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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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2

생각보다 긴 호흡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집어 든지도 열흘이 다 되었지만 아직 1권이다. 표지 속 소녀의 눈빛과 지하철에서 이 책을 들고 있는 나의 눈빛이 닮아간다. 역시 무턱대고 지원해버린 카페 서평단 때문일까? 진정 책은 내 돈 주고 사서 읽는 게 가장 속이 편하단 말인가? 포탄이 떨어지고 있는 생말로의 1944년, 하우프트만의 실험실에서 테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베르너의 삼각함수 공식이 1940년, 다시 또 마 셰리와 마네크, 에티엔의 잔잔한 일상이 1940년. 이야기는 계속해서 장면을 바꿔갈 뿐. 쉽사리 동력이 붙지 않는다. 명성이 자자한 보석 '불꽃의 바다'를 찾아 나선 남자 본부 원사 룸펠처럼, 나 역시도 명성이 자자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소설적 가치만을 찾아 덤비고 있기는 한데... 그의 인내심이 내게도 절실한 순간이다.

2009년 10월

상병이다. 맡고 있는 보직은 땅굴탐지병. 북한의 땅굴 공사 징후가 의심된다는 지역으로 파견을 나온 지도 어느덧 2주째. 감지되는 소리는 센서 주변을 나들이하는 고라니 가족의 두둑두둑 거리는 발굽 소리와, 계절의 변화로 이따금 청취되는 땅의 진동, 지하수의 꿈틀댐이 전부이다. 제보자들의 증언과는 달리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자 제보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들은 점호하고, 작업하고, 경계 근무에 나선다. 오직 나와 내 후임병 단둘만이 이 동네의 지하 세계에 집중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다는 일은 지루하고 외로운 일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은 종종 사람의 마음에서 이유 없이 증폭되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기도 한다. 쉽게 흔들리는 사람은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참고 집중하고 또 참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닿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장비는 사람을 거들 뿐이다. 파견은 내일까지다. 오늘 밤엔 다시 중대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직 다 읽지 못한 <트와일라잇>하고, 부식으로 받은 빠다코코넛은 침상 옆자리 이등병 아저씨한테 그냥 주고 가자.

 

 

2015년 8월 16일

다행히 2권부터는 소년과 소녀의 시공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확실히 속도가 붙는다. 소녀 쪽의 문장이나 배경은 여전히 파스텔 톤이다. 레지스탕스의 모습마저 동화처럼 느껴진다. 모든 전쟁이 이렇게만 그려진다면 과연 누가 전쟁을 두려워할까 싶기도 하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확실히 소년 쪽의 이야기다. 라디오가, 과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베르너의 인생을 끌고 간다. 간단한 삼각법(?)과 수신 감도를 통해 프랑스인들을 찾아내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군 시절 나는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베르너는 촉이 오는 족족 전파의 근원지를 잡아냈다. 베르너가 찾고, 폴크하이머가 처리한다. 소년은 본인이 알게 모르게 어느새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긴 여운으로 남는 이름. 프레데리크...

2013년 9월

 

나는 손님이고 그는 아르바이트생이다. 퇴근길에 들린 금광동 세븐일레븐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봤던 고1 때 이후 살이 찐 건 그나 나나 둘 다 마찬가지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낀다. 알아본 건 나 혼자뿐인가? 아니면 그는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일까? 작은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결제하면서 나는 명찰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확실히 내 친구와 동일인물이다. 바코드를 찍는 삑 소리와 함께 영수증을 받을 거냐고 그가 물어본다. 나는 버려달라 말한다. 그리고 편의점을 나선다. 인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는 연기자 지망생이었다. 당시 <야인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안재모를 재모 형이라 불렀고, 예슬 누나와는 종종 피자를 먹는 사이라고 했다. <아라곤>이라는 단막극에 출연했다고 했고, 자신은 연기를 해야 하는 몸이라 학교에 자주 나올 수가 없다 말했다. 그가 안다는 형, 누나가 점점 늘어나고, 출연했다는 단막극의 제목이 하나 둘 늘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갈수록 증명을 원했다.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말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물증을 내놓지 못하는 그에게 친구들은 돌아서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는 '따'가 되었다. 나는 반장이자 몇 안되는 그의 친구였다. 그가 자퇴를 결심했던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한 거냐고? 그냥 적당히 인정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면 되는 것 아니었냐고? 그가 답했었다. "나는 진짜로 연기자의 삶을 살고 있어. 내가 학교를 떠나는 건 공부보다 연기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야. 나중에 니들 다 후회할 거야." 떠나던 날에 그는 나에게 오만 원을 빌려 갔다. 분명 한 달 내로 갚겠다면서 빌려 갔다. 그리고서는 연락이 끊어졌다.

2015년 8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맞아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들고 갔다는 기사가 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들고 갔었다고 한다. 대통령들이 챙겨간 책들은 머지않아 날개 돋친 것처럼 팔려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여름휴가 때 무슨 책을 들고 떠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이미 지난 6월에 휴가를 다녀왔다는 사실만 다시 깨닫는다. 적어도 앞서 말한 그 두 권은 안 들고 갔을 텐데 말이다.

2015년 8월 22일

 

두 주인공의 아련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써야 할까? 전쟁의 참혹함에 초점을 맞추고 써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라디오를 구성하는 각 부품들이나, 앰프, 트랜지스터, 오실레이션에 대해서 써볼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감상을 쓰지 말까? 내가 이 책을 읽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낀 것도 아니고, 어차피 출판사 카페에 명시된 서평 마감일이 지난 것도 오래 전인데? 이런저런 생각들만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그냥 책을 읽는 동안 떠올랐던 '몇 가지'에 대해 끄적거려 보기로 한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아마 다른 출판사나 서점들은 나를 서평단 명단에서 애초에 제외할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만.

2014년 10월

 

한 동창에게 카톡이 왔다. 대박이라며 보내온 사진 속 남자는 연기자 하겠다며 학교를 때려치운 그 녀석이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늙어 보이는 남자 역할로 출연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이다. 그 녀석의 옆에는 국민 MC 유재석도 보인다. 드디어 친구들과 나는 확인했다. 평생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말이다. 어쩌면 오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5년 8월 22일 오후 9시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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