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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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과 관련하여 정신 의학적 평가를 맡았던 전문가는 희미한 불빛 속 아이를 탐하던 의붓아버지를 <사디즘 성향을 지닌 자아도취적 성도착증 환자>라고 평가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롤리타는 타락한 젊은 여자가 아니라, <같이 놀자는 유혹에 빠진 불쌍한 아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두 이부 오빠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바 있다. 단지 불쾌한 경험의 자신이 느낀 감정이 훗날 외상성 쇼크라 부르게 될 만한 것에 속한다. 작가는 성장하면서 어른들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욕정을 불러일으킨게 아니라,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된다. 허술한 가정에서 포식행위가 벌어지는 건 확실하고 거의 요령있게 처신해 도망친다. 하지만 열네 살 중학교를 다니던 학기말 여행에서 서른 다섯살의 강사는 편지를 보내고 의붓아버지는 격노하고 <미성년자 유인>으로 협박한다.

이런..똑같은 짓을 해놓고 누가 누굴 협박하는지..더군다나 자신을 왜 거부하는지 운다. 뭐 이런 개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처벌만이 답이다. 정신적인 감정이 뭐 필요한가. 딱봐도 그냥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애에게 발정난 개새끼인데..여섯 살이 여자로 보인다면 그게 눈깔은 아니지 않나.

이건 순수 문학이 아니라 일종의 증언이다. 성적 학대에 폭력 행위가 수반되지 않아도 극단적인 폭력이 맞다. 당시에도 느꼈고, 오늘날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느꼈다면 확실한 거 아닌가. 부조리가 지배하던 그 시절, 어쨌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친모도 답이 없다고 느껴진다.

알았다 한들 뭐가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다. 눈치채지 못한 부분에서 얼마나 가부장적이고 의지했는지도 짐작가는 바이다.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곁에 없어서 그저 자신이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던 작가의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고백서다. 믿지 못할 부분은 다른 데 있다.

강간을 인정하고 판결 선고를 앞두고 구금을 당하고 있을때 편지를 보내고 방문하는 여성 팬들이다. 어떤 피해자 단체의 창설자이자 책임자인 여성은 재판을 따라다니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미친년이다. 그들 모두가 범죄자고 괴물들이다.

글을 쓰는 2021년 이제 마흔네 살이 된 작가는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 일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살아있다는 특권에서 성적 학대가 나쁘다는것을 밝히는 바이다. 친부는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었다. 스스로 살아남을 핑곗거리로 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 어머니는 강간범을 거짓말쟁이로 본다. 무엇이든 자기를 중심에 놓고 본다. 딸의 고통이나 범죄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 부정이다.

작가는 어머니를 엄격한 마음으로 대한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을 때, 그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나서도 1년을 더 그와 함께 했다. 세상 어느 의붓아버지가 친해지려고 강간을 한단 말인가. 이 책을 쓰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함이다.

강간범을 이기는 길이 고난을 딛고 회복하는 거지만, 역경을 딛고 회복하는 것이 강간범에게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요소로 승리는 없다는 게 슬프다. 하지만 현실은 참..그런 인간을 좋아하는 정신나간 스무 살 연하의 인간도 있다는 것이다.

거세하고 피해자가 겪은 만큼의 고통을 느끼길 바랐는데..세상은 불공평하다. 수십만 가정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계획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그 수치스러운 일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문학은 안에서 죽음으로 몰아 넣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나는 책이 주는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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