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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아이스링크, 세
남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보통 나의 책 구매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이뤄진다. 직접 가서 만져보고 훑어보는 만큼의 즐거움과 신뢰감을 얻을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을 다
제쳐두더라도 시간적,
금전적인 장점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달이 쌓여가는 포인트와 독자리뷰들은 보너스. 가끔 출판사의 프로모션 낚시질에 미끼를 덥썩
물어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애교로 봐줄 만하다. 어차피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실제 구매 버튼을 누른 사람은 나니까.
아무튼 이래저래 책들은 쌓여간다. 책을 사지 않는 이유중 대부분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당장 돈이 없다거나 둘 중 한 가지이지만, 원래
책을 사는 사람에게는 오만가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도 내가 몇 달전에 구매한 책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딱히 '로베르토 볼라뇨'의 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 그마저도 아니었다. 소개 글도 깊이 읽지 않아서, 그냥 "스페인어권의 한 작가가 대단한가 보네?"라는
정도만 파악했을 뿐이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그냥 단 한 가지. 2,666원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나는 인터넷 서점 쇼핑의
마지막으로 이 한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비로소 할인쿠폰이 나오는 금액대를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내
스스로 고른 함정 카드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은 '로베르토 볼라뇨'가 직접 쓴 작품이 아니었고, 그를
추종하는 많은 이들이 그를 오마주 하며 바치는 문집이었던 것. 2,666원이라는 가격도 볼라뇨 일생의 대작이라는 <2666>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읽지 않고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볼라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추종자들의 오마주를 읽어봐야 내가 무슨 감흥을 느낄 수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고 그대로 책을 묵힐 생각을 하니 그건 그대로 또 아까웠다.
나는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을 제대로 읽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일단 볼라뇨의 책을 읽어야 할 것인데... 대표작이라는
<2666>은 무려 다섯 권짜리 소설이었고, 그다음으로 꼽는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두 권짜리였다. 처음부터 읽기엔 왠지
부담스러울 듯한 분량탓에 일단은 그의 초기작부터 맛보기로 했다. 결국 고른 책은 바로 <아이스링크>다. 볼라뇨의 이름으로 처음 출판된
이 소설이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에는 서점에 들러 직접 사들고 올라왔다.
"지금 우리는 아바나 카페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데 살인마
잭이 등장할 법한 안개는 예전보다 더욱 짙어졌습니다. <멕시코시티, 부카렐리 가, 이제 살인 사건 차례군> 하고 짐작하시는 분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 12p, 레모 모란
애초에 살인사건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도 없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힌 적도 없다. 심지어 볼라뇨는 레모 모란의 입을 빌려 처음부터 위와 같이 충고하고
있다. 차례에는 <아이스링크>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 남자의 이름만 반복된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이것은 살인사건의 진술도,
심문 과정도 아니다. 굳이 정의내려 말하자면 털어놓음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고, 첫 페이지부터 모든 속뜻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처럼 나는 내 머리가 이끄는 대로 <아이스링크>를 읽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을 추적한다'라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은 나를 추리소설 읽기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인도해갔다. 그 결과
<아이스링크>를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과연 누가 죽었을지 그리고 누가 죽였을지에 대한 물음표가 그치지 않았고, 그것은 마치
마술사의 트릭이 뭔지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의심 많은 관객의 자세와도 같았다.
나름의 추리망을
좁혀가며 소설의 종반부에 다다른 순간, 내가 마주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반전'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 둘 모두 내 추리를 벗어난 인물인
것도 사실이었지만, 볼라뇨의 소설이 선물하는 '반전'은 그런 보통의 추리소설에서 말하는 '반전'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공인 세 남자만 두고
보면, 소설이 종반부로 치닫게 된다 해서 새롭게 밝혀지는 진실이나 관계 같은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세 남자는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없이 겉돌 뿐이었다. 그들은 마음속에 있는 또 하나의 자아를 억누르는 한편, 그 자아를 강렬히 그리워했다. 그렇다.
사실 볼라뇨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을 둘러싼 사건'이 아닌 '사람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스링크>가
보여준 진짜 '반전'인 셈이다. ?
완전히 설계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향해 쉼 없이 읽어내려 왔는데, 마지막 순간에서야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순간 느껴지는
이 무너져내림이란... '반전'을 꾀한 것은 물론 작가 볼라뇨였지만, 그 '반전'이 100%가 될 수 있도록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결국
나였던 것이다. 이래서 '볼라뇨 전염병'이 창궐한 것일까? <아이스링크>의 마지막 장을 덮음과 동시에, 나는 다시
<아이스링크>의 첫 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 남자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다시 귀를 기울이자, 처음과는 다르게
그들의 진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