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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인
정윈만 지음, 김소희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5월
평점 :
#유심인 #정윈만 #빈페이지 #장국영 #서평단
장국영이 부른 <유심인>은 금지옥엽2 OST다. 읽기 전에 목차를 살펴봤다. 장국영의 노래와 영화제목으로 엮어낸 열 세편이다. 내게 장국영은 천녀유혼의 영채신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전에 영웅본색에서 이미 눈여겨 보았지만 말이다. 이후로도 장국영은 만인의 첫사랑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충격을 안겨줘서 지금까지도 내겐 만우절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날이다. 정윈만 작가님도 장국영이라는 우상을 기리는 마음에서 시작된 소설집이지만, 한 시절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홍콩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작가적인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_춘하추동>
묘목이 버려지던 입춘, 누군가 이사를 하다 버리고 간 묘목은 화분을 뚫고 나와 소리 없이 흙을 움켜쥔다. 그리고 더 이상 작은 묘목이 아니라 자기만의 줄기와 그늘을 가진 어엿한 작은 나무가 된다. 초여름, 태풍이 닥치고 모든것이 강풍에 쓰러질때 견뎌낸 나무는 분노하듯 맹렬하게 자란다. 모두가 나무의 존재를 알아차릴때 점점 흉측하게 변해가는데..속이 텅 빈 채 커다란 구멍만 휑하니 남긴 나무는 한 시절의 홍콩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소시민들의 공허함을
들여다보는 통로가 된다.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는_회비연멸>
남편이 실종되었을 무렵, 고양이가 아프기 시작하고, 막 임신한 상태의 나는. 고양이 진료를 위해 연기가 자욱하게 깔린 거리로 나선다. 유 의사는 연기때문에 종양이 생긴건지도 모른다고 하는데..연기가 뒤덮은 도시는 혁명을 나타내고, 연기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삶을 스스로 돌보는 존재를 시사한다.
끊임없는 집안일과 요양원의 엄마에게 가져다 줄 음식을 하는 게 하루 일과인 나. 잠이 오지 않자 개와 산책길에 나서고.. 마주친 존재에게 분출되는 우울감을 다룬 <잠 못 드는 밤_무심수면>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엄마는 이웃 여자를 험담하고, 딸은 꽃향기의 출처를 찾는 <황금 가지와 옥 같은 잎_금지옥엽>은 둘 다, 여성들의 억압된 삶을 조명한다. 장국영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후반에 그밖의 다른 영화도 등장한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던 푼 아주머니. 아이들도 푼 아주머니가 좋은 사람인 걸 알고 있다. 푼 아주머니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오는데..<당신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탓에_과니과분미려>역시 아파트 단지내의 보수적인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카우 아저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공중화장실에서 자신과 같은 회청색 러닝셔츠를 만난다. 최고로 운 좋은 날이라 여기는 카우 아저씨의 소소한 행복을 그린 <많은 걸 바라지 않아_무수요태다>
고양이를 핑계로 목 놓아 우는 부자. 배가 아프다고 감씨쥐는 아버지와 병원에 온 레이위가가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것은 아버지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의 방황을 그린 <뜨거운 에너지_대열>
장국영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의 우울까지 직면해야 한다는 작가는 이 책의 제목을 <유심인_마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붙인 이유가 무릇 마음을 지닌 사라이라면 누구나 온갖 감정과 욕망을 품기 마련이고, 그것은 다시 억압과 표출을 낳기 때문이라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의 집필을 통해 우울증의 결말이 오직 죽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창작의 결실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가장 진실한 나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고자 했고, 비로소 영혼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가 작품 의도가 느껴진다.
일상의 결을 집요하게 포착하되, 절제된 서사 속에 섬세한 문장을 채워 넣었다. 오늘의 홍콩이 겪고 있는 긴장과 균열을 감각적으로 기록했다. 변해버린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불안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번역가의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작품으로 곱씹어 읽으면 더 좋을것 같다.
작가는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는>을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는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은 좋은 날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 담긴 작품이니 대표할만하다. 절반만 소개했는데, 나머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장국영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