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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먼 별, 너와 나의 거리를 가늠하다

토요일 저녁 하늘에는 초승달이 있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달의 궤적은
빠르게 이동했다. 맥주집 테라스에서 감자튀김에 겨우 두 번째 잔을 비워냈을 뿐인데, 초승달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이제는
좀 알 것 같다고 자신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누군가는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 어쩌면 작가나 유명인사, 가족, 직장동료여도 상관없다. 먼
발치에서 출발한 객관적 물음표는 점차 그 대상에게 가까워지면서 주관적 느낌표로 변해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느낌표가 대상에 닿는 순간에야
나는 깨닫는다. 그 앎은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객관적 물음표 시절보다 못한 앎이었다는 것도.
볼라뇨의
소설, <먼 별>의 표지를 떨어내자 초승달이 떠있었다. <아이스링크>에 이어서는 두 번째로 보는 초승달이었다. 겨우 한
작품을 읽고 나서 나는 볼라뇨에 대한 아는 체를 했었지만, 앞서 말했듯 역시 자만이었다. <먼 별>은 <아이스링크>와는
닮은 듯 또 달랐다. 세 남자의 목소리보다는 어딘지 더 담담했던 '아르투로 벨라노'의 회상과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내가
카를로스 비더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1971년이나 1972년 무렵이었다." -
11p

개인적으로
칠레의 역사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한 적이 없어 잘 몰랐다. <먼 별>에서도 그 시절에 대한 묘사를 구구절절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쿠데타', '숨어 있는 사람', '숨을 사람'이라는 단어들로 시대의 색채를 짐작했고. 칠레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과 군인들은 그 짐작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책의 겉표지처럼 시대는 뿌옇고 어두웠다. 그래서였을까? 소설 속 주인공인 '아르투로 벨라노'에게는 그가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카를로스 비더'의 진실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추적할 단서라고는 오로지 '비더'가 별처럼 빛났던 순간들뿐. 그 빛을 따라가 보아도
이미 진짜 '비더'는 그곳을 떠난 지 오래였다.
이는 '벨라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혹은 시작했던, <먼 별>속 다른 시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대에
맞서 투쟁했거나 혹은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았거나, 모두가 저마다의 빛을 잠깐씩
발하고는 사라질 뿐이다. 옛 동료들의 반짝임 속에 오히려 빛나지 않았던 '벨라노'의 평범함이 내 눈에는 편안했다. 원래 같은 밝기로는 그 빛을
가늠할 수가 없게 마련이다. 역사 속 철저한
주변인들, 어두운 밤을 올려봐야만 했던 수많은 시민들의 눈을 '벨라노'는 대표한다. 덕분에 나는 '벨라노'와
'카를로스 비더'와의 거리, '벨라노'와 70년대 칠레와의 거리, '벨라노'와 '문학'과의 거리 등, <먼 별>을 통해 수많은
거리들을 상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재판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자취를 감춰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연쇄 살인범이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국내 문제들이 너무
산재해 있다. 칠레는 그를 잊는다." - 151p
시간이
지나면 초승달은 내려가고, 다시 해가 떠오르게 된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시대는 없다. 권력의 축은 결국 움직이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 <먼
별>은 시대가 빚어낸 개인의 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바뀐 시대의 국가는 직접 나서서 심판하지 않았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내비쳤을 뿐, 결국 심판을 내렸던 것은 국가가 아닌 어느 개인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의문의 누군가) 그렇다면 그 죄는 과연 여전히 유효하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비더'를
심판하려 했던 자는 그 자체로 정의로웠다 할 수 있을까? '루이스
타글레'와 '카를로스 비더'는 동일한 개인인가?
이와
같이 볼라뇨의 소설, <먼
별>은 시대를 거쳐간 개인을 '문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분리하고 또다시 이어붙이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삶은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어차피 빛을 따라간 곳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 빛의 과거일 뿐이니까. 평생토록 붙어있지 않는 한, 별은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그 진실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가늠하고 또 가늠해야 한다. 너와 나의 거리도, 나와 이 시대의
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