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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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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던 마사미. 만약 한 번 더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인생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조리 배제해보고 싶다. 오타니 선수처럼 말이다. 오타니 선수는 고등학교때 이미 만다라차트에 목표를 적고 인생 설계를 마쳤다.
오타니 선수와 자신을 비교하고 울적해한다고 남편이 비웃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도 그나마 연애할 땐 자신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주었다. 남편을 존경하고 존중받고 싶다. 지금은 남편의 쪼잔함에 경멸하게 될 것만 같다.
남편의 빈정거림에 상처받은 마사미. 무심코 장보기 메모 뒷면에 만다라차트를 적는다. 오타니 선수가 야구에 품은 열의에 필적할 만한 거라고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외길 인생'이라고 적는다. 너무 추상적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본다면 또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오타니 선수처럼 장래 목표가 아니라 가공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분한 마음에 두 줄로 지우고 어느새 칸을 메우는 데 몰입한다. 다 쓰고 보니 만다라차트 중심이 태풍의 눈처럼 빙글빙글 돈다.
어느 순간 타임스립하여 중학생으로 돌아가고, 짝사랑 아마가세를 보게된다. 엄마, 아빠, 오빠에겐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태도로 대한다. 하긴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본 마사미가 아니겠는가? 40대의 아빠는 햇내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래를 안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빠도 홀로 살다가 건강을 잃고. 다행히 빨리 돌아가셔서 안도하는 날이 올 줄 어릴 때는 상상도 못하지 않았나. 마사미는 그래서 더욱 분위기를 바꾸어 놓으려는지도 모른다.
만다라차트를 들여다보다 타임슬립해서 중학교 2학년으로 온 지 석 달이 지난다. 성적이 우수한 아마가세가 과제를 빼먹는다. 줄곧 심각한 표정의 아마가세를 아무도 모르게 짝사랑했다. 63년 인생 중에서 가장 못생겼던 시절이기도 하다.
말실수로 아마가세에게 들킨다. 아마가세 역시 2023년도에서 타임슬립한 모양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의지가 되는 것일까. 둘은 교환일기를 쓰기로 한다. 아마가세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동지애를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2회차 인생을 응원하게 된다. 결혼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이미 실패한 인생을 살아봤다면, 후회하는 인생을 겪어봤다면 다음 생은 당연히 다시 시작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기억도, 능력도 그대로 50년 전으로 돌아간 14살의 마사미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급변도 경험했으니 주식을 사지 않을까 싶은데..우리의 주인공은 항의 편지가 늘어난다. 불합리한 광고나 작사가에도 자기 목소리를 낸다.
또한 불편하기 짝이 없는 부엌이며 청소하기 힘든 욕실, 덥거나 추운 단열재 없는 건물, 생활자 시선을 무시한 내장 설계와 건축 방식을 바꾸고 싶다. 그 첫 번째 관문으로 대학은 건축학과에 들어가려 한다. 마사미는 뜻을 이룰 수 있을까.
낡아빠진 봉건주의적 사회 풍조에서 그것도 건축회사에 취업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주어진 삶이 아닌 만들어가는 삶을 느끼며 고군분투한다.
무엇보다 가부장적인 가족을 변화시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애초에 이럴려고 과거로 갔나 싶기도 하다. 자신과 오빠의 진로를 바꾸고,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바로 잡는 모습이 멋지다. 아마가세와는 첫사랑이 이루어질까?
우리의 주인공이 꿈을 이룰지가 중요한 것이니..하지만 반전은 없다. 아니 있는 걸까? 그것도 엄청난! 63살 마사미의 인생 2회차는 끝나지 않았다. 엄청 답답하고, 무개념 사회의 과거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이대로 늙는게 더 좋다.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살아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