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한 어둠
황시운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6년 6월
평점 :
#환한어둠 #황시운 #마디북 #장편소설 #서평단
환한 어둠이 시사하는 바가 궁금해서 신청한 책이다. 어쨌거나 어둠이라도 희망이 깃든 어둠 같아서 속내가 어떨지.. 확인해보겠다.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운 밤, 야식집엔 더 많은 주문이 밀려든다. 손과 발에 얼음이 박혀 고생하는 걸 본 선호가 추위를 덜 수 있는 요령을 알려준다. 배달로 잔뼈가 굵은 선호는 큰아들과 동갑이다.
성치 않은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도망나와 무슨 일이든 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이제 정말 늦어버렸다. 처자식이 고통 속에서 시들어가는 동안 가장이라는 작자가 한 일이라고는 멍청하게 사기나 당하고 지난 시간을 한탄하며 술로 허비하는 게 전부였다. 선호는 술만 먹으면 아들들 얘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아픈 곳을 찌르는 줄도 모르고. 다음날, 원석이 배달 오토바이 속력을 높이는 순간 모든 감각이 일시에 소멸되어 버린 사고가 난다. 의사는 천운이라 한다. 하긴 헬멧도 안 썼는데 머리 안 다친 게 다행이다. 병원비 걱정에 무작정 퇴원 한다.
낮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몸이 불편하니까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서 나가보니 경찰이다. 선호에 대해 묻고 정영옥 사장님에 대해서도 묻는다.
정영옥의 사체가 일부 발견되었다니..그날 밤, 선호 녀석에게서 끼쳐오던 비릿한 쇳내가 떠오른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원석이 잘못 말한 행선지로 택시가 선다. 오륙 년 사이 아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제희가 있다.
제 형의 사고로 큰 상처를 입은 아이, 그런 아이를 몰아부쳤다. 그날의 실수가, 장난이 아이의 존재 자체가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겨우 열한 살 아이를 걸핏하면 두들겨 팼다.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만 싶어 도망쳤다.
칠 년 전, 강원도 계곡에서 있었던 사고로 모든것이 끝나버렸다. 척주가 네 동강 나면서 사지 마비 장애를 갖게 된 형, 거짓말처럼 곁을 떠나 사라진 아빠. 한때는 단란했던 가족은 이제 없다.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형뿐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제희는 그렇게 온 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형의 인생을 말아먹은 주제에 엉망으로 살아간다. 엄마와 아들은 외면하며 지나쳐가고, 둘을 지켜보는 아빠 또한 역시 못 본 척하는 사람들이 가족일까? 이 가족에게 남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 와중에 제희가 임신한 은주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다. 힘든 엄마 생각은 안 하는건지..집안꼴이 산으로 간다. 하지만 새 생명 보미가 태어나고 집안에 온기가 깃든다. 화해를 시도하는 쪽도, 내치는 쪽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화해와 용서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엄마도 아빠도 제희도 정희처럼 고통스런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야만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밥 한 끼가 희망을 예고한다. 이 가족이 어둠에만 잠식 당하지 않으리라는 가능성, 어떤 화해의 말도 몸짓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거부 당하지도 않았다는 점..그래서 제목이 환한 어둠인가보다.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한 희망은 남아있다.
그러면 통증도 사라질테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단단해 질거다. 소설속 고통스런 통증의 문장들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는데는 황시운 작가님의 경험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십오 년 전 사고로 척추가 조각나면서 척수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한다.
장애와 통증, 그리고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환한 어둠에 담겨 있다. 환하게 세상밖으로 나온 이야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