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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잠의 사생활, 잠 못 드는 밤 읽기 좋은 잠 이야기

별일이 없는 경우에는 밤 12시에 침대에 눕는다. 취침 전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꼼지락거려보다가, 마지막 노래를 선곡하고서는 2,3번 정도 반복 재생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든다. 이따금 어떤 곡, 어떤 가수에게 꽂히는 날은 앨범 단위의 재생까지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는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알람몬 어플을 연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하루에 보통 4, 5시간 정도 꿈을 꾼다. 서울로 회사를 다니고부터는 계속해서 이런 패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처음 출근시간 8시를 맞추기란 생각보다 힘겨운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에서 새로운 이론들을 공부해도 습득 속도가 이전 같지가 않다. 점점 능률이 떨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나이를 먹은 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수많은 형님, 누님들에게 면목이 없다. 그렇다. 이건 나이 탓이라기보다도 단순히 잠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그 누구도 지금의 나정도로 잠을 자서는 100%가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누리려면 8시간 정도는 푹 잠을 자줘야 한다. 보직의 특성상 하루에 12시간 정도 잠을 잤던 군인시절 나는 내 생애 가장 똘망똘망했었고, 못해도 하루에 8시간 이상씩 꼬박 잤던 대학시절에는 숙취가 아니고서야 절대 무기력하지 않았다.
핫식스를 사러 갈지, 박카스를 사러 갈지 고민하다가 그냥 이 책 <잠의 사생활>을 주문했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인 양반님의 포스팅을 통해 눈여겨 본 적 있는 책이었다. 목마른 놈이 결국 우물을 파게 된다. 새해에는 좀 더 잠다운 잠을 한 번 자보고자 1월의 개인 독서 주제를 '잠'으로 삼게 되었다. 머리맡에서 잠에 대해 읽다 보면 잠에 대한 필요성이 조금 더 와 닿을까 싶어서 그랬다. 그리고 기왕 주문하는 김에 <24/7 잠의 종말>도 한 권 슬쩍 끼워 넣었다. 이 책도 머지않아 읽고 나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 생각이다. 오래간만에 인트로가 긴 이번 감상은 데이비드 랜들의 책 <잠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잠에 대한 궁금함으로 <잠의 사생활>을 구매했을 뿐인데, 저자 데이비드 랜들은 잠에 대한 궁금함으로 <잠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탄생시켜 버렸다. 그는 잠에 관한 어떠한 학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이 아저씨가 평소에 잠에 관한 어떠한 업무를 도맡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잠에 관한 '권위자'는 아닌 셈이다. 다만 데이비드에게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현직 기자라는 사실과 간헐적으로 몽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 (모든 기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는 깨어있는 시간에도 발로 뛰었고, 자고 있는 시간에도 발로 뛰었다. 그리고 그 뜀박질은 그가 잠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게 된 계기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만약 또 잠결에 걸어 다니다가 뭔가에 부딪혀 크게 다치면 어떻게 하나 하고 혼란에 빠져 고민하다가 결국 어떤 계획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의사가 잠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 인생의 3분의 1이 제대로 조사도 설명도 되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 19p
저자의 이력과 탄생 비화에서 감이 오듯 이 책 <잠의 사생활>이 체계적이고 엄격한 학술서는 아니다. 읽다 보면 편하게 잠에 들 수 있는 노하우를 참고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잠의 사생활>을 잠의 '매뉴얼'로 보기에도 조금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참 잘 만들어진 한 권의 잡지처럼 느껴진다. 의학, 언론, 법, 군, 스포츠, 역사 등등 잠과 관련해서 다방면으로 읽을거리가 참 많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이 다 조사한 게 맞나 싶을 정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어떤 주제에 솔깃할지 그 맥을 짚고 편집하는 능력도 출중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몇 가지 챕터의 주제를 예시로 들자면 다음과 같다.
2. 사라진 두 번째 잠
: 인공조명이 나타나기 전까지 원래 인간의 잠은 두 번으로 나뉘었다. 빛이 수면에 끼치는 영향은 얼마나 대단한가?
3. 침대를 따로 쓰는 게 좋을까?
: 사랑하는 사람과 한 침대를 쓰는 것은 섹스에는 좋지만, 그 밖의 점에서는 좋지 않다는 말은 사실일까? 부부는 트윈 베드를 써야 할까?
5. 꿈의 의미
: 꿈의 영역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대로 욕망의 상징적인 일부분일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꿈을 제어할 수 있을까?
7. 'Z'무기
: 부족한 잠은 전쟁의 역사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 언젠가 혈중 알코올 농도처럼 인체의 피로도를 수치화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8. 잠결에 저지른 살인
: 몽유병 상태에서 저지른 살인에 대한 판결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아니면 새로운 잣대가 필요한가?
아이러니하게도 애당초 독서의 목적이었던 '잠에 대한 필요성 일깨우기'와 관련된 챕터들은 내 기억 속에서, 아니 인기투표에서 아래 순위로 밀려났다. 굳이 <잠의 사생활>을 통해 읽어보지 않았어도, 다 알고 있었을 법한 착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결론은 잠을 충분히 자는게 좋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대신 위 순위를 차지한 챕터들로는 잠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들, 그리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논쟁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아무래도 가까운 미래의 잠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점들이 좋았다. 일찍 잠에 들까 하고 <잠의 사생활>을 펼쳤다가 오히려 챕터 속 주제에 대한 공상을 멈추지 못해 늦잠에 들었던 날도 있었다.
<잠의 사생활>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설계되었던 잠의 방식을 계속해서 리모델링해가고 있다고 한다. 다만 현재까지는 그 모델링의 방향이 생물학적 인간에게 최적화되기보다는, 사회적 시스템에 최적화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다. 계속해서 잠만 줄여나가는 것은 결코 효율적인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 누군가는 항상 깨어있으라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으로 항상 깨어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불안해하지 않고 잘 자고 싶다. 이것은 곧 스스로를 잘 제어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잠의 사생활>을 통해 그 완벽한 해법을 찾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해법보다 더 흥미로운 질문들을 머리속에 담아 간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코나의 노래 제목처럼, 어쩌면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소중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