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시대 -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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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도 꽤나 오래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브루스 리의 복색을 한 전현무 씨를 마주치고, IT 기기에 문외한인 내 친구 김기자는 요즘 들어 연신 샤오미의 쾌적함을 찬양하고 있다. 그는 생활비가 모자라 짜왕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지만, 'Mi'가 붙은 제품들의 구매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카드를 긁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중국이라는 존재는 수면 위를 넘어서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끼어들고 있다. 앞서 나온 예시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보라 해도 거뜬히 몇줄 더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 정도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주제를 조금만 틀어보자. 현재의 중국 그 국가의 실체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음... 엄청나게 스케일이 크다는 것 빼고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중국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콜럼버스에게는 찾아 나설 미지의 대륙 인도가 있었다면, 내게는 중국이 미지의 대륙이었던 셈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중국을 비하했고, 또 때로는 중국을 대단하다 치켜세웠다. 하다못해 소개팅을 주선하더라도 양쪽 남녀의 페이스북 타임라인 정도는 훑어보는 나이거늘, 중국이라는 그 큰 대륙의 타임라인은 틈틈이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SNS에 올라와 있는 프로필 사진 한 장만으로도 우리는 호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는 있다. 처음 봐도 나도 모르게 눌러보는 사람이 있고, 매일 봐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책의 표지도 이러한 프로필 사진과 비슷한 면이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신간들 사이에서 내가 <야망의 시대>에게 끌린 것도 같은 현상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잘 빠진 표지 디자인이라고 느꼈다. 중국을 논하는 책들은 시중에 많았지만, 오직 이 책만이 보다 더 세련되고, 재미있게 풀어줄 것만 같았다. 원래는 <이중톈, 국가를 말하다>를 읽으려고 눈여겨 보고 있었다만 막판에 밀렸다. 흰 바탕의 심플한 표지는 이제 조금 식상하다.

 

프로필만 보고 혹해서 타임라인에 들어왔는데 올라와 있는 글까지 마음에 든다면 그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게 된다. 관련해서 '취향 저격'이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딱 꽂힌 것이다. <야망의 시대>는 나의 취향을 조준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이야기를 이토록 재미있게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디테일하다. 자신의 주장에 흥분하여 어느 방면으로 치우치는 글도 없었다. 작가는 중국인이 아닌 외부인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 점이 더 많은 진실을 드러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인 기자 에반 오스노스. 그가 베이징에 8년간 머무르면서 직접 만나고 관찰했던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책의 첫 챕터, 다른 말로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의 시작은 1979년, 중국 공산당이 경제 성장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부터 펼쳐진다. 아래는 당시 덩샤오핑의 멘션이다.

 

"우선은 일부 사람들 먼저 부자가 되게 하고, 그런 다음에 점차 모든 인민들이 함께 부자가 되어야 한다." -25p

 

경주를 알리는 총소리가 퍼져나가자, 야망을 가진 개척자들은 하나 둘 대륙의 타임라인 위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온 남자 린이푸,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도 진실을 보고자 했었던 천광청, 예술로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던 아이웨이웨이, 젊은 중국인의 아이콘이었던 한한이나 탕제를 비롯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중국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도, 가지고 있는 강점도 모두 다르다.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할 만큼 다채롭다. 이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란 그저 중국인이라는 사실과, 스스로가 믿는 이상이 있다는 것뿐이다. 에반 오스노스는 이를 야망이라 불렀다. 이들의 야망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중국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편 타임라인이 분주해짐에 따라 덩달아 바빠지는 분들도 있었다, 바로 페이지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중국의 공산당 세력이다. 그들은 24시간 검열하고 통제하고 또 검열해야 했다. 성장에 따라 시대가 빠르게 변했기에, 그들도 넋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야망의 시대>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개척자들의 성장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이 한데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악역으로서의 공산당(혹은 국가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비약적으로 말하자면 <야망의 시대>는 새롭게 태어나는 중국 국민들과, 그 안에서 꾸준히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 권력의 대립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읽을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 진실의 은폐를 다루는 챕터들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정치 체제는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한국의 타임라인도 오버랩됐다. "한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란 가능할까?" 하고 화두를 던지던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도 문득 떠올랐다. 이제 보니 두 책은 자매품이다. 오스노스쪽이 튜더보다는 훨씬 냉정한 관찰자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타임라인을 따라 쉼 없이 정주행을 완료했더니 어느새 현재의 중국이 뉘엿뉘엿 보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잘 정리된 프로필이나 이력서보다 타임라인 위 몇 줄이 그 사람을 더 기억나게 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여운이 강하기 때문이다. DVD도 보통 편집본보다는 무삭제, 무수정본을 선호하지 않던가?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 위에서 바라본 중국의 모습은 당분간 강한 기억으로 남을듯하다. 덕분에 나도 이제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이 조금 늘어났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아이웨이웨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봤다. 그리고 푸근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그의 사진에 좋아요 하나를 눌렀다. 언젠가 내 사진첩에도 그를 비롯한 개척자들의 좋아요가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다. <야망의 시대> 그 타임라인은 오늘도 열심히 업데이트 중일 테니 말이다. 물론 댓글은 로그인한 사람만... 아니 현재를 열심히 산 사람들만 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해시태그는 #야망 이다.

 

"어떤 면에서 내가 천광청에게 끌린 이유는 그동안 전향한 군인 린이푸나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끌렸던 이유와 비슷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운명이 정해 준 어떤 길을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가까이서 본 그들은 그들의 지지자나 적들이 상상하는 우상이나 악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중국사의 구습을 거부한 자들이었을 뿐이다." - 4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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