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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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굴욕'을 느끼거나, 당하거나 어쨌거나 경험들은 있을 것이다. 웨인 커스텐바움의 굴욕은 어떤 이야기일지 굴욕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 같을지, 다를지 궁금해진다.

굴욕이라는 논제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굴욕의 복잡한 특징들을 포괄하려는 목소리를 서서히 손상시키는 것이 굴욕이기 때문이라고. 공인의 굴욕을 보면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 범죄가 성범죄라면 더욱 그러하다.

딱히 공인에 대해 감정이입을 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스크린에서 보는 사람, 스타이거나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성범죄라도 관심이 없달까. 마이클 잭슨이 아이들이랑 잤건, 로만 폴란스키가 열세 살짜리를 강간했다고 해도 말이다.

로만 폴란스키는 인간 쓰레기이기 때문에 거론하고 싶지 않다. 이뿐만아니라 굴욕을 즐기는 듯한 작가의 방대한 글은 '굴욕'이라는 단어를 되뇌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작가만의 지식과 통찰을 자랑하고 있다.

굴욕당하는 여자보다 굴욕당하는 남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진 작가는 경악은 똑같이 느끼지만, 남자에게는 슬픔을 못 느낀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나 자신의 굴욕적인 전사라는 심해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굴욕에 대해 연관된 책과 역사속 인물, 실제 사건들과 적나라한 방송, 영화의 장면들과 끔찍한 기억의 편린이 담겨있다. 거의 낯선 작품 일색이지만 뉴스를 통해 아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굴욕이 아닌 능욕과 모욕을 담은 가학적인 사건들이 진짜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이런 굴욕을 탐색하는 책도 있는 게 아닌가.

아마추어 심리학자의 분석으로 능욕을 자초하는 행위가 보상의 각본을 가지고 '속 뚫림 작용'이라고 한다. 우리는 남이 당하는 굴욕을 보면서 즐거워하거나 자기가 처했던 굴욕 상황을 거침없이 되풀이하는데, 그러는 이유는 심리적 해소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함으로써 자기가 받았던 인상의 위력을 속 뚫림 작용으로 해소한다. 주네를 예로 들었는데 주네의 사랑 노래는 난 또 모르겠다. 마조히스트는 굴욕을 찾아다니고, 비마조히스트는 굴욕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작가는 디테일을 전하고 싶어 할까 궁금해할 권리, 굴욕에 대한 성찰, 굴욕에 대한 논의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를 궁금해할 권리, 이렇게 굴욕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굴욕으로부터 조용히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궁금해야 할 권리는 당신에게 있다고 한다.

푸가 형식을 띄고 있고, 모두 11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자신에 대한 고백은 친밀하고 자기비하적이며 도발적이다. 시, 소설, 영화, 미술, 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문학비평의 대가의 솔직하고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굴욕의 전문가답게 이 책을 쓰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크다.

어쨌거나 내겐 조금은 힘든 책, 어려운 책으로 기억될듯싶다. 굴욕은 개인적이지만 짧은 소견에 굴욕이라면 나라를 뺏겼던 대굴욕이나 산부인과 진료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굴욕이 있다. 지금 책속에 나열된 굴욕의 현장은 꼭 소설같다. 내가 겪은 굴욕은 새발의 피정도. 작가의 오래된 기억들이 폭우처럼 쏟아진 <똥 싸는 소리를 엿듣는>를 마지막으로 굴욕의 여정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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