통장뿐이었다. 그나마 적금이 내년까지 4% 후반대의 이율을 유지해줄 것이라는 게 위안이 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적금이 만기가 되고 나면 그다음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아직 없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이와 같았다. 책을 읽고서 투자를 할까 말까 하는 상황이 아닌, 뭐가 됐든 조금씩 돈을 굴려볼 연습을 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집어 들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나도 돈을 쌓아두면 그만인 줄 알았다. 차곡차곡 쌓아서 서른이 되면 통장 속 숫자 1억을 확인하는 것. 이러한 나의 재테크 관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낸 것은 회사 선배와의 이야기 한 토막이었다. 선배는 같은 1억을 모으더라도 서른에 결혼하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돈 1억 대신, 계속해서 순환하고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1억을 모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은행'이라는 존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어왔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돈을 쌓아두기만 하는 은행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객의 돈으로 투자 및 대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거기서 이익을 발생시킨다. 돈을 빌려준 고객에게는 쥐꼬리만한 이자를 보상으로 주고 생색을 낸다. 우리 개개인도 하나의 은행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머물러 있을 때는 큰 의미가 없다. 마치 피와 같다. 오히려 썩는다. 순환하며 계속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투자라 부른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 투자를 배제한 재테크로는 결코 부자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다. 끝. 평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었지만, 이번처럼 귀가 번쩍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게도 관점의 변화가 문득 다가온 것이다.

목표가 명확하다 보니, 책을 읽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거꾸로 즐기는 1% 금리>의 전반부인 1,2부에서는 저금리 시대가 뉴노멀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입문자에게 좋은 책들이 늘 그렇듯, 설득력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인 투자방법에 대한 서술은 3부부터 5부까지의 분량에서 담고 있다. <거꾸로 즐기는 1% 금리>의 부제인 <5% 수익내기 실전투자>와 같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 전략을 소개한다. 저금리 시대에서의 세테크와 주식, 펀드, 부동산 투자 등 각 분야에 대해서 상세하게 짚어보고 있다. 재테크 초보여서 그런지 밑줄 그을 만한 부분들이 참 많았다. 시세차익보다는 자산 그 자체의 가치나 현금 창출성에 주목하라는 부분. 국내가 여의치 않으면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라는 부분들, 특히 G2로 꼽히는 미국과 중국에 주목하라던 부분이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다.(하지만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의 중국은 왠지 위험해 보인다.) 당장 가입해도 좋을 펀드 12선을 추천한 것도 눈여겨볼 만 하다.(물론 이것도 2015년 3월 기준이니 참고만 하자.) 끝으로 6부에서는 은퇴 계층과 2030계층으로 나눠 장기적 투자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내게 해당하는 '2030세대 불평 말고 준비하자'를 읽고 남는 것은 역시나 '공부하고 절약하라'는 저자의 일갈이다. 바른 말에서는 항상 쓴맛이 느껴진다.

​뭐가 되었든 계속하면 는다. 주관이 있으면 더욱 빨리 는다. 운동도, 독서도, 게임도 다 그렇다. 지난주에는 소액이긴 하지만 주식을 조금 샀다. 앞으로는 월급에서 조금씩이라도 주식과 펀드에 투자를 할 생각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서른까지 1억을 모은다는 것, 그 1억이 단순한 1억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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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시대 -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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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도 꽤나 오래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브루스 리의 복색을 한 전현무 씨를 마주치고, IT 기기에 문외한인 내 친구 김기자는 요즘 들어 연신 샤오미의 쾌적함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생활비가 모자라 짜왕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지만, 'Mi'가 붙은 제품들의 구매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카드를 긁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이라는 존재는 수면 위를 넘어서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끼어들고 있다. 앞서 나온 예시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보라 해도 거뜬히 몇줄 더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주제를 조금만 틀어보자. 현재의 중국 그 국가의 실체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음... 엄청나게 스케일이 크다는 것 빼고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중국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콜럼버스에게는 찾아 나설 미지의 대륙 인도가 있었다면, 내게는 중국이 미지의 대륙이었던 셈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을 비하했고, 또 때로는 중국을 대단하다 치켜세웠다. 하다못해 소개팅을 주선하더라도 양쪽 남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 정도는 훑어보는 나이거늘, 중국이라는 그 큰 대륙의 타임라인은 틈틈이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SNS에 올라와 있는 프로필 사진 한 장만으로도 우리는 호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는 있다. 처음 봐도 나도 모르게 눌러보는 사람이 있고, 매일 봐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책의 표지도 이러한 프로필 사진과 비슷한 면이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신간들 사이에서 내가 <야망의 시대>에게 끌린 것도 같은 현상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잘 빠진 표지 디자인이라고 느꼈다. 중국을 논하는 책들은 시중에 많았지만, 오직 이 책만이 보다 더 세련되고, 재미있게 풀어줄 것만 같았다. 원래는 <이중톈, 국가를 말하다>를 읽으려고 눈여겨 보고 있었다만 막판에 밀렸다. 흰 바탕의 심플한 표지는 이제 조금 식상하다.

 

프로필만 보고 혹해서 타임라인에 들어왔는데 올라와 있는 글까지 마음에 든다면 그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게 된다. 관련해서 '취향 저격'이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딱 꽂힌 것이다. <야망의 시대>는 나의 취향을 조준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있게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디테일하다. 자신의 주장에 흥분하여 어느 방면으로 치우치는 글도 없었다. 작가는 중국인이 아닌 외부인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 점이 더 많은 진실을 드러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인 기자 에반 오스노스. 그가 베이징에 8년간 머무르면서 직접 만나고 관찰했던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책의 첫 챕터, 다른 말로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의 시작은 1979년, 중국 공산당이 경제 성장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펼쳐진다. 아래는 당시 덩샤오핑의 멘션이다.

 

"우선은 일부 사람들 먼저 부자가 되게 하고, 그런 다음에 점차 모든 인민들이 함께 부자가 되어야 한다." -25p

 

경주를 알리는 총소리가 퍼져나가자, 야망을 가진 개척자들은 하나 둘 대륙의 타임라인 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온 남자 린이푸,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도 진실을 보고자 했었던 천광청, 예술로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아이웨이웨이, 젊은 중국인의 아이콘이었던 한한이나 탕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중국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도, 가지고 있는 강점도 모두 다르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할 만큼 다채롭다. 이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란 그저 중국인이라는 사실과, 스스로가 믿는 이상이 있다는 것뿐이다. 에반 오스노스는 이를 야망이라 불렀다. 이들의 야망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중국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편 타임라인이 분주해짐에 따라 덩달아 바빠지는 분들도 있었다, 바로 페이지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중국의 공산당 세력이다. 그들은 24시간 검열하고 통제하고 또 검열해야 했다. 성장에 따라 시대가 빠르게 변했기에, 그들도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야망의 시대>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개척자들의 성장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이 한데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악역으로서의 공산당(혹은 국가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야망의 시대>는 새롭게 태어나는 중국 국민들과, 그 안에서 꾸준히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 권력의 대립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 진실의 은폐를 다루는 챕터들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정치 체제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한국의 타임라인도 오버랩됐다. "한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가능할까?" 하고 화두를 던지던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도 문득 떠올랐다. 이제 보니 두 책은 자매품이다. 오스노스쪽이 튜더보다는 훨씬 냉정한 관찰자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타임라인을 따라 쉼 없이 정주행을 완료했더니 어느새 현재의 중국이 뉘엿뉘엿 보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잘 정리된 프로필이나 이력서보다 타임라인 위 몇 줄이 그 사람을 더 기억나게 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여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DVD도 보통 편집본보다는 무삭제, 무수정본을 선호하지 않던가?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 위에서 바라본 중국의 모습은 당분간 강한 기억으로 남을듯하다. 덕분에 나도 이제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이 조금 늘어났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아이웨이웨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봤다. 그리고 푸근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의 사진에 좋아요 하나를 눌렀다. 언젠가 내 사진첩에도 그를 비롯한 개척자들의 좋아요가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다.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은 오늘도 열심히 업데이트 중일 테니 말이다. 물론 댓글은 로그인한 사람만... 아니 현재를 열심히 산 사람들만 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해시태그는 #야망 이다.

 

"어떤 면에서 내가 천광청에게 끌린 이유는 그동안 전향한 군인 린이푸나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끌렸던 이유와 비슷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운명이 정해 준 어떤 길을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가까이서 본 그들은 그들의 지지자나 적들이 상상하는 우상이나 악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중국사의 구습을 거부한 자들이었을 뿐이다." - 4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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