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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빚으로 지은 집, 터질 폭탄은 결국 터지게 되어 있다

어린 시절 MC 허참씨가 진행하던 '가족오락관'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남성팀과 여성팀, 두 팀으로 갈라 각종 퀴즈를 푸는 나름 건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중 '폭탄 돌리기'라는 코너가
생각이 난다. 제한 시간 내에 퀴즈를 풀어 상대방에게 폭탄을 넘기지 않으면, 자신의 손 위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로 그런 코너.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스릴감과, 나만 아니면 OK라는 그 짜릿함은 당시 TV를 보던 어린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왔었다. 폭탄이 뻥하고
터지면 같이 깜짝 놀랐고, 놀란 출연자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만약에 그 폭탄이 방송용 장치가
아닌, 진짜로 터지는 폭탄이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한정된 스튜디오안에서, 단지 폭탄이 내 손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터지면 남성팀이고 여성팀이고 전부 다 무사할 수 없다. 중요한 키워드는 '누구의 손 위에서'가 아니라 폭탄이 '터지냐
마느냐'다. 결국 폭탄 그 자체를 터뜨리지 않기 위해, 혹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두 팀 모두가 합심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 가족오락관은
종영했지만 여전히 '폭탄 돌리기'는 끝나지 않았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시장 떠받치기만 급급하다. 경제는 날로 악화되어 가지만, 오히려
가계들에게 대출을 더 해주겠다며 판으로 들어오라 말한다. 젊은 층의 미래를 담보 삼아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지난 11월
106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제는 폭탄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크나큰
위기가 또다시 찾아오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부동산 부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는 답답한 형국이다.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책의
제목부터 일단 의미심장하다.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미국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비슷한 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쩌면
몇 년 후, 한국의 경제상황이 이 책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책은 전체적인 페이지들을 통해, 그중에서도
특히 '레버드 로스 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빚이 채무자에게 미치는 엄청난 악효과들을 설명하고 있다. 왜 빚을 지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큰
빚을 지게 되는지, 가계부채가 커진 상태에서 맞이하는 부동산 거품의 몰락이 전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타개할 수 있을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시적인 사례들과 그에 따른 해설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또한 후반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단지
은행의 위기 때문이 아닌 가계부채의 악화 때문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참신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빚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로써 마주하는 빚의 현실적 무서움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언제나 두렵게 다가온다.
불평등의 가속화
그리고 그에 따른 전체 경제의 몰락에 맞서, <빚으로 지은 집>에서 내세우는 솔루션은 '책임 분담 모기지'라는 정책이다. 채권자가
채무자를 하방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자본의 이득에 대해서는 주식처럼 공유하자는 것이다. 야수적 충동에 휩싸여 바보같이 대출을 받는 채무자뿐만
아니라,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준 채권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전가하자는 이야기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해법이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한 푼이나마 더 챙겨보려고
꼼꼼하게 서민의 주머니를 노리는 현 정권, 그리고 그 뒤에서 어떻게든 부동산으로 한방을 노리는 국내 정서가 바뀌지 않는 한은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다. 범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제는 자본주의의 한계가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터질 폭탄은 결국 터지게 되어있다. 결론에 이르러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기는
했지만, 가계부채라는 폭탄의 제조과정과 그 위력을 친절하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이 책 <빚으로 지은 집>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사놓기만 하고 읽어보지 못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비하면 그 분량도 매우 가볍다. 번역이 훌륭해서인지 책장도
잘 넘어간다. 만약 주변에 빚의 위력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아직도 경제는 나 몰라라 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 <빚으로
지은 집>을 강력 추천한다. 나중에 본인이 살 집이 무슨 재료로 지어졌는지는 알아야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