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천국 주식회사, 깃털처럼 가벼운 소설판 SNL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던 시절이 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로 그의 책을 처음 접했고, 뒤이어 <나무>, <빠삐용>, <신>등 여러 가지 작품들을 거쳐가며 그가 만든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거대한 틀 밖에서 틀 안의 인류를 관찰하는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심각한 미간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피식거리는 입가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진부하기도 했지만 늘 그럴싸한 주인공들의 모험담은 언제나 기대만큼의 값은 했었다.

사이먼 리치의 <천국 주식회사>를 읽는 내내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떠올랐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들 중 <천사들의 제국>과 <신>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아둥바둥 살아가는 인간들을 저 멀리서 바라보는 절대자들의 시선. 신 혹은 천사라고들 하지만 더없이 인간적인 캐릭터들. 게다가 그들의 좌충우돌로 인해 종말의 위기를 맞는 지구까지. 정말 많은 요소들에서 그 둘은 닮아 있었다. 하지만 닮았다고 해서 이야기의 깊이마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닮긴 했는데 어딘지 억울하게 닮았다. SNL 작가라는 사이먼 리치의 이력답게, 그의 소설마저 딱 SNL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천국 주식회사>는 <천사들의 제국>, <신>의 SNL 버전이라 이야기해도 어울릴듯싶다.

일단 내용이 가볍고 그다지 어렵지 않아 책장은 잘 넘어간다. '무겁고 의식 있는 소설만이 좋은 소설은 아니다'라는 의견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읽는 즐거움 자체로도 소설은 본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는 SNL이 아닌 텍스트로 읽는 SNL은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ㅎㅎㅎ'보다는 '...'이었다. 어떤 교훈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갈등이나 재미 역시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빵 터지는 부분이 없었다. 소설 속 사이먼 리치의 코미디 방식은 비유적인 언어나 상황적인 아이러니보다는, 슬랩스틱이나 시각적인 부분에 많이 기대고 있다. 그 장면을 상상으로만 떠올려서 빵 터지기엔 내 창의성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새삼 코미디언들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보다는 콩트나 시트콤으로 만났어야 할 이야기이다.

그냥 '단순하게 킬링타임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때?'하고 묻는다면 뭐랄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읽기라는 행위는 우리에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멍 때리며 보기는 쉬워도, 멍 때리며 읽기란 참 힘든 것임을 말이다. 만약 정말로 지구 종말이 다가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천국 주식회사>를 읽기보다는 다시 한 번 베르베르의 책들을 읽기를 추천한다. 아니면 유튜브로 SNL을 찾아보는 쪽이 조금이나마 더 좋은 선택이 될 듯싶다. ​ 기적은 그리 쉽게, 그리고 그리 진부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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