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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24/7 잠의 종말, 도시가
잠들지 않는 이유

처음
스마트폰을 구입했을 때가 기억난다. 중고로 공기계를 구입했었던 쿼티식 스마트폰 옵티머스 큐. 나도 드디어 문자 대신
'카톡'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3G나 와이파이 망만 있으면 따로 문자 비용이 들지도 않고,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숫자 '1'은 그 자체로 신세계였다. 그로부터 약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카톡으로 시작해 밴드, 라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등 수많은
메신저, SNS 어플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무척이나 어려운 시대. 스마트폰을 꺼두면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불편해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적이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던 게 목적이었던 카톡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이렇게 업무적으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주말에도 회사의 단체 카톡방, 밴드 채팅창은 쉬는 시간이 없다. 정말 24/7이다. 항상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숫자'1'이 사라졌으니 잡아뗄 수도 없다. 그래, 윗분들은 참 편해서 좋겠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게 나의 편의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만큼 쉼 없는 감시와 검열이 우리를 날로 옥죄여 오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모든 것들이
기계화되고 상품화되어가는 오늘날, 인간을 인간답게 지속해줄 마지막 보루는 바로 잠뿐이다. 지금까지 잠듦과 깨어남의 주기적인 리듬은 자본주의도
쉽게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마지막 보루마저 종말을
앞두고 있다. '24/7'은 24시간 주 7일간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 네트워크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드디어 '24/7' 시장을 이루어냈다. 언제 어디서나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다음 단계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바로 '24/7'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24/7'형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 <24/7 잠의 종말>의
도입부에서는 7일간 잠에 들지 않고 비행이 가능한 흰정수리북미멧새를 연구하는 군사 학자들과, 인공위성으로 태양광선을 반사시켜 도시의 밤을 없애려
했었던 러시아의 한 컨소시엄을 그 예시로 든다.
잠은 소진된 에너지를 재생시키고, 주기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해줌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시간은 인간이 가장 취약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업화 이전 국가의
역할 중, 잠들어 있는 국민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다. 맘편히 잠들 수 있는 국민만이 다음 날 더욱 강한 생산성을
만들어 내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 그 생산성은 기계가 대체한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에, 단순노동력보다 중요한 것도 돈이 되었다. 더
이상 국가와 사회는 국민의 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24/7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에 맞서 버티기를 종용한다. 밤시간의 취약함을
징징거리는 자들은 도태될 뿐이다. 국민이 잠들지 않을 때 국가는 돈을 번다. 심지어는 교묘하게 국민의 잠을 악용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모두가 깨어 있으라 말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아래 TV나 통신등을 위시한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미처 완전히 적응하기 전에 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본의 권력과 통제라는 핵심적인 관계는 그대로 둔 채 계속해서 새것만을 촉진하는 형태이다. 짧은 주기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사회의 이름으로 도태시킨다. 부적응에 대한 불안함은 만성적인 것이 되어간다. 더 편해지고 더 효율적인 기술. 자본주의는 그러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수많은 피지배층을 비슷하고 밋밋하게 만들어 간다. 이것이 혁신이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자들은 오로지 권력의
최상위층일 뿐이다. 정말이지 윗분들은 참 편해서 좋겠다.
<24/7 잠의 종말>의 저자인
조너선 크레리의 눈에는 위와 같이 잠의 종말이 자꾸 아른거렸던 모양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잠의 사생활>이 잠 그 현상 자체에 대한
호기심 탐구였다면, 이 책 <24/7 잠의 종말>은 자본주의와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이다. 책에서는 일명
'테크노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00페이지 정도로 분량 자체는 그리 많지 않지만,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무척 깊고 무겁다. 또한
예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이력답게 여러 가지 영화나 문학 작품, 학자들의 견해를 이용하여 저자의 주장과 시선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접해본 경험이 있다면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아쉽게도 단 한 편도 없었다. 필립 K라도 읽어봤다면
좋았을 것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몇몇 분들이
지적하셨던 것처럼 번역된 문장의 부자연스러운 호흡이 옥에 티가 됐다. 원문 자체가 심도 있기도 했겠지만, 계속해서 길어지고 또 난해하게 번역된,
마치 번역을 위해 번역된 듯한 문장은 많이 거슬린다. 책에 북마크가 많이 된 것은 곱씹고 넘어갈 부분이 많아서도 그랬지만, 집어놓지 않으면 당최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기에 그랬던 이유도 있다.
끝으로, 저자도, 역자도 <24/7
잠의 종말>의 말미에서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잠을 통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를 옥죄여 오는 자본주의의 압력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잠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24/7. 기술도 좋고 시장도 좋지만 인간적인 인간이 없으면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된다는 말인가? 항거에 동참하는 의미로 일요일인 오늘은
하루 종일 원 없이 잠들어 있었다. 허리가 다 뻐근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책상에 앉아 꾸벅 조는 나의 모습을 본다면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단순히 졸고 있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해 자본주의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