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독 (애장판)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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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출간된 책이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달빛에 비친 두 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좀 더 세련돼졌다. 이제는 익숙한 이연승 작가님의 번역에 겉부터 속까지 완벽한 책이다. 책을 볼때 나만의 의식이 있는데 작가, 출판사, 책상태다. 띠지 하나 버리지 않기 때문에 겉표지를 벗겨 보관하고, 맛있게 읽기만 하면 된다. 이미 군침을 흘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15년 여름으로 시작한다. 너무도 한가로워서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헛갈리는 시간의 흐름속에 있는 예순다섯의 화자. 병을 얻고 노후를 걱정해 초고급 유료 노인 요양원을 선택했다. 여기서 마주하는 것은 사납게 파도치는 바깥 바다와 과거다.

1949년 9월 1일생, 35세. 면접 담당자는 맞는지 확인한다. 야근은 아이가 있어 할 수 없다고 하니까, 이사카와 기미가 맞냐고 한다. 중간에 착오가 생겨 다른 사람의 면접을 본 가가와 요코다. 증명사진 속 여자가 왠지 낯이익다.

직업소개소 직원이 두사람을 착각해서 시간 낭비하게 만들었다. 이사카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가가와를 끌고 나온다. 근처 찻집에 들어가 이런 상황에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지금껏 오랫동안 이렇게 웃어보지 못했다.

이시카와는 지금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정이 있어 이직하려 한다. 어쨌거나 두 사람을 착각해 준 덕분에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얻었다. 가가와는 여동생부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조카 다쓰야를 키우고 있다.

예쁘고 씩씩한 기미와의 만남에서 숨통이 트이는 요코다. 기미가 생각지도 못한 일자리를 소개시켜 준다. 꽤 큰 중견회사인 난바 저택의 가정부다.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난바 선생과 후계자 유키오가 있다. 다쓰야와 함께 요코의 삶이 시작된다.

이제 걱정없이 평범한 나날만을 보낼거 같은 요코와 따분한 나날에 근심없는 기미..두 여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숨겨진 과거가 있다. 난바 저택에서의 사건으로 모든것이 달라진다. 이야기는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고백을 넘나든다.

보잘것없고 어리석다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명을 빼앗는 독과 생명을 구하는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의미를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 가슴속에 독을 품고,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이다. 그리고 가슴에 품은 독은 아내에게는 약이 된다. 책 제목이 <어리석은 자의 독>인 만큼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독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연은 냉혹하고 비정하기도 하고, 안타깝고 서글프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걸맞은 벌이 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무시무시한 죄를 공유하기 위해 함께 하기로 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과거에서 계속 도망치는 도피 행각이 성공할 수 있을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 뿐이다. 죽음은 모든 걸 묻어둔다. 하지만 삶 자체도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스 할머니는 인생은 죽기 전에 수지타산이 맞춰지게 돼 있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과오는 왜 모를까 싶다. 삶의 마지막에 모든 수지타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엄숙하고 냉혹하게 단죄받기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우사미 마코토는 늘 인간 내부의 오래 침전된 감정을 노련하게 다룬다. 인물들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재단하지도 않는다. 제목부터 어리석은 자의 독인 것처럼, 독을 품은 어리석은 자들의 비극과 진실을 담고 있다. 지쿠호의 비가에 드러난 시대적인 아픔이 뿌리를 두고 있다.

언제나 가슴 묵직한 사회미스터리를 염두에 둔 작가님 답다고나 할까. 다 읽고나면 마음이 무겁다. 시대는 변했어도, 소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 느끼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어리석은 자가 되기로 맘먹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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